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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베를린 현대사 기행

by 김민식pd 2024. 2. 7.

지난 여름, 독일 베를린에 갔습니다.

1992년 배낭 여행 때 브란덴부르크 문 앞에서 찍은 사진이 있는데요. 30년만에 같은 장소에서 또 사진을 찍습니다.

바로 옆에 성조기를 나부끼는 건물이 있는데요. 미국대사관입니다. 독일 통일은 미소 체제 대결에서 미국의 승리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그 상징과도 같은 장소가 브란텐부르크 문이고요. 그곳에 미국 대사관이 있는 모습을 보니 마치 승전 기념관처럼 보입니다.

근처에 냉전박물관이 있나봐요. 안내판이 있는데요. 서구 주민들에게 냉전은 과거 역사 속 기념물인지 몰라도 한반도 주민인 나에게 냉전은 과거가 아니라 현재입니다. 서울 거리를 걷다 가끔 시대착오적인 구호를 외치는 플래카드를 보며 느낍니다. 걸핏하면 부활하는 냉전 시대 망령들을 어찌하면 좋을꼬. 

근처에 홀로코스트 메모리얼이 있습니다. 1992년에 왔을 땐 없었던 공간인데요. 낯선 공간을 보자 현장에서 전율이 느껴졌어요. 2차 대전 중 나치에 의해 학살된 유대인들은 관도, 비석도, 무덤도 없이 수용소에서 죽어갔어요. 그들을 위로하는 방식으로 거대한 공동묘지를 형상화한 곳입니다.

'2차 세계대전과 유대인 학살의 전범국 독일의 반성과 추모의 마음을 담아 만든 ‘유대인 추모공원’으로 종전 60주년인 2005년에 완공해 문을 열었다. 뉴욕의 건축가 피터 아이젠만 Peter Eisenman 의 설계로 만들어진 추모공원은 축구장 3개 규모이고 가로 세로 규격은 같고 높이만 20cm부터 4.7m로 다른 2711개의 콘크리트 판이 세워져 있다. 특별한 설명 없이 덩그러니 놓여 있는 짙은 회색의 돌판들은 비석 같기도 하고 파도 같기도 해서 저마다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따로 입구는 없고 돌판 사이가 미로처럼 이어져 있다. 비장한 의미와는 다르게 학생들은 돌 위를 옮겨 다니며 놀기도 하고 돌 위에서 휴식을 취하 기도 하는 자유로운 모습이다. 키보다 훨씬 높은 돌 사이를 지날 때는 숙연해 지기도 하고 중압감에 공포를 느끼기도 한다. 공원 한쪽으로 유대인 학살 관련 자료들을 모아 놓은 지하 방문자 센터가 있다.'

<독일 셀프트래블(2022-2023)> (김주희) 

이곳에 3명의 여성의 이름과 행적을 새긴 명판이 있습니다. 근처 거리에 이름을 남긴 이들인데요. 한나 아렌트라는 익숙한 이름이 눈에 띕니다. 다른 두 분은 홀로코스트에서 희생당한 유대인 여성 작가였어요. 

독일이 과거를 기억하고 반성하는 자세에 숙연해집니다.

발길을 옮겨 포츠담 광장으로 갑니다.

1945년 이곳에서 열린 포츠담 회담으로 독일의 분단이 결정되었고요. 통일 이후 철거된 베를린 장벽의 일부를 이곳에 가져다 놓았습니다. '포츠담아, 보아라. 우린 다시 하나가 되었다.'

베를린 장벽에 껌딱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요. "냉전이여, 껌이나 먹어라!" ^^ 이런 식의 귀여운 저항, 재밌네요.

베를린을 여행할 때는 곳곳에서 다양한 곰의 동상을 만날 수 있어요.

디자인을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어요. 

체크포인트 찰리입니다. 동독과 서독을 가르는 경계선이었지요. "30년전 당신이 이 자리에 서 있었다면 당신은 총에 맞았을 것이다." 라고 적혀 있어요. 


그 시절의 흑백 사진 한 장. 미국과 소련의 탱크가 서로 대치한 모습이지요. 분단의 비극이 이젠 관광상품입니다.


베벨 광장을 찾아왔어요. 1933년 5월 10일 2만여 권의 책을 반독일적 도서로 규정해 불태운 나치의 ‘분서사건’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책을 태운 자 결국 인간도 불태운다’는 하이네의 경고 어린 시구도 바닥에 있어요.

광장 앞에 있는 훔볼트 대학.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엥겔스, 아인슈타인 등이 이 대학 출신이고 헤겔, 쇼펜하우어, 그림형제 등이 교수로 재직했어요. 30여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대학이라고요.

옆에는 노이에바헤 Neuewache, 전쟁과 폭정의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관입니다.

천장 한가운데 구멍이 나 있고 그 아래 캐테 콜비츠의 조각상 <피에타>가 있어요. 죽은 아들을 안고 있는 어머니의 조각상은 비가 오면 천장으로 흘러들어온 물이 떨어져 우는 것처럼 보인다고요. 

그 옆에는 독일 역사 박물관이 있는데요. 제가 강의할 때 쓰는 사진이 벽에 붙어있네요.

폴란드의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서독의 빌 블란트 총리가 무릎꿇고 사죄하는 모습이지요. 기업에서 소통법 강의를 하면서 "리더의 소통에 있어 가장 중요한 두 가지 말이 있습니다. 하나는 미안합니다. 또 하나는 감사합니다. 사과와 감사의 표현만 제때해도 어른의 대화법을 실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제일 어렵지요. 독일이 2차대전을 일으킨 전범국가에서 유럽의 맹주로 거듭나는데는 빌 브란트의 사과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꿇어야할 땐 꿇어야 합니다. ( 아래 기사를 참고하셔도 좋아요~)

https://news.kbs.co.kr/news/pc/view/view.do?ncd=3131617

벼룩시장이 열리는 마우어공원에 갔어요.

베를린의 젊은이들이 공원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어요. 

젬베 협연도 볼 수 있어요. 타악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자유롭게 협연을 펼칩니다.

베를린은 힙스터의 도시에요. 

'독일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산다는 베를린은 이미 독일적 검소함과 실용성 대신 힙하고 핫한 도시로 온 유럽에 소문이 났다. 이들은 전쟁을 경험하지도 않았고 분단을 경험하지도 않았다. 이들이 경험한 독일은 오직 유럽의 맹주이자 경제적으로 번창하는 독일뿐이다.
독일의 젊은 세대는 틈만 나면 나치 시절의 만행을 반성하고 주변 나라에 사과를 반복하는 상황에 대해서도 불만을 느끼고 있다. 할아버지, 증조할아버지 시절에 있었던 일에 대해 왜 자기들이 죄책감을 느껴야 하느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이러한 독일의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좌파적인 성향이 강했던 기성세대(68혁명 세대)와 자주 부딪친다.
젊은 세대의 이 같은 변화는 다른 한편에선 독일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강한 공동체의식을 밑천 삼아 성공한 독일이 창조성을 기반으로 하는 제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독일이 새로운 성공 방정식을 풀어낼지 주목받고 있다.'

<반전이 있는 유럽사 1> |(권재원)

마지막으로 소개할 공간은 카이저빌헴름 기념교회입니다. 독일의 첫번째 황제인,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리려고 지은교회에요. 2천명을 수용할정도로 크고,화려한 모자이크와 신로마네스크양식의 아름다운교회였지만, 2차대전 때 폭격을 맞았고요. 그 모습 그대로 보존하고 있답니다. 다시는 전쟁을 하지말자는 의미로.

이곳에서 열리는 콘서트가 있다기에 31유로에 표를 샀습니다.

저 파이프 오르간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고 싶었거든요.

파이프 오르간은 재미난 악기에요. 생긴 건 피아노인데, 풀무에서 나온 바람을 관으로 불어넣어 소리를 내는 장치이므로 소리의 특색은 관악기와 같습니다. 반면 피아노는 건반을 두드리니 타악기처럼 보이지만 현을 때려서 소리를 내기 때문에 현악기에 속해요.

클래식 연주를 들으며 상념에 잠깁니다. 독일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패전과 분단을 딛고 리더가 된 나라거든요.

그날 베를린 거리에서 만난 조형물입니다. 

희망이라는 글자가 보입니다.

"Hope for those who hope. 희망하는 이들을 위해 희망한다."

얼마나 오래 살고 싶으냐는 질문에 가끔 저는 통일이 될 때까지는 살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여행자로서 저는 북한 배낭여행이 가능해질 때까지는 살고 싶어요. 언어 장벽 없고, 물가 싸고, 역사적 배경 지식 풍부하고, 비행기를 탈 필요 없이 차로 2시간이면 갈 수 있는 외국. 북한은 언젠가 최고의 여행지가 될 것 같아요. 지구온난화가 계속 된다면 우리는 아마 여름에 개마고원에서 보내는 피서를 손꼽아 기다리게 될 지 몰라요.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 하루도 건강하게 살아야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신 김누리 교수님의 칼럼을 소개하며 물러납니다.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110280.html

 

역사가 없는 나라 [김누리 칼럼]

| 김누리 중앙대 교수(독문학) 1966년 11월30일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1면에는 다음날 총리에 취임하는 쿠르트 게오르크 키징거에게 사임을 촉구하는 귄터 그라스의 공

www.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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