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공짜로 즐기는 세상>의 주인입니다. 술 담배 커피를 멀리하고 돈 들어가는 취미는 삼가며 삽니다. ‘돈 한 푼 쓰지 않고 세상을 즐길 수 있다면, 돈을 벌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아야 할 이유가 없다.’ 20대에 영업사원으로 일하다 문득 이런 깨달음을 얻은 후, 저는 평생 제가 좋아하는 일, 재미난 일을 찾아 살아왔어요.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며 살기엔 인생이 아깝다고 생각했거든요. 평생 지독한 짠돌이로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저보다 더한 분을 만났습니다.
<0원으로 사는 삶 : 나의 작은 혁명 이야기> (박정미 지음 /들녘)
강원국 선생님이 진행하시는 라디오 <지금 이 사람>을 듣다 저자를 알게 되었어요. 만 스물아홉, 워킹 홀리데이로 떠난 영국에서 해고를 당했어요. 통장 잔고는 300만원. 딱 두 달치 월세였습니다. 2평 남짓한 방에 누워 연거푸 한숨을 쉬는데 불현듯 오싹했답니다. ‘뭐야, 숨만 쉬는데도 돈이 나가는 거야? 돈을 한 푼도 쓰지 않고 살 수는 없을까?’
그래서 시작한 게 ‘우핑’, 우프(WWOOF·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는 자원봉사자와 유기농 농장을 연결하는 상호 교환 네트워크랍니다. 봉사자는 무료 숙식을, 호스트는 일손을 제공 받는다고요. 제가 서울에 처음 올라와서 했던 일이 입주 과외였어요. 1987년 당시 한 달 월급은 10만 원이었지만, 그래도 먹여주고 재워주니 하숙비를 아낄 수 있어 좋았지요.
시골에서는 어찌어찌 가능하지요. 그런데 ‘살인적인 물가’로 유명한 런던으로 돌아와서도 돈 한 푼 안 쓰는 삶에 도전합니다. 런던에서는 집 없는 젊은이들이 보트, 자동차, 버려진 건물에서 생활을 합니다. 노숙인 듯 아닌 듯, 그렇게 살아가요. 먹거리는 ‘사냥’을 했답니다. 이른바 ‘스킵 다이빙’(skip diving). 쓰레기통(skip)에 몸을 던져(diving),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처리된 식료품을 구해서 먹었다고요. 패스트푸드 가게나 대형 슈퍼마켓은 특정 시간에 재고를 처리하고요. 아까운 음식 버리는 것보다 재활용한다는 자세로 살아갑니다.
“(스킵 다이빙은) 창피한 짓이 아니라, 버려진 음식을 ‘구조’하는 신나는 생계 활동이 되었다. 런던에서의 ‘0원살이’는 쓰레기 덕에 가능했다. 버려진 집, 버려진 음식, 버려진 자전거…. 도시의 낭비는 나에게는 기회였다.”
저자는 자전거를 구합니다. 자전거는 사람의 힘만으로 장거리 이동을 할 수 있는 수단이니까요. 돈을 내지 않고 공짜로 자전거를 얻을 방법은 없는지 문의하고 다니는데요. 자전거와 장비를 지원해 준 자전거 샵 운영자가 그럽니다. 그동안 무전여행을 위해 장비를 지원해달라는 요청이 많았지만, 특별히 저자에게 마음이 끌린 이유가 있다고요.
“당신이 하려는 프로젝트와 비슷한 것을 하려는 사람이 참 많아요. 그런데 그들이 설명하는 방식은 훨씬 더 부정적이에요. ‘세상은 개판이다. 모든 게 끔찍하다’라고 불평하죠. 반면에 당신이 설명하는 방식은 훨씬 더 긍정적이에요. 그게 매력적이었어요. 다른 사람들도 당신의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태도에 설득됐을 거예요. 그게 당신을 더 도와주고 싶어지는 이유예요.”
(75쪽)
저는 긴 시간 MBC 내부에서 싸웠는데요. 누군가가 미워서 싸운 게 아니에요. 내가 사랑하는 회사를 지키기 위해 싸운 겁니다.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은 세상을 긍정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책을 보면 ‘렌트비 없는 날’이 소개됩니다. Rent freedom day.
‘렌트비 없는 날’이란, 영국의 은행과 단체들이 각 지역의 렌트비 실상을 조사하여 만든 통계적 지표인데, 영국의 단칸방 평균 렌트비와 세입자의 평균 수입을 조사한 후에, 세입자의 모든 수입을 1년 치 렌트비에 소비한다고 가정하고 과연 일년 중 언제 렌트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는지 그 날짜를 산출하는 것이다. 런던의 렌트비 없는 날은 2018년 기준 9월 14이다. 1월 1일부터 9월 14일까지 버는 모든 돈이 렌트비로 사용되고 그 이후에는 렌트비에서 자유롭다는 의미다.’
(135쪽)
Rent freedom day. ‘월세 해방일’이라고 부르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작년에 경실련은 무주택자가 서울에서 아파트를 사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6년이 걸린다고 분석했어요. 조사결과에 따르면 30평형 기준으로 2004년 3억4000만 원이던 서울 아파트 가격이 2022년 5월 12억8000만 원으로 약 3.8배가 올랐는데요. 같은 기간 노동자 임금은 1900만 원에서 3600만 원으로 2배가 됐습니다. 2004년에는 18년간 동안 급여를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야 서울에 내 집 마련이 가능했다면 지금은 그 두 배인 36년간 급여를 모아야 장만할 수 있다고요. 말인즉슨 한국에서는 주거비용으로부터 해방되는데 36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이건 좀 문제가 있지요.
저자는 한국에 돌아와 지리산에서 생활합니다. 산속에 버려진 움막집을 무료로 빌려 그 집을 손수 고치고요. 주위 텃밭을 가꾸며 먹거리를 장만하고, 옷은 친구들이 버리는 걸 얻어 입는다고요. 의식주에 돈 한 푼 들이지 않는 삶을 한국에서도 실험하며 살아가는군요.
‘우리에게 생존과 사랑을 보장하는 것은 ‘시스템’이 아니라 ‘자연’이다. 시스템은 생존에 대한 불안과 ‘사랑받지 못할까 봐’의 두려움을 미끼 삼아 인간을 조종한다. 시스템 내에서는 ‘노동과 소비’에 의존해 생존과 사랑을 구해야 하지만, 자연에서는 ‘자립 자족’을 통해 생존과 사랑을 스스로 해결한다. 시스템 안에서는 생존과 사랑을 위해 경쟁과 투쟁을 벌이지만, 자연에서는 내가 별달리 애쓰지 않아도 생명과 사랑이 강물처럼 흘러온다. 시스템 속에서는 생존과 사랑의 열쇠가 오직 돈에 있지만, 자연의 세계에서는 공기, 물, 풀, 햇빛, 나무 한 그루 등 대지 위 모든 만물에서 그 열쇠를 발견한다. 시스템에서 나의 생존과 사랑은 어느 막강한 힘을 가진 누군가에게 달려 있지만, 자연의 세상에는 그 누구도 권력을 부리지 않는다. 모든 만물이 아무런 대가 없이 나를 보살피고 양육하며 사랑한다.’
(202쪽)
돈을 벌기 위해서는 타인의 욕망을 충족시켜줘야 합니다. 돈을 아끼는 건 나의 욕망만 절제하면 됩니다. 돈을 버는 것보다 아끼는 게 훨씬 더 쉬워요. 이론상으로는... 그런데 요즘 이게 쉽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미디어 탓입니다. 미디어는 사람들에게 식욕, 성욕, 과시욕을 자극하거든요. 거기에 불안까지 자극합니다. 지출을 아끼려면 미디어부터 멀리해야 할지 모릅니다.
‘요즈음 일정 기간 한 푼도 쓰지 않는 ‘무지출 챌린지’가 사람들 사이에서 퍼지고 있다는 뉴스를 보았다.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인생은 한 번뿐이라는 ‘욜로YOLO’와 자기 능력과 힘을 과시적 소비로 자랑하는 ‘플렉스 flex’라는 신조어에 혼자 가슴이 무너져내린 것이 엊그제였기 때문이다.
무섭게 치솟는 물가와 경기 불안에 젊은 세대는 그야말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다. 그리고 이 위험한 세상에 맞설 새로운 생존 방법으로 ‘무소비’를 택했다. 지갑을 닫아버린 젊은 세대를 두고 “경기침체를 악화시켜 나라가 망할 것이다”라며 혀를 차는 사람이 있고, 가난에 질린 젊은이들이 어쩔 수 없이 벌이는 ‘비자발적 소비 절제’라며 씁쓸해 하는 사람도 있다. 여기서 나는 이런 반응을 보이는 ‘어른’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다.
당신들의 소비는 세상을 구하고 있습니까? 당신들의 노동과 소비는 정말 자발적입니까?
‘무소비 챌린저’들은 나라를 망하게 하는 반역자도 아니고 선택의 여지가 없어 궁상떠는 패배자도 아니다. 내게 이들은 ‘무소비 혁명’을 함께 일으킬 혁명가 동지이자 세상에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선구자이며, 인류를 위기에서 구할 영웅이다.’
(439쪽)
자본주의 시대에 진정한 혁명은 0원으로 사는 삶입니다. 책을 읽다보면, 아니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까지 할 것까지야... 싶은 대목도 있는데요. 책장을 덮을 무렵에는 저자가 심한 게 아니라, 지금 세상이 너무 심하네,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걸 배웁니다. 역시 삶에서 직접 길어낸 지혜만큼 강한 메시지도 없어요. 응원합니다, 작가님. 공짜로 즐기는 세상,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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