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비엔나 궁전 여행

by 김민식pd 2023. 12. 6.

지난 여름에 다녀온 비엔나 여행기 이어집니다.

첫째날에는 발길 닿는 대로 혼자 걸었다면, 둘째날에는 든든한 가이드를 쫓아 다니며 도시의 역사에 대해 배웁니다.

세계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과 함께 비엔나의 거리를 걷습니다.

궁전 바로 뒤에 로마 시대 유적이 있군요. 

다같이 시계탑을 보러가요.

시계가 생긴 후로 사람들은 더 자유로워졌을까요. 아니면 시간의 노예가 되었을까요? 요즘 저는 시계를 잘 들여다보지 않습니다.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서는 시간의 흐름을 잊고 사는 편이 좋더라고요.

비엔나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도였어요.

궁전 문 위에 새겨진 현판을 보면... 

Ferdinan dvs rom German hangar boem zc Rex infa hisp arc
로마 독일 헝가리 보헤미아 스페인, 온갖 나라의 이름이 다 나오는데요. 이 많은 나라를 다 다스렸다는 거지요. 어떻게 이렇게 영토가 넓은 걸까? <반전이 있는 유럽사> 책에서 그 답을 찾았어요.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들은 오타카르 2세를 견제하고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힘없는 무명의 합스부르크 백작 루돌프 1세를 황제로 선출했다. 그런데 이 루돌프 1세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황제의 권위를 내세워 제후들의 힘을 모아 보헤미아의 오타카르 2세를 무찌르고 오스트리아를 황제의 영지로 삼았다(1278). 이때부터 오스트리아는 1918년까지 840년간 합스부르크 가문의 본거지가 되었다. 합스부르크 왕조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 이어진 왕조일 것이다(일본 천황가는 나라를 실제로 다스리지 않았으니 여기 해당하지 않는다).

신성로마제국의 선제후들은 합스부르크 가문이 갑자기 강해지자 다시 무명의 룩셈부르크 백작에게 황제 자리를 넘겼다. 하지만 별 볼 일 없을 줄 알았던 룩셈부르크 가문마저 보헤미아를 차지하며 강해졌다. 룩셈부르크 가문과 합스부르크 가문은 혼인을 통해 서로 동맹 관계를 맺어 선제후들의 견제에 대비했다. 그리고 양 가문 중 어느 한쪽에 후손이 끊어지면 상대 가문에서 그 자리를 잇는다는 상호 각서를 교환해 만일의 경우에도 선제후들이 왕위 계승 문제에 개입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런데 보헤미아 왕이자 신성로마제국 황제인 카를 4세가 후손 없이 죽음으로써 룩셈부르크 가문의 후손이 끊어졌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어부지리로 룩셈부르크 가문의 영지인 보헤미아, 헝가리를 획득했다. 이제 선제후들이 다 달려들어도 감당하지 못할 만큼 강력해진 합스부르크 가문은 선제후들을 압박해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자리를 독점했다. 오스트리아는 공작령에서 대공령으로 승격하고 합스부르크 가문의 당주는 오스트리아 대공, 보헤미아 왕, 헝가리 왕, 독일 왕으로서 신성로마제국 황제라는 길고 긴 직책을 얻게 되었다.

이후 합스부르크 가문은 유럽의 여러 왕가와 복잡한 혼인 관계를 맺어 유럽의 거의 모든 나라 왕실 족보에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어느 나라든 왕손이 끊어지면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의 사위나 외손이 그 왕위를 잇게 되면서 합스부르크 왕조는 신성로마제국 밖으로도 엄청난 영토를 거느리게 되었다.'

<반전이 있는 유럽사 1> (권재원 지음)

합스부르크 왕가가 제국을 만드는 과정이 재밌습니다. "너네는 전쟁해라, 우리는 결혼한다." 이게 핵심이에요. 혼맥으로 영토를 넓히고 권력을 키우고 지킵니다. 

비엔나 여행을 간다니까 친구가 톡을 보냈어요. "쇤부른 궁전 가시면 꼭 시간 내셔서 글로리에테 올라가보세요. 위에서 보는 궁전 전경 멋있답니다."


저 위로 보이는 게 글로리에테인데요. 그날은 바람이 심해 개방을 하지 않아 못봤어요. 아쉽지만,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지요.

쇤부른 궁전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여름궁전입니다. '거울의 방'에서는 6살 모차르트가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위해 피아노 연주를 했고요. 1805년 비엔나를 점령한 나폴레옹이 프랑스 전시 사령부로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현장이었지요.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태어나고 죽은 곳이고요, 그의 부인인 시시 황후가 많은 시간을 보낸 곳입니다.

시시 황후의 모습은 비엔나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데요. 남편이 황제였지만 삶은 불행했어요. 요제프 황제는 워커홀릭이었어요. 광활한 영토를 거느린 제국을 다스리느라 새벽 5시부터 집무실에 틀어박혀 결재 서류만 검토했고요. 씨씨 황후는 철없는 15살에 궁궐로 시집 와서 평생을 살았어요. 1889년 외동아들이자 황태자였던 루돌프가 자살했어요. 교회를 싫어하고 계급제도를 경멸하는 등 제국의 황태자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자유주의 성향을 보였던 아들은 나이 어린 애인과 함께 권총 자살을 했어요. 어린 나이에 왕가에 시집 와 고부 갈등을 겪던 시씨 황후는 노후에 공식 활동에서 완전히 물러나 유럽 각지를 여행하다가 스위스 제네바의 호수에서 이탈리아 출신 아나키스트가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습니다.

유시민 작가는 <유럽도시기행 2권>에서 시씨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비운의 주인공에게 끌리는 경향이 있다지만, 빈 사람들이 시씨를 사랑하는 것이 그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운명에 의해 ‘권력형 셀럽’이 되었지만 시씨는 ‘자기다운 삶’을 추구했다. 그녀는 남편이 황제여서가 아니라 사랑해서 혼인했다. 황후의 권력과 화려한 궁정 생활에서 의미와 행복을 느끼지 못했다. 남편이 다른 여인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이고 빈을 떠나 여행자의 삶을 영위했다. 아름다운 몸과 맑은 정신을 유지하려고 처절한 노력을 쏟았고 신분의 차이를 넘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려 했다. 운명을 거부하거나 극복하지는 않았으나 운명에 갇히지도 않았다. 운명을 받아들이면서도 자신이 의미를 느끼는 인생을 살아나가려고 번민하고 도전했다. 그리고 그런 끝에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비극적 죽음을 맞았다. 역사의 위인은 아니었으나 사랑할 만한 미덕을 지닌 황후였음에는 분명하다. 그러니 시씨의 사진과 초상화를 마케팅 수단으로 쓰는 빈의 상인들을 욕하지 마시라. 그들은 시씨를 정말 사랑해서 그러는 것이다.

<유럽도시기행 2 : 빈, 부다페스트, 프라하, 드레스덴> (유시민)
 

혼맥으로 제국을 유지하는 가문의 비극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 집안에서 태어난 이상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 수는 없다는 걸 깨달은 황태자는 자살하고요. 그 집안으로 시집 간 이상 개인으로 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방랑을 떠난 황후는 살해당합니다. 가엾는 여인을 왜 살해한 걸까요? 아나키스트의 입장에서 그녀는 전 유럽을 지배하는 합스부르크라는 권력의 상징이었으니까요. 

비엔나의 유명한 두개의 궁전, 쇤부른과 벨베데레가 있는데요. 아침 일찍 쇤부른을 보고 벨베데레 궁전에 갔어요. 10시 40분에 왔는데, 입장 가능 시간이 14시 30분이네요. 

궁전 내부 관람은 포기하고 그냥 정원을 산책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궁궐의 풍경도 시씨 황후에게는 구속처럼 느껴졌겠지요. 

타인의 눈에 아름다워 보이는 게 알고보면 본인에게는 구속의 상징일 수 있어요.

얼마 전 친구가 유튜브 영상을 보내왔어요. 아카데미 단편 영화상 수상작인데요. 마침 유튜브에서 전편을 감상할 수 있네요. <이웃의 창> 

https://youtu.be/IhIB40CcVjM?si=T2PfjSd8jj3pVtAT

우리는 타인의 삶을 동경합니다. 하지만 그 타인이 부러워하는 건 우리의 일상인지도 몰라요.

시씨 황후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그녀가 평생 꿈꾼 것은 궁궐로부터 달아나 자유를 만끽하는 노후였어요. 

평생 무엇을 하고 살았든, 노후에는 자유로운 여가를 누릴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