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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자존감부터 챙기세요

by 김민식pd 2023. 7. 10.

평생 직업이 로맨틱 코미디 연출가였어요. 저는 사랑 이야기를 시트콤이나 드라마로 만드는 것도 좋아하고, 소설로 읽는 것도 즐깁니다. 사랑은... 음... 그 어떤 경험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인데요. 스타와 팬 사이 가상 연애도 좋고, 작가와 독자 사이 덕질도 좋지만, 역시 사랑은 직접 해보는 게 제일 좋습니다. 

예전에 소개한 <편집자의 사생활>의 고우리 편집자가 출판사를 차리고 처음 원고를 청탁한 저자가 정아은 작가님이에요.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정아은 / 마름모)

이 책에 대해 고우리 편집자는 이렇게 정리합니다.

‘사랑할 때 우리가 어떤 모습이었는가를 제삼자의 눈으로 냉철하게 바라보게 하며, 무엇이 내 의지로 할 수 있었던 일이고 없었던 일인지를 분류해내고, 그럼으로써 필요 이상으로 죄책감을 느끼거나 열등감에 빠져드는 질곡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런 경험들이 쌓일수록 내가 나를 존중하는 감정, 즉 자존감은 탄탄히 쌓이게 된다. 작가는 말한다. 나를 지키는 사랑은 사랑에 대한 ‘앎’에서 시작한다고.‘

맞아요. 저도 어려서 사랑이 너무 서툴러서 사랑을 책으로 공부했습니다.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이라든지,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 등. 소설에서도 많은 사랑의 형태를 만났는데요. 특히 제가 본받고 싶었던 건 레트 버틀러의 사랑이었어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주인공 스칼렛은 애슐리를 짝사랑합니다. 애슐리가 사촌인 멜라니와 결혼한 뒤에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아요. 세 번의 결혼을 거쳐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후까지도 스칼렛의 마음은 그대로지요. 스칼렛의 오랜 친구이면서 세 번째 남편인 레트가 그 마음을 돌리려 갖은 애를 써보지만, 스칼렛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스칼렛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는 건 멜라니의 죽음 이후 무너지는 애슐리를 보고 난 후입니다. 고귀하고, 박학다식하고, 정의로웠던 애슐리는 사라지고, 무기력하고, 우유부단하고, 달라진 시대 상황을 못 본 척하며 과거의 허상에만 매달리는 비겁한 남자만 남았다는 걸 깨달아요. 그제야 자신을 평생 진정으로 사랑해준 사람은 애슐리가 아니라 레트임을 깨닫지만, 레트는 지칠대로 지친 후, 이제 애슐리가 홀아비가 되었으니 둘이 잘해보라며 스칼렛을 떠납니다. 스칼렛이 붙잡지요. 나는 그럼 이제 어떻게 살라고? 그러자 레트가 이런 대사를 남기고 바람과 함께 사라집니다.
“Frankly, my dear. I don’t give a damn.”

1995년에 종로외국어 학원 통대 입시반 수업에서 이 대목을 틀어주신 한민근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영화가 나온 당시만해도 이 대사는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논란이 컸다고요. 요즘은 흔하게 쓰는 욕이지만, 그때만 해도 Damn은 강하고 거친 금지어였거든요. 

어릴 적, 어머니가 그러셨어요. 사랑은 오해로 시작해서, 이해로 끝난다고. 스칼렛은 애슐리를 오해함으로써 짝사랑에 빠지게 되고요. 그 남자를 제대로 이해하게 된 순간, 그 사랑은 식어버립니다. 사실 사랑을 시작하게 되는 건, 미지의 존재에 대한 어떤 갈망 때문이지요.

어린 시절, 우리의 첫사랑은 스타가 그 대상인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는 옆집 이웃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어도 화면을 통해 만나는 스타에 대해서는 속속들이 압니다. 현실에서 만나본 적도 없고 앞으로도 만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인물의 출생연도, 가정환경, 인생 내력, 취향, 연애 이력까지 샅샅이 알게 되지요. 스타를 향한 대중들의 짝사랑은 스타에게도 영향을 크게 미칩니다.

스타의 자리에 오른 한 명의 사람에게 대중은 절대적입니다. 스타가 갖는 영향력과 힘이 전적으로 대중에게서 나왔기 때문이지요. 평범한 누군가를 순식간에 스타 지위에 올려놓은 대중은 특정한 계기를 만나면 눈 깜짝할 새에 스타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기도 하기에, 스타는 언제나 대중의 심기를 살피게 됩니다.

이 위태위태한 사랑의 관계에 심각한 위기가 찾아올 때가 있어요. 어느 날 만인의 연인으로 살던 스타가 한 사람의 연인으로 살고 싶다고 깨닫는 순간이지요. 책에서는 서태지와 신해철의 경우로 나누어 비교합니다. 끝까지 사랑과 결혼을 숨겼던 서태지와 만인 앞에 자신의 사랑을 공개했던 신해철. 그 차이는 어디에서 왔을까를 살펴보는데요. 책을 읽는 내내, 저자의 통찰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저는 사랑이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떠나갈 때 잘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랑이라는 일생일대의 사건에 인간이 대처할 수 있는 최대치는 사랑이 머물러 있던 시간을 복기하고 의미를 곱씹어 정리하는 정도일 것이다. 신의 얼굴을 들여다본 것 같았던 그 영험한 순간들에 내게 일어난 일이 무엇인지,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 그리고 상대에게는 어떤 파장을 미쳤는지,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강렬하게 약동했던 우리 인생의 한 찰나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그 사건에 내 전체 인생의 한 부분을 할애해줌으로써 남은 인생의 스토리가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할 수 있다.’ 

저는 연애 예찬론자입니다. 대학생 특강을 가면 연애를 꼭 하라고 권하지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우리는 더 나은, 더 멋진 내가 되기 위해 노력하게 되거든요. 영어 공부를 하고, 전국 대학생 영어 토론대회에 나가 2등상을 탄 후, 비로소 제 연애는 가능해졌어요. 내가 자존감을 키울 수 있게 되었어요. 내가 나를 좋아하게 된 후에야 누군가를 제대로 좋아할 수 있게 되더군요. 

사랑을 하기 위해 먼저 해야 할 일은 나를 우선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편집자의 책을 읽고, 그 편집자가 만든 소설가의 에세이를 이어서 읽습니다. 책에 대한 사랑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좋아요. 연애를 이런 식으로 하면 욕먹기 딱 좋지만... ^^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

오늘도 책 속에서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느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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