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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그들이 배신자가 된 이유는 무엇일까?

by 김민식pd 2012. 5. 3.

한 사람의 인생은 때로는 한 권의 책 만큼이나 흥미진진합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파업해보니 파업은 참 힘듭니다. 방송사보다 파업이 더 힘든 사업장이 있어요. 증권사인데요. 최근 골든브릿지 투자증권이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에효, 가능하면 파업은 하지 마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진짜 힘들거든요, 파업.^^

 

그들이 파업에 나선 이유가 뭘까? 기사를 검색해보니, 노조와 맺은 단체협약을 사측이 파기했군요. 직원 해고나 구조조정시, 기존에 노조와 합의한다는 것을 협의한다로 바꾸자고. 합의와 협의, 한 글자 차이지만 결과는 완전 다르죠. 합의 체제라면, 경영진이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지만, 협의라면 노조가 반대해도 밀어버릴 수 있거든요.

 

파업 시작하고 회사에서는 불법 대체 근로까지 투입했어요. 도대체 이런 결정을 한 사장은 누굴까? 기사를 검색하다 기겁했어요. 노조 파괴에 앞장서고 있는 이상준 회장, 이분은 알고보니 대학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해서 공장에 위장 취업도 하고, 전태일 연구소 팀장까지 하신 분입니다. 전형적인 노동운동가의 삶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맙소사... 전태일 열사의 이름을 이렇게 더럽히는 사람이 있다니, 이소선 여사가 살아계셨으면 얼마나 기가 막혔을까요...

 

노동운동가가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주역이 되다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요즘 7억 김재철 선사의 삶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의 말로에 대해 온갖 불충한 상상을 하는 것이 제 낙이거든요. ^^ 

 

이상준과 김재철의 공통점이 뭔지 아세요? 자본과 권력에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을 배신하고 헌납한 사람들입니다. 4년전 PD 수첩 광우병 보도로 촛불이 온나라를 뒤덮을 때, 지방사 사장이던 김재철은 청와대에 달려갑니다. "제가 책임지고 MBC 문제 정리하겠습니다. 두번 다시 피디 수첩 광우병 보도 나오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를 MBC 사장으로 보내주세요." 당시 방문진 이사장이었던 김우룡은 얼마전 인터뷰를 통해 '김재철은 세 사람의 MBC 사장 후보 중, 꼴찌로 가장 자질이 떨어지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임명권자의 뜻을 거스를 수 없었다.'라고 밝혔지요. 

 

적들을 기겁하게 만든게 MBC의 제작 자율 시스템이고 공정한 보도였습니다. 김재철은 바로 그 점을 이용하여, 자신이 아니면 MBC를 장악할 수 없다고 장담하며 사장 자리를 따낸 거죠. 

 

이상준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노동운동 해봐서 아는데, 노동 조합은 내가 책임지고 정리할테니, 걱정말고 단협파기하세요. 대체 근로 투입? 그거 부당 노동 행위 맞는데, 벌금 좀 내면 끝이야, 내가 이 방면은 전문가라니까?' 

 

자신이 몸담고 있던 진영과 회사를 자본과 권력에 바침으로써 자신의 영달을 추구하는 사람들... 아, 갑자기 인생에 환멸이 느껴졌어요.

 

어제는 MBC 어버이연합 선배님들을 만났습니다. 입사 20년차 이상된 선배님들, 92년 MBC 파업의 주역인 선배님들이죠. 정년 퇴직을 몇년 앞둔 선배님들이 요즘 저희의 파업에 동참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매일 회사에서 농성을 하십니다. '김재철 선배, 이제 그만 내려오세요!'라는 피켓으로 MBC를 지켜주시는 자랑스러운 MBC 선배님들!

 

한 선배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92년 파업으로 MBC가 20년을 버텼어요. 당시 공권력 투입하고 손석희 아나운서 수감해도 꺾이지 않는 MBC 조합원들을 보고 저들이 MBC 장악은 힘들겠다, 포기한 거거든. 그 덕분에 20년간 공정방송 MBC를 지켜온 거지.

 

이번 파업에 이기면, 앞으로도 20년 잘 버틸 수 있어요. 우리는 이제 몇년 안에 다 퇴직할 사람들이지만, 앞으로 후배들이 즐겁게 직장 생활하기 위해서는 이번 파업이 중요해요.

 

무엇보다 요즘 젊은 조합원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고 많이 감탄하고 있어요. 우리는 87년의 민주화 운동 세대여서 92년의 파업을 이끌 수 있었죠. 2000년대 이후 입사자들은 대학 시절, 민주화 운동을 경험한 세대가 아닌데도 이렇게 잘 싸워주고 있다니 깜짝 놀랐어요."

 

선배 세대인 이상준이나 김재철을 보고 좌절했던 저, 후배들을 보며 희망을 찾습니다. 그저께는 최근 공채로 입사한 드라마 신입 피디 3명이 수습이 끝나자 마자 조합 사무실로 찾아와 노동조합에 가입했습니다.  

 

이번 100일 파업의 핵심 인력은 2000년대 입사자들입니다. 민주화 운동 이후에 대학에 들어가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고 MBC에 입사한 사람들, 그들이 파업에 앞장서는 모습은 정말 고무적입니다.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자기 희생을 감수하고 처절하게 싸우는 모습... 아, 감동입니다.

 

선배에게 본 절망, 후배에게 발견한 희망으로 갈음합니다. 그리고 다짐합니다.

절대로 후배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자.

 

어느 강연회에서 들은 20대 여학생이 했던 말로 글을 마무리하렵니다. 

"기성 세대의 모습에 절망하지 말기로 해요. 10년뒤 20년뒤에는, 우리가 기성 세대가 될테니까요. 곧 우리의 세상이 올테니까요. 그때까지 우리 마음만 변하지 말기로 해요."   

 

  

MBC 파업 100일 기념 로고입니다. 다음주 화요일 저녁 백일 잔치에 많이 놀러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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