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떴다. 낯선 공간. 둘러본다. 코 앞에는 낯선 남자가 자고있다.

 

고개를 돌리니 눈부신 조명이 눈을 찌른다. MBC 로비다. 천정에 조명은 저렇게 생겼구나. 16년을 다닌 회사가 왜 이렇게 낯설지? 아, 로비에 누워서 천정을 올려다 본 적이 처음이구나. 새벽 4시. 난 지금 로비에서 노숙 농성을 하고 있다. 내 옆에는 포항 지부에서 올라온 조합원 수십명이 함께 자고 있다. 

 

 

누군가 침낭 속에서 뒤척이다 "도대체 이게 뭐하는 짓이야."하고 볼멘 소리를 한다. 즐거운 파업을 하자고 해놓고 노숙을 강요하자니 미안하다.

 

어제는 25일 월급날이었다. 이번달에도 월급은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매일 새벽부터 밤까지 회의하랴, 집회 프로그램 짜랴, 그 어느때보다 더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하는데, 정작 월급은 나오지 않는다.

 

회사 근처 한 은행이 요즘 대박이 났단다. 긴급 생활 자금 지원을 위해 은행을 MBC 직원들 덕분에. 은행은 예금보다는 대출로 돈을 버는데니까... 파업중인 MBC 노조원을 위한 특판 금리라 많은 동료들이 만세를 부르며 달려갔다는 얘기에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모르겠다. 한 후배 피디는 조심스레 물어본다. "파업이 언제까지 갈까요?" "왜?" "추가 대출을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삶이 망가지는 건 순간이구나.

 

 

로비를 둘러보다보니 한쪽 구석에 즐비한 화분이 눈을 찌른다. 어제 하루 종일 100여개의 난 화분이 로비로 배달되더라. 인사 발령 나고 승진한 사람들에게 온다. 김재철 체재를 수호한 공을 인정받아 승진한 이들. 공정한 경쟁을 통해서라면 승진하기 힘들었을 사람들이, 파업을 틈타 부역에 앞장서고 그 댓가로 승진이라는 떡고물을 챙겼다. 

 

 

 

꽃을 보고 화가 나기는 처음일세.

 

꽃을 보고 화가 나다니! 이런 바보같은 경우가 또 어디있는가? 

 

드라마 촬영하면 연출은 또라이가 된다. 뜨는 해를 보고 화를 내고, 내리는 비를 보고 화를 낸다.

"아직 밤씬이란 말이야!" "지금은 비오면 내일 방송 펑크거든!"

 

뜨는 해도 죄가 없고, 피는 꽃도 죄가 없거늘,

왜 난 아직도 세상이 내 뜻대로 되어야한다는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까?

 

 

파업 88일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다시 가자.

주말 동안, 남도 자전거 여행을 떠나야겠다.

산천에 가득한 꽃을 보며 다시 마음 속에 피어나는 독기를 다스려야겠다.

 

이 싸움, 질긴 사람이 이긴다. 

아니 승부에 관계없이 난 일단 즐기고 볼 것이다.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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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노은미 2012.04.26 06: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즐거운 마음으로.. 마음에 와 닿습니다 끝까지 기쁘게 힘내세요^^ 파이팅!

  2. 이미화 2012.04.26 08: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 이 글을 보고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에잇...ㅠ) 쌤...힘내세요!!!!!

  3. 사랑 2012.04.26 08: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 페북에 담아가도 될까요? 파업이유랑 아직도 파업중이란걸 모르는 분들이 많은듯 해서요 ㅠㅠ

  4. 2012.04.26 0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5. 응원밖에 못해드리네요.. 2012.04.26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시길 바랄께요..

  6. redwine 2012.04.26 1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민들을 위한 파업이라 더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납니다. 이번 선거결과를 보고 언론파업으로 고생하실 수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국민들이 여러분을 잊지 않고 안아드릴 겁니다. 여러분을 결코 잊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도 함께 싸우고 있습니다.

  7. 힘내라 마봉춘!! 2012.04.26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토닥토닥!!! 가슴이 아프네요...그래도 파업을 지지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세요...죄송합니다.힘내란 소리밖에 못해서.....

  8. 꽃을 보니 마음이 아프군요 2012.04.26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기회주의자가 저렇게 많다니,,, 상식과 정의를 올바로 세우고 그를 통해 정식한 소리를 내겠다고 모든것을 걸고 힘들게 투쟁하시는데 함께 싸우고 힘이되지는 못할망정 그들을 밟고 올라서는 이들이 저 꽃만큼이나 많다니요.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힘드시더라도 꼭 이겨내주세요.
    멀리서나마 마음가득 적극 지지합니다.

  9. 징징이 2012.04.26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안하고 고맙고 힘내시라는 말밖에... 당신들을 지지합니다. 좋아했던 마봉춘을 돌려주기 위해 힘내시는 당신들을 존경합니다. 기도하고 전하는 것밖에 못하지만... 지지하고 또 지지하고 또또 지지하겠습니다..

  10. 노동자 2012.04.26 15: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시라는 말 밖엔 다른말을 할 수가 없네요. 반드시 꼭!!승리하시길~~

  11. 라니 2012.04.26 16: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믿었던 만큼 국민들에게도 실망과 화가 나지 않을까 싶네요...
    물론 대놓고 말은 못하시겠지만 말이에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저는 이번엔 저들이 크게 질줄 알았어요..
    너무나 뜻밖의 결과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mbc였답니다...
    얼마나 속상하던지...
    힘내세요...
    왜냐면 정말로 많은 분들이 응원하니까요...^^

  12. 까미 2012.04.26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멀리서만 지켜보면서 말로만 힘을 드리자니... 얼굴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힘 드리고자 말씀드립니다.
    힘내세요!!!!!!!! 응원합니다.!!!!

  13. 화이팅! 2012.04.26 17: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결국 정의는 승리합니다. 조금만 참아주세요..
    근데 방송이 장악돼서인지 이런 모습들이 티비로는 전혀 보여지지 않습니다. 나이 많은 사람들은 지금 파업을 하는줄도 모릅니다. 결국 지금 사장이 버티는 이유도 결국엔 MBC 의 능력상실과 종편으로의 분산을 노리는건 아닌지 걱정입니다. 피디님들, 기자님들 이런 모습 블로그에, 다음에 많이좀 올려주세요....정보가 너무 없습니다.

  14. che 2012.04.27 0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는 여러분입니다.
    더 어려운 환경에서 더 힘든 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여러분들보다 더 많다는걸 알아주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리면
    기분 상하실지 어떨지 모르지만
    현실은 그렇더군요.
    당연히 힘내시고
    당연히 이기십시오.
    나 또한 부조리한 세상과 나름의 싸움을 해나가고 있습니다만
    저는 지는 싸움을 하고 있고
    여러분들은 이기는 싸움을 하고 있으니
    저보다는 낫습니다.
    미리 승리를 축하드립니다.

  15. PHM 2012.04.27 03: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업지지합니다!
    친MB와 친새누리파 김재철과 그의 졸개 임원진들은 모두 MBC에서 제거 되어야할 한심하고 하찮은 존재들입니다.
    전 MBC간판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팬입니다. <토요일-무모한도전>때부터 지금까지 쭉 지켜보고 있는 골수팬입니다. 그런 무한도전을 1월28일이후로 못보고 재방송으로 때우고있지만 그래도 지지하고 당신들을 응원합니다! 예전 1차 MBC총 파업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저 뿐만아니라 거의 대부분의 많은 <무한도전> 팬들 역시 마찬가지로 보고싶은 당신들을 지지하고 응원합니다!
    여러분들의 곁에는 저희 MBC를 사랑하고 지지하는 시청자들과 국민들이 있다는걸 알아주세요..
    여러분은 해낼 수 있습니다! 김재철이 얼렁 물러나야 할텐데 말입니다...
    MBC노조원여러분들 사랑압니다.♡당신들을 끝까지 지지하겠습니다! 끝까지 FIGHITING입니다!
    당신들 곁에 우리들이 있습니다!

    • 김민식pd 2012.04.30 12:2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고마워요. 무한도전 방송이 안가나는데도 우리의 파업을 응원해주시는 무한도전 팬 여러분, 우리 최고의 원군입니다. 빨리 정상화시키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16. 해피송 2012.04.27 09: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업..생각만큼 쉽지 않은 결정이고,,그 결정을 따를때 고생길이 펼쳐진다는걸 파업을 해본 사람들은 알겠죠? 고생이 많으시네요..조금만 더 힘내세요,, 꼭 좋은 결고가 있을꺼라 믿습니다.

  17. 에휴... 2012.04.27 10:4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촛불때 마봉춘 열렬히 응원했지요. 정말 우리 마음 알아주는 건 마봉춘뿐이구나 하면서.
    이후에 방송 보면서 너무 실망하고 맘 아파서 접어버렸습니다. 김비서나 다른 방송은 애초에 기대도 안했으니 실망할 건덕지도 없고 마봉춘 너희들이 그러면 안된다 했어요.
    지금, 진통을 겪는 노조파업 보면서 다시 조금씩 희망도 생기고 기대도 생기고..그리고 어려운 싸움 하시는 언론노조, 방송노조 여러분들에게 말할 수 없는 감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힘내세요. 시청자들을 위해서라도요. 너무 암담하고 기가 막혀서 티비보는 자체를 끔찍해했는데..
    여러분들의 고통과 눈물, 우리의 분노도 그리 멀지 않을 거라 희망을 가져봅니다. 우리 모두 힘내요.

  18. 방원경 2012.04.28 14: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가슴 아픕니다ㅜㅜ
    얼마 전 학교에서 파수꾼이라는 작품을 배웠는데....파업중인 MBC 생각이 가장 먼저 나더라구요....ㅜㅜ그래도 우직한 사람들이 모여 정의가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힘내세요!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지만 응원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