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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열등감을 줄이는 방법

by 김민식pd 2023. 11. 10.

좋은 삶은 어떤 삶일까요? 저는 나라는 존재에 대해 스스로 만족하며 사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내가 사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열등감에 시달릴 때도 있습니다. 열등감은 미디어와 SNS가 발달하면서 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비교 대상이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주로 내 눈에 보이는 구체적 대상, 즉 주변 사람과 나를 비교했는데요. 각종 미디어가 발달하며 막연한 대상, 이를테면 ‘재벌’이나 ‘연예인’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이미지가 생겼습니다. 그렇게 잘 모르는 대상에게도 구체적 열등감을 느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런 시대에 열등감을 어떻게 하면 줄이고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을까, 오늘은 그걸 도와주는 책을 한 권 소개합니다.

<당신은 당신으로 충분히 빛나는 존재입니다> (최명기 / 다산북스)

정신과 의사인 저자 최명기 선생님은, 한 번뿐인 인생, 타인과 비교하며 열등감에 눌려 사는 건 너무 억울하지 않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열등감 중에는 타인과의 비교 없이 생기는 열등감도 있습니다. ‘나는 애초에 못난 사람으로 태어났어.’ ‘난 태어나선 안 될 열등한 존재야.’ ‘난 평생 이런 구질구질한 삶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야.’ 구체적인 비교 대상 없이 느끼는 열등감을 정신과에서는 ‘존재적 열등감’이라고 부릅니다. 존재적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자신을 ‘그냥 열등한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뭘 하든 스스로가 열등하다는 생각에 빠져 있고, 그래서 아무리 장점을 알려줘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가 ‘문제’라는 착각에 빠져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열등감은 지속적인 폭력 때문에 생겨납니다. 예를 들어 아이의 생활에 사사건건 참견하고 매사에 잘못을 지적하는 권위적이고 폭압적인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는 존재적 열등감에 빠집니다. 어려서 내가 가장 오래 마주하고 살아온 어른이기에 부모가 자식에게 끊임없이 투사하는 이미지는 어른이 되어서도 마음에 흔적을 남깁니다. 존재적 열등감에 사로잡힌 사람이 자력으로 자존감을 끌어올려 열등감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존재적 열등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존감을 도둑질하는 ‘심리적 하이에나’로부터 달아나는 일입니다. 

자식을 비난하는 부모는 자신이 하는 말이 ‘비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이거 못 고치면 너 어디 가서 더 욕먹어.” 부모뿐만이 아니라 배우자나 회사 상사가 지속적으로 이런 비난을 계속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속으로 ‘웃기지 마.’라고 하고 달아나세요. 저런 말을 일삼는 사람 대부분은 사실 남을 깎아내리며 우월감을 느끼면서 자신의 자존감을 채웁니다. 이런 사람들은 남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그래도 나는 너보다 낫다’고 자기 위로를 하며 살아갑니다. 이들은 심리적 하이에나입니다. 그것이 친구든 직장 동료든 심지어 부모더라도 최대한 멀리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자존감을 지킬 수 있어요.

저는 어려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이과를 선택하고, 가고 싶은 국문과나 영문과 대신 공대에 진학해야 했습니다. 대학 시절, 엄청 불행했어요. 과 전체 72명 중에서 70등을 기록하며, ‘나는 왜 이렇게 머리가 나쁠까?’ ‘공부를 못하는 나같은 사람도 쓸모가 있을까?’ 고민에 빠졌어요. 그러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1년에 200권을 읽었더니 도서관에서 다독상을 주더라고요. 내가 못하는 공업 수학보다, 내가 좋아하는 독서에 시간을 들이니 독서가 특기가 되었습니다. 독서의 효능감을 조금씩 맛보면서 저는 열등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저는 회사에 취업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룬 후 아버지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어요. 나를 비난하고 깎아내리는 심리적 하이에나들로부터 정신적으로 독립하려면 육체적으로 먼저 거리를 두는 게 중요합니다. 함께 살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고, 마주치지 않으면 부모가 잔소리를 할 수도 없으니까요. 이때 ‘경제적 독립’도 동시에 이뤄져야 합니다. 부모에게 금전적 지원을 받는다는 것은 곧 ‘간섭할 권리’를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금전적 지원이 계속된다면 아무리 멀리 살아도 관계는 변하지 않습니다. 부모와 당신은 여전히 ‘갑’과 ‘을’의 관계일 테니까요. 자존감을 지키기 위한 독립은 단순히 ‘부모와 따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내 힘으로 살면서 부모에게 간섭할 권리를 주지 않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반대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가까이하세요. 칭찬해 주는 사람 곁에 있으세요. 우리는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보다는 내가 동경하는 사람에게 더 끌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기 있는 사람, 능력 있는 사람을 동경하고 그들과 가까워지려고 노력하지요. 그런 사람과 어울리면 나도 덩달아 빛날 것 같지만, 그럴수록 열등감은 더욱 심해질 뿐입니다.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기세요.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 커다란 업적이나 놀라운 성취를 해야만 하는 건 아닙니다.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무슨 대단한 업적 때문이 아닙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문제에 가장 중요한 것이 업적이나 능력이라면 우리가 아는 유명인들이 자살을 택할 리는 없습니다. 인간이 계속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아주 작은 즐거움입니다.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종일 스마트폰을 쥐고 사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게임이든 유튜브든 무엇을 해서라도 작은 즐거움을 느껴야 계속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맛있는 것을 먹어야 합니다. 인간은 단순한 면이 있거든요. 자신이 못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우울감을 느끼다가도 무언가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소소한 즐거움과 맛있는 음식. 그게 바로 사람을 계속 살아가게 해주는 힘입니다.

우울감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하면 잠시 현실에서 떠나 스마트폰을 찾으세요. 웃긴 글을 읽든, 웃긴 영상을 보든 상관없습니다. 실컷 웃고 낄낄거리세요. 밤에는 야식을 음미하며 오늘의 화났던 일, 슬펐던 일, 자기 비하에 빠졌던 일을 훌훌 잊어버리세요. 그러다 보면 재미있는 것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내가 너무 힘들어 지옥 같을 때는 무엇이라도 위안거리가 있다면 그것으로 괜찮습니다. 게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게임은 아주 좋은 심리적 보상물이 됩니다. 자기 비하에 사로잡히면 괴롭고, 하루 종일 자기 비하라는 공격에 시달리다 보면 지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든 자기 비하를 잊어버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등 일반적으로는 ‘쓸데없다’고 여겨지는 시간이 좋은 심리적 보상물이 되는 것입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 낄낄거리거나 게임을 하면 잠시라도 자기 비하에서 벗어날 수 있으니까요.

저는 유난히 청중들의 반응이 저조해 힘든 강연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버스 안에서 책을 펼치기보다 스마트폰에서 간단한 퍼즐 게임을 합니다. 애니팡이나 토이블라스트처럼 같은 색깔, 같은 모양을 찾아 묶어주는 간단한 게임을 즐기는데요. 게임은 우리에게 다양한 만족감을 안겨줍니다. 강연을 아무리 잘하려고 노력해도 그걸 듣는 청중의 반응은 내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게임은 내 뜻대로 됩니다. 눈앞에서 팡팡 터지는 시각적 즐거움, 촤르르르 점수가 올라갈 때 쾌감을 주는 청각적 즐거움. 하는 만큼 점수가 올라가니 성취감이 생기고, 게임 미션을 수행함으로써 잠시나마 효능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이템이 쌓이면 재산이 불어난 느낌이 들고, 어쩌다 ‘득템’을 하면 내게도 행운이 찾아오는구나 기분이 좋아져요.

정신과 의사인 최명기 선생님은 병원 진료실에서 끝도 없이 계속되는 자기 비하, 자책, 열등감 때문에 괴로워하는 환자를 만나면, 좋아하는 게임이라도 하기를 권한답니다. 게임이든 SNS든 마음의 허전함을 채워줄 무언가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그 편이 자기 비하 극복에 훨씬 도움이 됩니다.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만드는 것은 자책감과 열등감이지, 심리적 보상물 그 자체가 아닙니다. 어쩌면 “게임을 하지 마라”, “SNS에 너무 빠지지 마라”라고 지적하며 우리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사람들이야말로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의 원인일지도 모릅니다.

내 마음이 지옥이라면, 좋아하는 것,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것에서 위안을 찾으세요. 쇼핑을 해도 되고, SNS를 해도 되고, 게임을 해도 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단 살아내야 합니다. 그 편이 죽는 것보다 낫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 보면 어느 순간 괜찮아지는 날이 옵니다. 게임을 이제 좀 줄이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SNS를 끄고 친구를 만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감정이 여전히 지지부진하고, 그 순간이 너무 늦게 찾아오는 것 같다는 걱정이 들면 그때는 심리 상담을 받거나 약을 먹으면서 외부의 도움을 받으세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당신은 이미,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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