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쿠바 여행 갔을 때 일입니다. 바닷가 휴양지에서 썬베드에 누워 쉬는데 내 옆자리에 앉은 젊은 러시아 군인들이 쿠바 시가를 계속 피워대는 거예요. 그러면서 휴대폰 스피커로 러시아 팝송을 크게 트는데 자꾸 짜증이 났어요. 그러다 문득 생각해봤어요. 어쩜 러시아에서는 야외 흡연이 아무런 문제가 없고, 음악 재생 역시 괜찮은 일인데 내가 타인의 시선을 과도하게 의식하는 한국 사회에 익숙한 탓에 괜히 화를 내고 있는 거 아닌가? 제가 나이가 들어가는지 자꾸 아집이 늘고요, 쓸데없는 참견을 자꾸 하려고 들어요. 뉴스를 보다가 화가 날 때가 종종 있고요. 이럴 때, 내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 필요합니다.
<정의감 중독 사회> (안도 슌스케 지음 / 송지현 옮김 / 또다른우주)라는 책을 보면 이런 글이 나옵니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나 타인에게 관대하지 못하다. 그런데 자신의 잘못은 의식하기 힘들고 남의 잘못은 잘 보이니 남에게만 가혹하게 되기 쉽다. 자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잘못을 저지르는데, 남의 사정은 알지 못하고 그 사람의 잘못만 눈에 보이기 때문이다.’
확 찔립니다.
사람은 누구나 정의감에 중독되기 쉽습니다. 왜 그럴까요? 세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활력을 느낍니다.
정의를 내세울 때는 활력과 보람을 느낍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옳은 일을 하면 칭찬받고 잘못을 저지르면 혼났어요. 내가 정의롭다면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정욕구가 정의감 중독으로 이어집니다.
둘째, 정의의 기준이 같은 사람들에게 일체감을 느낍니다.
인터넷에서 정의를 내세운 댓글을 달면 ‘좋아요’를 많이 받기도 하고 공감하는 답글을 다는 사람도 만납니다. 일상생활에서는 정의를 소리 높여 얘기할 일도 별로 없고, 그런 주장에 공감해주는 사람을 찾기도 어렵지요. 온라인에서는 정의를 이야기하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고, 세상의 다수가 내 편이라고 느낄 수 있어요.
셋째, 내면의 갈등과 혼란을 덜어줍니다.
옳고 그름의 이분법으로 바라보면 세상사가 명쾌해집니다. 많은 것들이 불확실한 시대에 눈앞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미래를 예측할 수 없을 때 사람은 불안과 고통을 느낍니다. 절대적인 신념을 갖는다면, 혼란이 사라지고 나아갈 길이 보입니다.
사회학자 오찬호 선생님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인터넷에서는 ‘참교육’ 운운하며 당당하게 타인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인증 사진을 공유하고 환호하는 폭력적인 집단 분노가 퍼지고 있다. <정의감 중독 사회>는 주관적인 잣대로 정의감을 휘두르며 극과 극으로 반응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마주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날 선 분노들 사이에서, 차분하게 호흡하고 싶은 사람에게 권한다.’
책에는 정의감 중독 정도를 알아보는 테스트가 있는데요. 해보니 저는 중간 정도의 중독이네요. 정의감 때문에 말실수나 과도한 행동을 하고 후회하는 일이 있다고요. 안정감을 느낄 때는 정의감에 의존하지 않고도 자신의 분노를 다스릴 수 있지만, 상황이 나쁘거나 힘들 때는 누군가를 또는 뭔가를 공격해서 자신을 지키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요. 정의를 휘두르기 쉬운 곳인 포털 뉴스나 SNS, 정치 유튜브 방송 등과 거리를 두라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려고요.
사람은 힘들 때, 정의감에 중독되기 쉬워요. 타인의 상황에 대해 깊이 있게 들여다보거나 그 사람의 입장에서 고민하려면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들거든요. 그냥 단순화해서 상대를 악으로 규정하면 대응이 쉽고요, 그렇게 정의의 사도가 된 자신에 대해 효능감이 생깁니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타인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거죠.
‘분노는 어떻게 정의감을 내세운 마녀사냥이 되었나?’
책표지의 글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혹 나는 정의감에 중독되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봅니다.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 중산층이 무너지는가? (11) | 2023.09.18 |
---|---|
인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 (18) | 2023.09.04 |
우리는 유혹을 이길 수 있을까? (13) | 2023.08.21 |
우리 시대 진짜 혁명 (11) | 2023.08.16 |
일 잘하는 사람의 새로운 기준 (8) | 2023.08.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