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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니가타 설국 문학기행

by 김민식pd 2024. 1. 19.

소설 <설국>을 읽고 떠난 니가타 문학 기행 2편입니다.

에치고유자와 역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묵었던 다카한 료칸까지 걸어서 20분 정도 걸립니다. 

1920~1930년대에 온천 붐과 스키 붐이 불고 에치고유자와에 관광객들이 많이 몰려들었는데, 그 무렵 이 마을에는 게이샤들도 많았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서른다섯 살이던 1934년에 처음 에치고유자와를 방문해 당시 열아홉 살이었던 마쓰에를 만납니다.

그 만남이 아마도 <설국>을 쓰게 된 계기가 아닐까 싶어요. 소설은 온천 휴양촌에 놀러온 작가가 어린 게이샤를 만나는 이야기거든요. 

타카한 료칸에서는 영화 <설국>의 상영회가 매일 저녁 8시에 있어요. 작가가 소설을 집필한 이곳에서 영화를 촬영했어요. 소설과 영화의 무대를 동시에 본다는 점에서 감개무량하지요. 

2층에는 그 옛날 작가가 머물렀던 방을 그대로 보존한 공간이 있어요. 아침에 햇살이 비칠 때 가보면, '음... 여기에 앉아있으면 절로 글이 떠오르겠는걸?'하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방에서 폼을 한번 잡아봤습니다. 사진은 동행했던 김봉석 작가님이 찍어주셨고요.

매일 오후 5시에는 이곳에서 설명회가 열려요. 나이 지긋한 료칸의 직원이 오셔서 소설과 영화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일본어로만 진행이 되기 때문에 알아듣기는 쉽지 않아요.   

설국 자료실이 있는데요. 이곳에 소장중인 자료 중에는...

제가 좋아하는 허영만 선생님의 싸인도 있고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된 다양한 판본의 <설국>이 있어요.

솔직히 <설국>을 읽고 저는 살짝 실망했어요. 진도가 잘 안 나가더라고요. 무슨 이야기인지 잘 모르겠고... 뚜렷한 줄거리가 있거나 인물 간의 갈등이나 서사 구조가 있는 소설은 아니거든요. 줄거리 위주로 읽기 보다는 많은 상징과 암시를 담은 문학작품으로 보아야 합니다. 주인공의 캐릭터와 감정 표현도 애매합니다. 아마 유부남인 작가가 온천 마을에 와서 게이샤를 만나는 이야기가 개인의 경험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애매하게 그리다 보니 더욱 그렇게 된 게 아닐까 싶어요. 어쨌든 소설은 저의 취향은 아니었어요.

외로운 영혼이 타지에 왔다가 또다른 외로운 영혼을 만나 서로 고슴도치같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에요. 고슴도치는 외로워요. 몸에 가시가 많아 누군가를 가까이 하면 상처를 주지요. 그렇지만 외로워서 또 누군가를 갈망하고. 상처를 주면서도 갈망하는 사랑, 고슴도치의 사랑.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1899년 오사카의 부유한 의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그러나 2살과 4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었고, 그 후 조부모에게 맡겨졌으나 7세 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요. 10살에는 누이가 죽고요, 15세에는 함께 살던 할아버지까지 세상을 뜨면서 외롭게 자랍니다. 15세까지 친족 다섯 명이 죽어서 '장례식의 명인'이라는 별명까지 얻었을 정도라고요. 태생적으로 외로운 사람이네요.

외로운 사람은 책에 빠지기 쉽고요. 여행에 빠지기 쉽습니다. 이곳에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없으니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거지요. 그런 작가의 외로움을 절절하게 공감한 또다른 외톨이가 있어요. <가와바타 야스나리>라는 책이 있는데요. 작가의 문학 세계를 들여다보는 기행문격이기도 한 에세이인데, 책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1921년 미국의 가난한 오지 마을인 콜로라도 주 더글러스 카운티에서 태어난 남자가 있었다. 모험을 하기보다 책 읽기를 좋아했던 이 남자는 ‘남자다움’을 최고 가치로 치는 시골 마을에서 외톨이로 자란다.
콜로라도 대학을 졸업한 그는 군에 입대한다. 당시 미국은 모병제가 아니라 징병제였다.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소심한 남자는 군 생활을 덜 위험하게 하려는 속셈으로 일본어를 배운다. 해군 일본어 강습소를 거쳐 해병대 통역요원으로 근무한 그는 전쟁이 끝난 뒤 배워놓은 일본어가 아깝다는 생각에 외교관에 지원한다. 외교관이 되어 도쿄에 부임했지만 내향적인 그는 공직과 맞지 않았다. 그 무렵 남자는 일본 문학의 매력에 깊이 빠져든다. 결국 외교관을 그만두고 프리랜서 번역가로 활동을 시작한다.
이 남자가 바로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다. 1968년 노벨문학상 시상식장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 옆에 서 있던 인물로, 『설국』을 영어로 번역한 장본인이다. 이 자리에서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이 노벨문학상의 절반은 에드워드 사이덴스티커의 몫”이라며 그의 역할에 경의를 표한다. 실제로 상금의 절반을 그에게 주었다는 이야기도 후일담으로 남아 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 - 클래식 클라우드 010 : 설국에서 만난 섬세한 허무의 작가> (허연)

저는 이 책이 참 좋았어요. 소설을 읽고 내가 이해하지 못한 대목까지 해설해주시는 기분이었고요. 저자가 야스나리가 살았던 일본 곳곳을 찾아다니며 쓴 책이기에 문학기행 가이드북으로도 딱 좋아요. 이 책을 읽고 다음에는 가마쿠라가 가고 싶어졌어요. 야스나리가 말년을 보낸 마을이거든요. 

외로운 작가가 쓴 소설을 또다른 외톨이가 영어로 번역을 하고요. 그 책을 읽은 전세계의 고독한 영혼들이 열광하면서 노벨상 수상으로 이어집니다. 책에는 이런 대목도 나와요.

'흥미로운 건 중학교 시절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작문 점수가 높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현재 남아 있는 이바라키 중학교 성적표에는 그의 작문 성적이 전교생 88명 중 86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놀랍다. 중학교 작문 성적이 88명 중 86등이었던 학생이 50년 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 50년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나는 그 50년이 더욱 궁금해졌다.'

인생을 나누는 기준은 간단합니다. 고정 마인드셋으로 사느냐, 성장 마인드셋으로 사느냐. 인생은 타고난 대로 살다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노력 여하에 따라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를 믿습니다. 중고등학교 진로 특강을 다니며, 저의 어린 시절 성적표를 공개합니다. 대학교 2학년 1학기 영어 성적이 D+ 였는데, 어쩌다 나는 대학교 3학년에 복학하여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서 2등상을 타게 된 걸까? 하고요. 지금의 내 모습으로 남은 인생을 한정지을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은 변할 수 있어요. 못하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면 더 잘하게 될 수도 있어요. 거기에 인생의 묘미가 숨어 있습니다.

오늘도 성장하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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