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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베트남 나뜨랑 여행

by 김민식pd 2023. 11. 22.

퇴직 후, 저는 짝수달마다 해외여행을 다닙니다. 홀수달에는 열심히 벌고요, 짝수달에는 여행을 떠나요.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에 방학이 있는 여름과 겨울에 장기 여행을 떠납니다. 지난 2월엔 쿠바, 8월엔 유럽을 다녀왔지요. 학기 중에는 휴강일을 이용해 열흘 정도 단기 여행을 다녀옵니다. 한글날에 수업이 없어 10월 3일부터 13일까지 여행을 떠날 수 있었어요. 가까운 동남아로 다녀오기에 딱이지요. 가고 싶은 곳 후보지를 고르고 항공권 가격을 검색해봅니다.

라오스 비엔티엔 68만원
베트남 나뜨랑 32만원
일본 오키나와 42만원
말레이시아 코타키나발루 35만원.

음, 항공권 가격이 가장 저렴한 나뜨랑과 코타키나발루의 숙박비를 검색해봅니다. 나뜨랑은 루프탑 수영장을 갖춘 5성급 호텔이 3박에 12만 원이군요. 코타키나발루는 수영장이 있는 4성급 숙소가 3박에 22만 원이고요. 마음이 나뜨랑으로 기웁니다. 게다가 베트남은 작년 10월 다낭 호이안 여행 때도 참 좋았거든요. 열흘 동안 항공권 포함 경비가 100만원 정도 들었어요. 베트남은 가성비 최고를 자랑하는 여행지입니다. 

이제 여행 가이드북을 살펴봅니다. 

'나뜨랑 해변은 세계적인 여행 잡지 《트래블 앤 레저 Travel and Leisure 》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치 중 하나로, 최고급 리조트들을 비롯해 해안 휴양지가 일찍부터 개발된 곳이다. 전 세계 젊은 여행객들이 나뜨랑으로 몰려드는 데에는 호핑 투어도 한몫을 한다. 단돈 1만 원 정도의 저렴한 가격에 인근 섬들을 돌며 스노클링과 일광욕을 즐길 수 있다는 사실 자체도 매력이지만, 선상에서 벌어지는 글로벌 노래자랑 이나 바다 위에 열리는 와인 바(?) 같은 독특한 프로그램들이 세계 유일무이한 호핑 투어로 만들었다. 그 외 아이나 어른 들을 동반한 가족 여행객들은 머드 온천, 빈펄랜드 워터파크와 테마파크 등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베트남 셀프트래블 : 2019-2020 최신판> (정승원 저)

네, 이제 마음을 굳힙니다. 스노클링을 무척 좋아하는 제게는 딱이로군요. 

비행기를 타고 날아갑니다. (왕복 항공권 39만원, 최저가 검색할 때보다 막상 구매할 땐 조금 더 비싸지요. 그래도 이 정도면 오케이~) 


나뜨랑 해변. 아, 좋네요. 다낭은 웬지 붐비는 대도시 느낌이었다면, 나뜨랑은 좀더 아늑한 휴양지 분위기입니다.

플로리다 호텔에 짐을 풉니다. 루프탑 수영장이 있는 5성급 숙소인데요, 1박에 3만원입니다. 엄청 싸네요. ^^

2시 체크인인데 비수기라 손님이 적은지 낮 12시에 갔더니 바로 키를 주시더군요. 앗싸! 이래서 일단 가서 물어는 봅니다. 안 될 때 안 되더라도. 안 되면 짐 맡기고 나오면 되니까. 

이제 점심 먹으러 갑니다. 베트남에 1년만에 왔으니 쌀국수부터 먹어야지요.

퍼 홍. 엄청 붐비는 집이네요. 1년 새 중국인 여행자가 엄청 늘었습니다. 작년엔 코로나의 여파로 중국인 관광객이 드물었거든요. 

쌀 국수 6만 동, 우리 돈 3천 원.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어요. 알고보니 가이드북에도 나오는 유명 맛집이네요. 제가 이렇게 감이 좋아요. 구글 지도에서 리뷰 개수를 보고 찾아갔는데 역시!

퍼 홍 Phở Hồng
‘나트랑 쌀국숫집’으로 검색하면 나오는 로컬식당으로 한국인 여행객들 사이에서 유명하다. 이곳의 메뉴는 오직 하나, 소고기 쌀국수다. 주문도큰 것 To Lớn 과 작은 것 To Nhỏ , 둘 중 하나만 고르면 된다. 고수를 넣지 않은 육수(각종 야채는 따로 제공)로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다.

<베트남 셀프트래블>

점심을 먹었으니, 다시 해변 산책 갑니다. 날은 덥지만, 그래도 좀 걷고 숙소로 가야 꿀잠을 잘 수 있어요. 더운 나라에 가면 낮잠을 즐깁니다. ^^

향 타워입니다. 분홍색 연꽃 모양의 탑으로, 긴 해변 중간에 있어 나트랑의 랜드마크라 할 수 있어요. 여기 근처에 마침 현지 여행사 사무실이 있어 여기서 호핑 투어를 예약했는데요, 책에는 1만원이라고 되어있지만, 코로나 이후 물가가 올랐어요. 저는 27달러에 예약했습니다. 그래도 아주 만족스러웠어요. 그 이야기는 또 나중에~

더운 낮에는 시원한 호텔방에서 책도 읽고 누워서 영화도 보고 딩굴거리다 해질 무렵 산책에 나섭니다.

무얼 먹을까 고민하다, 문득 작년에 먹어본 반쎄오라는 베트남 음식이 생각납니다. 구글 지도로 검색하니 마침 숙소 근처에 가게가 있네요.

베트남식 해물전 반쎄요. 이걸 채소랑 함께 라이스페이퍼에 싸서 먹습니다. 제가 간 곳은 현지인 맛집이라 그런지 메뉴도 없고 반쎄오하고 손가락 하나를 펴니, 1인분을 가져오십니다. 가격을 몰라 20만 동을 드리니 14만5천 동을 거슬러주시네요. 55000동, 우리 돈 3천 원. 문득 스위스에서 먹었던 4만원짜리 리조토가 떠오릅니다. 역시 싸고 맛있는 걸로는 베트남 음식을 당할 재간이 없지요. 노후에는 멀리 있는 유럽보다 가까운 베트남 여행을 다니며 살 거예요.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 선선할 때 또 산책에 나섭니다.

가이드북을 보고 나뜨랑에서 볼만한 걸 찾아 뽀나가르 참탑에 갔어요. 입장료 1500원

뽀나가르 사원군은 8~13세기에 지어진 고대 참파 왕국의 힌두교 유적지입니다. 

작년에 갔던 미선 유적지와는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입니다. 밖은 힌두교 양식인데요.

안은 불교 사원이에요. 낯익은 한자가 보이지요.

그 와중에 힌두교 사원의 상징인 요니와 링가도 있어요.

요니와 링가는 힌두교에서 남근과 여성의 상징입니다. 여러 종교가 혼재된 공간이에요.

미선유적지는 산속에 버려진 곳이고, 여긴 마을에 인접한 곳이라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사원 건물을 재활용한 것 같아요. 사원이라 내부를 보려면 반팔 반바지 차림은 안되는데요.

다행히 가사를 무료로 빌려줍니다. 꼭 현지인 같지요? ^^

참파족 민속공연도 하는군요.

공연도 볼만하지만...

이곳에서 보는 나뜨랑 시내 전망이 좋아요. 시원한 나무그늘에서 생수 하나 사마시며 목을 축입니다. (500원) 유럽에선 생수 한 병에 3,4천원합니다. 그래서 숙소에서 나올 때 물을 받아 들고 다녔는데요. 베트남에서는 그냥 다니다 어디든 사 마십니다. 물가가 저렴해 부담이 없고요. 그래야 시원한 물을 언제나 마실 수 있어요.

사원 주위를 둘러보다

여신상을 봤어요. 머리는 누가 잘라갔을까요? 식민지 시절, 프랑스에서 온 고고학자들이 수탈한 흔적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신의 머리는 아마도 프랑스 박물관 수장고 어딘가나 어느 저택 정원에 장식품으로 있겠지요. 마음이 아픕니다.

내려오는 길에 한국에서 온 단체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화장실에 들렀는데, 노인 한 분이 화장실 칸칸마다 열어보더니 난감한 표정으로 나가시더군요. 일행에게 "아니 무슨 화장실에 휴지가 없냐?"하시기에 알려드렸어요. "선생님, 화장실 입구 옆 벽에 보면 휴지 있습니다. 그걸 뜯어 갖고 들어가 쓰시면 됩니다." 그 분이 저를 보더니 놀라 하시는 말씀. "아이구, 한국 말을 엄청 잘하시네?"

ㅋㅋㅋㅋㅋㅋㅋ

한국 말 잘 한다고 칭찬 받는 한국 사람, 네, 그게 저예요.

함께 오신 일행이 휴대용 블루투스 스피커로 한국 유행가를 들으며 가시네요. 베트남에서 한국 노래를 들으니 이것도 새롭네요. 저는 여행할 때 이어폰을 잘 쓰지 않습니다. 현지의 온갖 소리를 듣는 것도 여행의 일부거든요. 제게 여행은 오감의 충족입니다. 도심 한복판에서 들려오는 닭 울음소리도 재밌고 노점상에서 풍겨오는 생경한 음식 냄새도 신기합니다. 보고 듣고 냄새로 느끼는 모든 이국적인 것, 이 낯설고 새로운 감각을 맛보려고 여행을 다닙니다.

낯선 환경에 가면 사람은 불안합니다. 그래서 익숙한 감각을 찾습니다. 익숙한 음식, 익숙한 말, 익숙한 노래가 들려와야 마음이 편해집니다. 그런데 여행은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낯선 것들을 탐색하는 시기가 아닐까요? 무엇보다 익숙한 것만 가까이 하고 살면 삶의 영역은 갈수록 위축됩니다. 나의 삶을 더 크게 키우는 방법, 새로운 감각을 찾아 떠나는 여행에 있습니다.

나뜨랑 여행 이야기,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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