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인생은 때로는 한 권의 책 만큼이나 흥미진진합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파업해보니 파업은 참 힘듭니다. 방송사보다 파업이 더 힘든 사업장이 있어요. 증권사인데요. 최근 골든브릿지 투자증권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에효, 가능하면 파업은 하지 마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힘들거든요, 파업.^^

 

그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가 뭘까? 기사를 검색해보니,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사측이 파기했군요. 직원 해고나 구조조정시, 기존에 노조와 합의한다는 것을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합의와 협의, 한 글자 차이지만 결과는 완전 다르죠. 합의 체제라면,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지만, 협의라면 노조가 반대해도 밀어버릴 수 있거든요.

 

파업 시작하고 회사에서는 불법 대체 근로까지 투입했어요. 도대체 이런 결정을 한 사장은 누굴까? 기사를 검색하다 기겁했어요. 노조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준 회장, 이분은 알고보니 대학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해서 공장에 위장 취업도 하고, 전태일 연구소 팀장까지 하신 분입니다. 전형적인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맙소사...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이렇게 더럽히는 사람이 있다니, 이소선 여사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노동운동가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주역이 되다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7억 김재철 선사의 삶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로에 대해 온갖 불충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제 낙이거든요. ^^ 

 

이상준과 김재철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자본과 권력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을 배신하고 헌납한 사람들입니다. 4년전 PD 수첩 광우병 보도로 촛불이 온나라를 뒤덮을 때, 지방사 사장이던 김재철은 청와대에 달려갑니다. "제가 책임지고 MBC 문제 정리하겠습니다. 두번 다시 피디 수첩 광우병 보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MBC 사장으로 보내주세요."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었던 김우룡은 얼마전 인터뷰를 통해 '김재철은 세 사람의 MBC 사장 후보 중, 꼴찌로 가장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라고 밝혔지요. 

 

적들을 기겁하게 만든게 MBC의 제작 자율 시스템이고 공정한 보도였습니다. 김재철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아니면 MBC를 장악할 수 없다고 장담하며 사장 자리를 따낸 거죠. 

 

이상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해봐서 아는데, 노동 조합은 내가 책임지고 정리할테니, 걱정말고 단협파기하세요. 대체 근로 투입? 그거 부당 노동 행위 맞는데, 벌금 좀 내면 끝이야, 내가 이 방면은 전문가라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과 회사를 자본과 권력에 바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들... 아, 갑자기 인생에 환멸이 느껴졌어요.

 

어제는 MBC 어버이연합 선배님들을 만났습니다. 입사 20년차 이상된 선배님들, 92년 MBC 파업의 주역인 선배님들이죠. 정년 퇴직을 몇년 앞둔 선배님들이 요즘 저희의 파업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일 회사에서 농성을 하십니다. '김재철 선배,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라는 피켓으로 MBC를 지켜주시는 자랑스러운 MBC 선배님들!

 

한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92년 파업으로 MBC가 20년을 버텼어요. 당시 공권력 투입하고 손석희 아나운서 수감해도 꺾이지 않는 MBC 조합원들을 보고 저들이 MBC 장악은 힘들겠다, 포기한 거거든. 그 덕분에 20년간 공정방송 MBC를 지켜온 거지.

 

이번 파업에 이기면, 앞으로도 20년 잘 버틸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몇년 안에 다 퇴직할 사람들이지만, 앞으로 후배들이 즐겁게 직장 생활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업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요즘 젊은 조합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탄하고 있어요. 우리는 87년의 민주화 운동 세대여서 92년의 파업을 이끌 수 있었죠. 2000년대 이후 입사자들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아닌데도 이렇게 잘 싸워주고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선배 세대인 이상준이나 김재철을 보고 좌절했던 저, 후배들을 보며 희망을 찾습니다. 그저께는 최근 공채로 입사한 드라마 신입 피디 3명이 수습이 끝나자 마자 조합 사무실로 찾아와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이번 100일 파업의 핵심 인력은 2000년대 입사자들입니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 대학에 들어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에 입사한 사람들, 그들이 파업에 앞장서는 모습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 아, 감동입니다.

 

선배에게 본 절망, 후배에게 발견한 희망으로 갈음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절대로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

 

어느 강연회에서 들은 20대 여학생이 했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기성 세대의 모습에 절망하지 말기로 해요. 10년뒤 20년뒤에는, 우리가 기성 세대가 될테니까요. 곧 우리의 세상이 올테니까요. 그때까지 우리 마음만 변하지 말기로 해요."   

 

  

MBC 파업 100일 기념 로고입니다. 다음주 화요일 저녁 백일 잔치에 많이 놀러오세요~

Posted by 김민식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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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2.05.03 14: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 중지공주 2012.05.03 1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조의 여왕 너무 잼있게 봤눈데용ㅋ저번에 오셔서 강의해주신거 감동 먹었어용^^
    MBC파업승리하세용ㅋ홧팅!!!

  3. 씁쓸하네요 2012.05.03 2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돈이 뭐라고 어차피 인생은 일장춘몽에 불과한것을... 돈의노예가 됬군요

  4. 그렇구나 2012.05.04 00: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성준이란 분이 그런 분이군요. 그래서 내 안에 적이 가장 무서운가 봅니다. 그럴 거면 차라리 그때 그렇게 열심이지나 말지 싶네요. 그분으로 인해 많은 분들이 실망하고 떠났겠죠? 역시 이런 길은 사람을 보고 가면 안되는 길인가 봅니다.
    저번에 92년 영상에서 지금은 부끄러운 선배들 있다던 노조 트위트 글을 본 거 같아요. 바그다드의 여기자도 그렇고... 참 그런 것들이 더 마음 힘들게 할 거 같아요. 그리고 손석희 전 아나운서 참 좋아했는데 여전히 좋아할 수 있어 참 다행이다 하면서 산답니다. ㅎㅎ
    전 사람 보고 응원하지 않는다고 우겨 봐야죠! 쌀집아저씨 충격에 띵띵 했던 지난 주랍니다. 그래도 피디님이 실망을 주실 일은 없겠죠? 믿어? 말어? ㅋㅋ 새날이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5. 서해 2012.05.05 2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디님..~~~다수의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 아파트 아줌씨들~~ 왈~.. 엠사는 파업 하는 와중에도 더킹~도 잘 만드넹~. 해품달도 대박치더니~~.. 이러면서 파업하는 속에서도 드라마 왕국의 전성기를 다시 누리는 것 같아서... 이런게 오히려 파업에 부작용이 있는거 아냐? 엠사 사장이 그래서 파업과는 상관없이 방송국이 나름 잘 돌아가니 너들~~열씨미 헛짓 파업 해봐라.. ㅋㅋ 참.. 넌세스~~하죠.. 김민식 피디님~~ 제 주변의 다수의 아줌마들은 엠사 드라마 보면서도 파업하시는 분들이 안쓰러워 빨랑 사장 퇴진하고 아까운 인재들 진을 엉뚱한테 빼지 말고 더 좋은 드라마를 보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상 동네 뉴우스~~중계방송...........이었습니다^^

    • 김민식pd 2012.05.07 07:2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러게요, 김재철 사장 한 사람만 퇴진하면 되는데... 아까운 인재들이 헛 힘 뺀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다들 더 단단해지는 중이니까요. 파업은 최고의 노동자 교육 과정입니다.

  6. 마담디 2012.05.12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힘내세요. 힘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