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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책 만드는 사람 이야기

by 김민식pd 2023. 6. 26.

남은 평생 책을 읽고 쓰는 사람으로 살겠노라 결심한 저는, 출판계에서 일하는 분들의 삶이 늘 궁금합니다. 그들은 누구를 만나 어떻게 일을 하는 걸까? 편집자라는 직업은 왜 선택한 걸까? 그런 궁금증을 풀어주는 책을 한 권 만났어요. 

<편집자의 사생활> (고우리 / 미디어샘)

오랜 시간 편집자로 일하던 저자는 1인 출판사를 직접 차립니다. 

‘독립을 한다고 하니 출판을 좀 안다고 하는 분들은 이렇게 조언해주었다. 회사 다닐 때 많이 많이 준비해두어라. 기획도 활발히 하고 원고도 좀 쌓아두고 퇴사하여라. 책이 너무 띄엄띄엄 나오면 먹고살기 힘들다. 월급 따박따박 나올 때 작가들이랑 미리미리 계약해두고 나가야 한다.’

저도 이 의견에 공감합니다. 2017년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를 내고 외부 활동이 많아지자 회사 안에서는 곱지 않은 눈길을 보내는 이도 있었어요. 하지만 이제는 100세까지 사는 시대입니다. 회사가 나이 60 넘어서도 직원의 삶을 챙겨주는 건 아니잖아요? 최재천 교수님이 쓰신 <당신의 인생을 이모작하라>는 책을 읽고 느꼈어요. 은퇴 이후의 세컨드 커리어 준비는 첫 직장을 다닐 때 해야 한다고.

세컨드 커리어를 준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퍼스트 커리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업계에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는 게 중요해요. 아무런 성과를 올리지 못한 사람이 직장을 나와 하는 이야기에는 말에 무게가 실리지 않아요. 첫 직장에서 열심히 일한 경험이 이직 후에도 도움이 됩니다. 누구도 평판 게임에서 자유롭지 못하거든요. ‘그 친구, 본업은 내팽개치고 부업만 열심히 하더라?’ 그런 소문은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출판사를 차리겠다고 선언한 후부터 제일 많이 들은 말이 SNS를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러 작가님들, 업계 친구와 선배들이 그랬다. 요새 1인 출판사들은 대표 그 자체가 브랜드가 된다고들 했다. 그때마다 우는소리를 했다. “제가 막 나대고 드러내고 그런 성격이 아니거든요? 저는 익명성이 좋거든요? 저 어쩌면 좋아요. 그런 거 잘 못하는데...”’

퇴사 준비는 온라인 브랜딩에서 시작합니다. 회사 생활하면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블로그에 글을 올렸습니다. 10년을 꾸준히 올리니 자신이 생기더군요. 저는 블로그 하나 믿고 퇴사한 셈입니다. <매일 아침 써봤니?>에서도 얘기했지만, 온라인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은 오프라인에서도 자리 잡기 쉽지 않아요.



‘편집자가 좋은 것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말을 걸 수 있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책을 내자고 제안할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호기심이 많다. 열려 있는 편이다. 그것이 내게 주어진 가장 큰 장점이 아닌가 싶다. 나의 세계 바깥에 있는 이상하고 신기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이 편집자에게 얼마나 큰 자산인지를 잘 알고 있다. 무엇보다 SNS를 통해서 나는 그 경험을 맘껏 즐기게 되었다.’

고우리 편집자가 작가들과 협업을 할 때 특별히 주문하는 게 있어요. ‘원고를 쓸 때 즐거웠으면 좋겠다. 쥐어짜내듯, 마감 기한을 지키기 위해 괴로운 마음으로 원고를 쓰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건 퇴사한 후 새롭게 일을 찾는 저의 기준입니다. '설레어야 한다.' 강의 요청 메일이나 원고 청탁을 받았을 때, 설레어야 해요. 설레지 않는다는 건 부담스럽다는 뜻입니다. 평생 직장생활을 하며, 설레지 않아도 해야 했던 일이 많았어요. 물론 그런 상황에서도 최선의 결과를 뽑아내고, 최소한의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지요. 그건 젊었을 때 일입니다. 매월 꼬박꼬박 월급이 나올 때 일이고, 가장으로서 책임이 무거울 때 일이에요. 나이 50 넘어 설레지 않는 일에 열정을 바치며 살면 스트레스가 심하고요. 중년의 스트레스는 노년의 질병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설레지 않는 일을 열심히 하는 건 이제 건강에 부담이 되는 나이에요. 그런 나이가 된 거죠. 

퇴사 준비생들을 위한 꿀팁이 가득한 책이고요. 예전에 소개했던 <편집자의 마음>처럼 책을 만드는 이들의 일과 삶을 엿볼 수 있는 책이에요. 책을 보니, 고우리 편집자가 출판사를 차리고 낸 첫 책이 제가 좋아하는 정아은 작가님의 책이네요. <높은 자존감의 사랑법> (정아은 / 마름모). 편집자가 정아은 작가의 신작 에세이 원고를 받는 과정이 나오는데요. 그 책을 또 읽었습니다. 편집자에서 저자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책을 읽는 즐거움~

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은퇴자로서 책 읽기 딱 좋은 날이네요. 오늘도 책 속에서 즐거움을 만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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