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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산다는 것은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다

by 김민식pd 2023. 10. 27.

산다는 것은 곧 시련을 감내하는 것이며, 살아남으려면 그 시련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아야 합니다. 만약 삶에 목적이 있다면 시련과 죽음에도 반드시 목적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줄 수 없어요. 각자가 스스로 찾아야 하며, 그 해답이 요구하는 책임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약 그것을 찾아낸다면 그 사람은 어떤 모욕적인 상황에서도 계속 성숙해 나갈 수 있을 겁니다. 니체는 이런 말을 했어요. 
“‘왜why’ 살아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 ‘어떤how’ 상황도 견딜 수 있다.”
제가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찾아보는 책이 있습니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 저/이시형 역/ 청아출판사)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였던 빅터 프랭클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나치의 수용소에 갇힙니다. 그곳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요. 간신히 살아 나와보니 사랑하는 아내와 가족들은 모두 수용소에서 죽음을 맞이했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인생이 던져주는 고난과 시련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아우슈비츠에 처음 잡혀갔을 때 저자는 출판하려고 집필 중이던 원고를 압수당했어요. 이 원고를 새로 쓰고 싶다는 강렬한 열망이 가혹한 환경에서 저자를 살아남도록 했습니다. 바바리아 수용소에서 발진 티푸스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나중에 원고를 다시 쓸 때 도움이 되도록 작가는 작은 종잇조각에 수없이 많이 메모를 했다고요. 강제 수용소의 어두운 막사 안에서 잃어버린 원고를 다시 쓰는 작업은 저자가 죽음의 위험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어느 날 찢어진 신발 때문에 발에 심한 종기가 생깁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아픈데도 긴 행렬에 끼어서 수용소에서 작업장까지 몇 킬로미터를 절뚝거리며 걸어가야 했어요. 날은 추웠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사정없이 내리쳤습니다. 그 순간 저자는 누추한 생활과 연관된 자질구레한 문제들을 끊임없이 생각하고 있었어요. 오늘 저녁에는 무엇을 먹게 될까? 만약 특별 배급으로 소시지가 나온다면 그것을 빵과 바꾸어 먹을까? 2주일 전에 상으로 받았던 담배 한 개비를 수프 한 그릇과 바꾸어 먹을까? 한쪽 신발 끈이 끊어졌는데 끈을 대신할 철사를 어디서 구하지?

그러다가 생각을 다른 주제로 돌리기로 했어요. 갑자기 저자는 불이 환히 켜진 따뜻하고 쾌적한 강의실의 강단에 서 있습니다. 앞에서 청중들이 푹신한 의자에 앉아 내 강의를 경청하고 있어요. 나는 강제 수용소에서의 심리 상태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그 순간 나를 짓누르던 모든 것들이 객관적으로 변하고, 일정한 거리를 둔 과학적인 관점에서 그것을 보고 설명할 수 있게 됐어요. 

이런 방법을 통해 저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처한 상황과 순간의 고통을 이기는 데 성공했고, 그것을 마치 과거에 이미 일어난 일처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겪는 고통과 문제는 흥미진진한 정신과학의 연구 대상이 됐던 거죠. 수용소에서 사람의 정신력을 회복시키려면 그에게 먼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정신과 치료 중에는 과거의 트라우마에 초점을 맞추고 현재의 고통이 과거 어떤 사건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찾는 방식이 있습니다. 프랭클 박사가 창안한 로고테라피는 환자의 미래에 초점을 맞춥니다. 미래에 환자가 이루어야 할 과제가 가진 의미에 초점을 맞추는 겁니다. 로고테라피는 이렇게 의미에 중점을 둔 정신 치료법입니다. 실제로 로고테라피에서는 환자가 삶의 의미와 직접 대면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환자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우치게 도와주는 것이 정신병을 극복할 수 있도록 환자의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됩니다.

강제 수용소에서 저자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기 위해 굶주린 사람이 자신에게 남은 마지막 빵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 주는 걸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이 아주 극소수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도 다음과 같은 진리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에 충분합니다. 그 진리란 인간에게 모든 것을 빼앗아 갈 수 있어도 단 한 가지, 마지막 남은 인간의 자유,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고 자기 자신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만은 빼앗아 갈 수 없다는 것이지요.

수용소에서는 매순간 선택의 기로에 섭니다. 매일같이, 매시간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그 결정이란 당신으로부터 자아와 내적인 자유를 빼앗아 가겠다고 위협하는 저 부당한 권력에 복종할 것인가 아니면 말 것인가를 판가름하는 것입니다. 그 결정은 당신이 보통 수감자와 같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유와 존엄성을 포기하고 환경의 노리개가 되느냐 마느냐를 판가름하는 결정이었어요.



저는 고령화 시대의 기나긴 노후와 유대인 수용소의 삶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끝에는 죽음이 있고요, 기나긴 시간 육체적 속박이 이어집니다. 나이가 들면 우리는 젊은 시절에 누렸던 육체적 활기나 자유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마치 수용소에 갇힌 것처럼 인생의 말년을 보내야 할 수도 있어요. 이때 중요한 것은 그러한 삶의 고난과 시련 속에서도 우리가 의미를 찾아낼 수 있느냐 하는 점입니다. 

쇼펜하우어는 이렇게 말했어요. “인간은 고민과 권태의 양극단을 끊임없이 오가도록 운명 지어진 존재다.” 요즘은 고민보다는 권태라는 문제 때문에 정신과 의사를 찾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권태로 인한 우울증은 앞으로 점점 더 증가할 겁니다. 자동화 과정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여가가 엄청나게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지요. 애석한 것은 많은 사람이 새로 얻게 된 한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기나긴 노후를 맞이하게 된 우리 모두 안고 살 문제입니다.

자살의 상당수가 바로 이런 실존적 공허 때문에 일어납니다. 현대 사회에 만연해 있는 우울증과 공격성, 중독증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면 그 저변에 깔려 있는 실존적 공허를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연금 생활자나 나이 든 노인들이 느끼는 위기감 역시 같은 종류입니다. 로고테라피에 의하면 우리는 삶의 의미를 세 가지 방식으로 찾을 수 있습니다.

1. 무엇인가를 창조하거나 어떤 일을 함으로써
2. 어떤 일을 경험하거나 어떤 사람을 만남으로써
3. 피할 수 없는 시련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하기로 결정함으로써

저자는 ‘실업으로 인한 신경 질환’으로 고생하는 젊은 환자을 상담하며 두 가지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첫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것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 됐다는 것과 동일시하고, 둘째, 쓸모없게 됐다는 것을 무의미한 삶을 살게 됐다는 것과 동일시한다는 것이지요. 저자는 환자들에게 청소년 기관이나 성인 교육 기관, 공공 도서관 같은 곳에서 봉사를 하라고 권유합니다. 엄청나게 남아도는 자유 시간을 비록 돈을 받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일에 쓸 수 있도록 한 것이지요. 그러자 경제 상황에는 변화가 없고 전과 같이 굶주리고 있음에도 우울증은 사라졌습니다. 

저자는 나이 든 사람을 불쌍하게 여길 이유가 전혀 없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나이 든 사람을 부러워해야한다고요. 물론 나이 든 사람에게 미래나 기회가 적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미래에 대한 가능성 대신 과거 속 실체, 즉 그들이 이루었던 꿈, 그들이 성취했던 의미들, 그들이 깨달았던 가치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것도, 그 어느 누구도 과거에 이루어낸 이 자산들을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저자는 우리에게 경계심을 갖자고 말합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의 경계심을.

‘아우슈비츠 이후 우리는 인간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게 됐다. 그리고 히로시마 이후 우리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게 됐다.’

힘든 시간을 보내는 분이 있다면, 삶의 고난과 시련의 의미를 고민하는 분이 있다면 함께 읽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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