16년 전의 일입니다. 시골 촌놈이 한 번도 방송국 구경 해 본 적이 없어, 면접까지만 가면 방송국 구경은 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아무 생각없이 원서를 넣었습니다. 그랬는데 면접까지 갔어요. 여의도 본사에 가서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신기하더군요. “, 여기가 방송국이구나. , 저기 면접 보는 사람이 피딘가 보지? , 저 분은 PD 수첩 앵커 아닌가?”

 

즐거운 추억 만든다는 기분으로 지원했기에, 나들이하는 기분으로 면접에 임했습니다. 나중에 면접관이셨던 선배님께 들었어요. “다들 긴장해서 얼어 있는데, 너는 혼자 놀러 온 것처럼 내내 빙글빙글 웃고 있더라. 신기한 듯 사람 구경하고 있고. 입사 면접을 공원에 놀러 온 것처럼 보는 놈이라면 오락 피디도 한번 시켜볼만 하겠다 싶었다.”

 

, 죄송합니다. 살짝 자랑질이었군요. 갑자기 16년전 MBC 본사에서 한 면접이 생각난 이유는, 월요일에 있을 계약직 기자 면접 때문입니다. 100일 가까이 제작거부과 파업에 나선 보도국 기자들에 대한 대체인력을 뽑습니다. 김재철 사장의 특별 지시에 따른 조치죠. MBC 역사상 초유의 1년짜리 연봉직 기자 채용... 정말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

 

김재철과 그 일당들은 그런 인간들이니까 그냥 둡시다. 전 여기 지원한 분들에게 여쭙고 싶습니다. MBC 입사를 전제로 한 면접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제가 16년전에 했던 방송국 구경은 못합니다. 웬지 아세요? 김재철 사장이 내일 회사가 아닌 시내 모처에서 몰래 면접을 진행하기 때문입니다.

 

뒤가 구려, 본사에서 면접도 못하는 이런 채용에 마음 편히 응시하실 수 있으신가요?

 

파업 대체 인력을 뽑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지원하지 않으면 더 질 나쁜 기자들이 들어가 MBC 뉴스를 욕되게 할 것이다. 차라리 내가 들어가서 그래도 양질의 보도를 하면 될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님의 그런 생각은 정말 순진한 계산입니다. 200명의 기자들이 지난 몇 년간 공정보도를 하겠다고 최선을 다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아 나선 파업입니다. 1년후 계약 갱신이 되느냐 마느냐가 김재철의 손에 달려있는데 1년짜리 계약직 기자가 공정한 보도를 할 수 있을까요?

 

친구가 돈을 빌려달라고 하면,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빌려주고는 싶은데, 그랬다가 너의 자립심을 꺾을까봐 못 빌려주겠다.” 미안하지만 그건 돈 빌려주기 싫으니까 하는 변명입니다.

 

그냥 솔직하게 파업하는 MBC 기자들의 상황은 잘 알겠지만, MBC 경력이 탐이 나서 지원했다고 말씀하세요.

 

파업 100일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생계 위협을 받는 가장들도 있고, 가계 대출 상환을 하지 못해 제2금융권에 손을 벌린 조합원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 누구도 업무 복귀하자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있습니다. 차라리 싸우다 죽을 지언정, 파업 현장을 지키겠다는 각오입니다.

 

80년 광주, 전남 도청을 사수하기 위해 시민들이 모였습니다. 그때 진압군이 들어와 시민군을 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죽을 줄 알면서도 시민들은 총을 들었습니다. 상대편에는 계엄군이 있었습니다. 나는 계엄군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국방의 의무에 부름을 받은 군인이었으니까요. 명령 불복종하면 총살당하는 군인이었으니까요. 병사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으니까요.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100일 파업으로 MBC를 지키겠다고 나선 기자들을 진압할 계엄군을 회사는 모병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지원한 사람이 있습니다. 떳떳하게 MBC 본사에서 면접도 실시하지 못하고 외부 모처에서 면접을 해야 하는 그런 외인부대에 지원한 기자가 있습니다.

 

간곡히 호소 드립니다. 계엄군에게 총을 내려놓으라고 광주 시민이 호소했듯이, 저 역시 그런 면접에 나가지 마시라고 호소 드립니다. 계엄군과 달리 여러분에게는 선택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만약 불법 파업을 일삼는 MBC 노조를 손봐주기 위해 내가 직접 김재철 편에 서서 싸우겠어!’ 혹은 ‘MBC 기자 경력을 발판 삼아 보수 언론사에 입사하는 기회를 노려보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지원하셨다면... 그러시다면, 저도 말릴 도리가 없습니다. 그냥 면접을 보세요. 싸울 각오로 들어온다면, 기꺼이 맞아들여야지요.

 

80년 광주의 어느 새벽, 도청에서 울려 퍼진 총소리는 20분 만에 끝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긴 싸움을 약속드립니다.

 

 

 

민주 언론 쟁취와 공영 방송 정상화의 깃발을 들고, 우리는 싸우고 있습니다.

당신은 어떤 깃발을 들고 우리와 긴 싸움을 벌이실 생각인가요?

 

Posted by 김민식pd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bc노조 힘내세요. 2012.04.28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저렇게 눈밭에서 시작한 파업이 반팔입어도 괜찮은 여름으로 가고 있군요. 저야 방송하고는 관련 없는 일을 하지만, 지금 상황에 파업기자들 틈새 노리고 가는 사람들 이해가 안 되네요. 재처리일당 심뽀하고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이죠. 아무리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도 그렇지. 파업 참여 안하는 간부네 뭐네 잔당들도 이해 안 가는 판에...쩝.

  2. 미디어코난 2012.04.28 23: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음달 22일 오후 4시 VIP석 4장 24일 오후 8시 R석 4장 이렇게 있어요 피디님... 넌버벌 대장금 제작발표회때 표를 8장이나 주더라고요... 왜 이렇게 많이 주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데. 다 좋은데 날짜가 너무나 애매에서... 노조님들 갈 수는 있을까요... 암튼 표를 전달해야하는데 일정을 봐야겠죠..^^ 100일은 꼭 참석합니다..

    • 김민식pd 2012.04.30 12:1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코난님, 조합원 신경쓰지 말고 주위 친지분들에게 선물하세요. 우리 조합원들은 회사 공연이라 따로 볼 기회가 많답니다. 배려, 감사해요!

  3. 슬프네요. 2012.04.29 01: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렇게까지 비장해지지 않길 바랬습니다. 너무 마음이 아프네요. 당연하고 당연한 언론 자유. 왜... 감히... 이 파업을 멈출 수 있는 자들이 이 파업을 외면하는 걸까요?
    언론이 공정한 방송을 하겠다는 일이 독립투사가 떠오르게 하고 아픈 광주민주화운동과 비교가 되어야 하는 현실이 슬픕니다. 수년을 조합원들이 여느 노조처럼 혹여 모를 이런 날을 위해 급여에서 떼어 놓았을 노조회비와 국민의 후원금마저 압류한 MBC 사장. 기자 출신이라더니 어디서 못된 것만 배웠나 봅니다.
    제가 2012년을 살고 있는 게 맞나 싶어요. ㅠㅠ 차마 한 줄 쓰지 못하는 기자의 심정이 오죽할까... 그 자릴 탐하는 자, 내놓을 기사가 두렵고 무섭습니다.

  4. 2012.04.29 13: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 김민식pd 2012.04.30 12: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잖아도 수요일 저녁에 촛불 4주년 집회에 MBC 조합원 참석하는 걸로 결정이 나서 서늘한 간담회 공개 녹음은 다음주로 미뤘답니다. 나비오님, 고민마시고 촛불로 고고씽! ^^

  5. 미디어코난 2012.04.30 23: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럼 KBS 새노조님들에게 국민일보, 연합뉴스...
    그런데 오늘 일진이 너무 안 좋은지 오전에 취재 잘하고 다음장소로 가려는데 와이어리스를 놓고 갔어요 탑밴드 부장님 멘션 쪽지보고 부랴 부랴 생각이 나서.. 받았는데 소모품 옷에 걸게끔 하는 집계가 없어졌어 뭔가 불안했는데 마지막에 취재를 못하게 막는 인터넷기자들 때문에 정신적 고통에 시달려요.
    취재는 잘했지만 좀 너무나 화가나요..
    어제 용민운동회 생중계 덕인지 후원에주시는 분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작지만 작은 매체에 기사에도 몇줄 나가고.. 점점 값어치가 있어나가려는데...
    그들때문에 힘들어요... 블로거로 올리는 1인 독립언론매체라고는 하지만 그들도 사업자, 서울시등록하면서 지들도 블로거 침범하는데 이거는 너무 속상해요 PD님..
    저 말고도 블로그로 올리는 1인 독립언론매체도 있는데... 메이저방송은 아무렇지 않은데 고작 인터넷매체들이 이렇게 난리인지... 저도 성격이 한 몫하는데.. 오늘은 일진이 뭔가 안 따라주었지만 마지막에 각오는 더욱 다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