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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독일 뮌헨 여행기 2탄

by 김민식pd 2023. 10. 11.

지난 7월 31일에 다녀온 뮌헨 여행기 둘째날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친구랑 밥을 먹다 뮌헨에 간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다하우 수용소에 꼭 가봐요." "응? 거기는 왜?" "가보면 느끼는 게 있을 거야." 왜 여행가서 굳이 유태인 수용소를 가보라는 거지? 그래도 좋아하는 친구의 말이라 일단 믿고 가봅니다.

가는 길 기차 안에서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다시 읽습니다. 저자 빅터 프랭클은 1905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났고, 빈 대학에서 의학박사와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3년 동안 다하우와 아우슈비츠 강제 수용소에서 보냈지요. 저자는 운좋게 살아서 나왔는데, 부모님과 아내, 여동생 등 모든 가족이 다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은 후였어요. 어떻게 살 것인가? 삶의 의미를 고민하며 쓴 책입니다. (이 책에 대한 리뷰는 다시 상세히 올릴게요.) 

다하우 기념공원 입구에 적힌 글귀.

'다하우라는 이름의 중요성은 독일 역사에서 절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치가 세운 모든 수용소를 대표하니까.'

<기억의 길>을 따라 걷습니다.

길목마다 당시 나치의 행적을 담담하게 적어놓았습니다. 독일어/영어로 적혀 있어요. 전세계에서 찾아온 이들에게 자신들의 부끄러운 과거를 소상하게 고백하는 독일 사람들. 반성은 쉽지 않은데 말이지요. 

철조망 안으로 보이는 건 SS 공장 건물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강제 노동하던 곳이었어요.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보면, 그래도 저렇게 공장에 가서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은 운이 좋은 사람들이었어요. 체력이 떨어지거나 영양실조로 병에 걸린 사람들은 가스실로 보내졌으니까요. 간신히 서 있기도 힘든 사람이 어떻게든 공장으로 가는 노동자 대열에 서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안타까운 장면도 나옵니다.

다하우에는 유대인 수용소와 SS친위대 훈련소 병영이 같이 있었어요. 강제노동을 통해 군대 막사를 짓고 훈련소를 지었다고 기록합니다.  

기억의 길, 종착지는 다하우 역입니다. 1933년에서 45년 사이 20만명이 여기로 끌려왔고요. 다하우 역에서 내려 SS친위대의 감시 아래 수용소로 행군했답니다. 당시 시민들이 보는 앞에서 곤봉을 내려치며 걸음을 재촉했다고요. 그렇게 끌려가는 이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조각도 있습니다.


다하우 수용소 Dachau KZ Gedenkstätte
1933년 3월 이후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는 독일 곳곳에 강제 수용소를 세워 정치범 등을 투옥해 강제 부역을 시키며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했는데, 그중 최초의 수용소가 이곳이다. 정치범 외에 동성애자, 전쟁 포로, 유대인 등 일반인 까지 12년 동안 20만 명 이상이 수감되었고 4만 1500명이 살해되었다고 한다. 나치의 만행이 여과 없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과 당시의 참혹함이 전해 지는 각종 시설을 바라보는 일이 쉽지만은 않지만 잘못된 역사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독일의 진심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곳곳에 세워진 추모비에서는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독일 셀프트래블(2022-2023)> | 김주희 저

41,500명이 목숨을 잃은 곳. 여기는 커다란 묘지이기도 해요. 당시에 죽은 사람은 묘나 비석을 따로 남기지 못했으니까요.

여행기가 너무 무거워졌네요. 분위기를 바꿔 예쁜 풍경을 보러 갑니다.

첫째날에는 뮌헨 중앙역 근처 여행지를 돌아봤고요. 둘째날에는 외곽으로 나와 근교 여행을 다니는데요. 뮌헨 외곽에는 다하우 수용소와 님펜부르크 궁전이 있어요. 

님펜부르크 궁전 Schloss Nymphenburg
옛 바이에른 왕국을 다스렸던 비텔스바흐 왕가의 여름 별궁. 1662년 막시밀리안 2세의 탄생을 기념해 이탈리아식 저택을 지었고, 18세기에 확장하면서 바로크와 로코코 양식이 공존하는 궁전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이름은 궁전의 연회장 Festsaal 천장 프레스코화에 그려진 ‘님프(요정)’에서 유래되었다. 궁전은 루트비히 1세가 모아둔 당대 미인들의 초상화 갤러리 등이 유명하다. 궁전과 정원이 대칭 구조로 되어 있고 다 둘러보려면 반나절 정도의 시간과 체력이 필요하다.

독일 셀프트래블(2022-2023) | 김주희 저

궁전 내부 입장 더하기 미인들의 방 갤러리 티켓은 8유로입니다. 정원은 티켓 없이도 둘러볼 수 있어요. 예전 같으면 궁전 외부만 보고 이렇게 사진 한 장 찍고 그냥 발길을 돌렸을 거예요. 가난했던 20대에는 그랬어요. 

이젠 표를 끊고 실내도 봅니다.

덕분에 유명한 천장화도 봅니다. 

그림이 무척 화려한데요. 가볍고도 흥겹습니다. 인테리어 디자인은 궁전 주인의 취향을 보여주지요. 

왕의 처소보다 왕의 취향을 더 잘 보여주는 곳은...

미녀들의 갤러리입니다. 루트비히 1세는 궁정화가에게 명을 내려 구두공의 딸부터 왕가의 공주까지 다양한 사회계층의 미녀들의 초상화를 그렸다고요. 이들 36장의 그림은 대중에게도 공개되어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왕은 여성의 미모가 높은 도덕성의 징표라고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화가를 시켜 온 나라의 미녀들을 수소문해 그림을 그리게 했다고요. 그중에는 루트비히 1세가 국가의 재정을 파탄내면서까지 열렬히 사랑했던 롤라 몬테즈도 있어요. 롤라는 뮌헨의 옥토버페스트에서 춤을 추다 바이에른의 국왕 루트비히 1세의 눈에 띄었어요. 롤라에게 푹 빠진 왕은 그녀에게 막대한 연금과 집을 지급하는 한편, 바이에른 국적과 백작 부인의 작위까지 주었다고요. 왕의 총애를 받은 롤라는 자신의 친지들에게 작위를 주는 등, 국정 간섭에 국정 농단을 했다고요. 이에 화가 난 귀족과 백성들이 왕의 퇴위 및 그녀의 추방을 요구했고, 궁지에 몰린 루트비히 1세는 결국 왕좌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미모를 밝힌 왕의 최후라고 할까요?

사람의 욕망은 통제하기 참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건 욕망하게 됩니다. 방 하나를 가득 미인들의 초상화로 꾸며놓다보니, 미인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커졌겠지요. 이 방은 중세의 인스타그램이에요. 이곳에서 미녀들에게 눈을 홀리면, 국정은 뒷전이 되지요. 이제는 온라인 공간이 미녀들의 갤러리가 되었어요. 화가에게 돈을 쥐어주고 그림을 그려오라고 시킬 필요도 없어요. 각자 알아서 찍어서 올리고 대중들의 투표(=좋아요)로 인기도가 결정되는. 아름다운 것을 탐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그걸 어떻게 절제하며 살 것인가, 그게 이 시대의 공부라 생각합니다. 

스위스에서 다음 여행지가 독일 뮌헨이라고 했더니, 누군가 이런 말을 했어요.

"뮌헨에는 왜 가요? 뮌헨 사람 불친절해요." 

과연 그럴까요?

뮌헨에서 4박5일을 머물렀는데, 불친절하다는 느낌은 없었습니다. 가끔 여행 다니다보면 저런 말을 들어요. 어느 나라는 사람들이 불친절하더라. 어느 도시는 사람들이 약삭빠르더라. 제한된 경험으로 인한 일반화의 오류입니다. 자신이 겪어본 표본이 적을 때 편견이 생깁니다. 어디서든 다양한 사람을 접해보잖아요? 그럼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가 거기라는 걸 알게 됩니다. 표본이 많아지면 평균으로 회귀하거든요. 

나치를 지지하고 유대인을 학살한 독일 사람은 나쁜가요? 유대인은 선한 피해자인가요? 좋은 나라 사람, 나쁜 나라 사람이 따로 없고요. 좋은 사람, 나쁜 사람도 따로 없어요. 중요한 건 선택이지요. 살면서 자칫 잘못하면 누구나 잘못된 선택을 하고 그릇된 길로 빠져들 수 있어요. 그러기에 우리는 늘 경계하면서 살아야 해요. 타인을요? 아니요, 자기 자신의 그릇된 욕망을요. 

이제 오스트리아로 갑니다. 2023 유럽 여행기, 다음 편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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