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에 새 글을 한동안 못 올렸더니 걱정하신 분들이 있었군요. 가족 방문하느라 며칠 푹 쉬었어요. 싱가폴에 사는 가족을 못 본지 석달 가까이 되어 개인적으로 많이 힘들었거든요. 해외 파견 근무 중인 아내의 페이스북에 갔더니 누가 '남편더러 지금 하는 일, 멀리서 응원한다고 전해줘'라는 글을 남겼더군요. 아내는 이런 답을 달았어요. '언니, 객관적 입장에서 보면 잘하는 일이라고 응원할 수 있지만, 내 입장에서는 걱정이 더 커요.' 징계다, 형사 고소다, 손해배상 가압류다, 멀리서 들려오는 이런 저런 얘기에 나에게 내색은 안해도 걱정이 많았겠구나... 순간 많이 미안했어요. 아내를 만나 걱정말라고 다독거려주고 싶었어요.
요즘 내 주위 사람들은, 한창 일해야 할 나이에 연출로서 일하지 못하는 나를 걱정합니다. 노조 집행부 일을 맡으면서 강성으로 찍혀서 드라마 피디로서 경력에 흠이 가는건 아닌가? 글쎄요. 걱정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드라마 연출에 대한 나의 열정이 저들에게 빌미를 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드라마 연출을 쉬며 잠시 한 눈 파는 삶을 즐기자, 그렇게 마음먹고 있어요.
무엇에 빠져서 미친듯이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잠시 한 눈을 팔며 주위를 둘러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보다 방향이라잖아요? 엉뚱한 방향으로 미친듯이 달리기만 하면 목표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삶에서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목표는 무엇인가, 끊임없이 돌아봐야합니다.
첫 직장을 다니며, 열심히 영업을 뛰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과연 직장 생활만이 답일까? 프리랜서 생활은 어떨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 저녁에 통역대학원 입시반을 다녔어요. 그렇게 한 눈 팔다 회사를 그만두고 외대 통역대학원에 들어갔지요.
통역대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러던 어느날, 통역사만이 답일까? 더 재미난 직업은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저녁에 몰래 방송사 PD 시험 준비를 했어요. 그렇게 한 눈 팔다 MBC에 입사했지요.
물론 다른 이유도 있었지요. 사실 첫 직장에서는 상사와 성격이 안 맞아서 많이 고생했어요. 안 맞으면 굽혀야하는데, 저는 그러지 못했어요. 안 맞으면 그만 두면 되지, 왜 괴로움을 무릅쓰고 살아? 그게 제 삶의 지론이거든요. 한번 사는 인생, 즐겁게 사는게 최선 아닌가요? 통대에서 가서도 고생 많이 했어요. 나이들어 독학으로 영어를 공부했으니 유학파나 이민파를 못당하겠더라구요. '괴로워도 다른 선택이 없으니 그냥 견딜 수 밖에 없다?' 그렇지 않아요. 다른 선택이 없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기득권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사장 밑에서 일하는 건 괴로운데 내게 선택이 없으니 그냥 견딜 수 밖에 없다?' 내 손 안의 기득권 몇개를 포기하면 다른 선택지도 가능합니다. ^^ 기득권을 버릴 수 있다는 각오로 덤비면 불가능의 세계가 열립니다
위기가 닥쳐올 때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인생이 내게 또 새로운 기회를 주려고 그러나보다. ^^
'이것만이 나의 길이다!' 인생에 그런 건 없어요. 때로는 잠시 달리던 길에 멈춰서서 주위를 둘러보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한 눈 파는 삶의 미덕이란, 그런 것이니까요.
집에서 전업주부로서 살 각오도 되어있답니다. 이렇게 이쁜 딸과 하루 종일 지낼 수 있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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