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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규슈 올레 가라쓰 코스

by 김민식pd 2023. 7. 5.

23년 4월 9일, 아침에 일어나 나가사키 역으로 갑니다. 오전 8시 44분, 다케오 온천행 열차를 탑니다.

신칸센 가모메 열차, 디자인이 예쁘네요. 오전 9시 8분. 다케오 온천역에 도착하면 바로 건너편 승강장에서 9시 11분에 있는 사가행 열차로 갈아탑니다. 규슈 JR 패스를 끊고 다녔는데요. 1주일간 무제한 열차 승차를 할 수 있어 참 편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열차를 매일 타는 건 아니에요. 얼마나 많이 다니느냐 보다 더 중요한 건 얼마나 잘 보느냐니까요.


아침 9시 30분에 사가역에 도착했는데요. 9시 38분에 있는 가라쓰선으로 갈아탑니다. 늘 정시 도착, 정시 운행이라 여행 계획을 세우기 편해요.


가라쓰선은 타는 사람이 없어 한적했어요. 평일 낮시간이라 그런 걸까요? 오전 10시 46분에 가라쓰역에 도착합니다. 나가사키에서 가라쓰까지 열차로 2시간 정도 소요되는 군요. 구글 지도에 나오는 열차 시간표의 정확성에 놀랐어요. 

저는 열차 여행을 좋아해요. 장시간 집중해서 책을 읽을 수 있거든요. 그날은 <차이나 쇼크> 읽었는데요.

'내가 중국 리스크를 떠올릴 때마다 가장 걱정되는 것은 지금까지 길게 이야기한 외교와 경제 분야의 문제들이 아니다. 나를 포함해서 대다수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위협하는 정도가 아닌, 향후에 송두리째 파괴할 수도 있는 진짜 중국 리스크는 따로 있다. 

그건 바로 중국의 대만 침공이 촉발할 수 있는, 미중 간의 전면 전쟁 가능성이다. 그것도 5년 안에 상당히 높은 확률로 말이다.'

라는 대목이 은근 무섭네요. 지난번에 올린 리뷰를 참고하시어요~ 

일본은 동북아 패자로서 다시 부상하는 중국이 달갑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 청일전쟁과 난징학살이라는 과거사도 걸릴 거고요. 그래서 미국을 끼고 한국과 안보 동맹을 맺으려는 것 아닐까요? 그런데 우린 일본이랑 입장이 다르잖아요. 적어도 우린 중국에게 가해자는 아니었거든요. 일본과 친해지는 건 좋아요. 근데요, 이럴 때 좀 튕기면서, 우리가 받아낼 건 좀 챙겨가며 가까워지는 건 어떨까요?

<서규슈 홀리데이>라는 책을 보면 가라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가라쓰 唐津
사가현 북서부에 위치한 가라쓰는 한반도와 관련된 역사 유적이 많고, 해안 절경이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청정 해역에서 잡아 올린 오징어로 유명한 요부코는 규슈 내에서도 미식가들이 즐겨 찾는 명소. 해변을 따라 100만 그루의 해송이 우거진 니지노마쓰바라는 ‘일본의 3대 송림’ 중 하나로 꼽히는 힐링 숲이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조선 침략의 전초 기지로 삼았던 히젠나고야 성터와 무령왕의 탄생 설화가 깃든 가카라섬 등이 오롯이 남아 있는 여행지이다.

 

니시가라쓰역에 내려 가라쓰 올레의 출발점인 히젠 나고야성을 가려면 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런데 버스 정류장을 찾기는 쉽지 않아요. 구글 지도를 찾아 정류장에 가보니...

일본어로 '바스 노리바' 라고 적혀 있네요. 그나마 저는 히라가나를 읽을 수 있으니 괜찮은데, 외국 관광객은 이 표지판을 어떻게 읽죠?  BUS라고 병기하면 좋을 것 같은데...


버스비가 편도에 760엔인데요. 요부코까지 가서 히바리가오카까지 가는 버스로 갈아타야해요. 그건 마을 버스인데 200엔. 결국 편도에 만원, 왕복에 2만원입니다. 시내버스 요금이 왕복 2만원? 왜 이렇게 비쌀까, 생각해보니, 지역 소멸 탓이 아닐까 싶어요. 나가사키나 후쿠오카 같은 대도시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지역으로 갈수록 이동 인구가 없어요. 기차에도 사람이 없고, 버스에도 사람이 없어요. 그러니 결국 대중교통 요금이 오를 수 밖에 없지요.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데, 스타렉스가 와서 섭니다. 응? 하고 보니 '쇼와 택시'라고 적혀있어요. 이건 택시 아닌가? 알고보니 마을 버스네요. 인구 고령화로 시골의 대중교통 사정이 어렵습니다. 버스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는 경우도 있고요. 손님은 나혼자예요. 이게 인구 감소, 지역 소멸의 현실이구나... 일본 여행하며 실감합니다.

이제 점심먹으러 갑니다. 여행자를 위한 관광식당에 갔다가 1인분에 2만원, 3만원 하는 메뉴를 보고 엇뜨거라, 하고 물러납니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大手門食堂

짬뽕 600엔, 우리 돈 6천원에 깔끔한 국물맛에 맛있는 백짬뽕을 먹습니다.

도로 표지판에 보니, 겐카이라고 적었는데, 한자로는 '현해'. 아, 여기가 현해탄이로구나! 싶어요.

입구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올레길 지도를 얻고, 시작점을 찾아갑니다. 

아웅 반가운 올레 리본 표식! 

이제 이 리본만 쫓아가면 됩니다. 제주 올레길 걷는 것과 요령은 같아요.


혼자 여행을 다니는 저는, 항상 여행 전에 책을 읽으며 현지 답사를 합니다.

<규슈 올레> (손민호 지음/중앙북스)라는 책을 보면 이런 설명이 나와요.

'규슈올레는 제주올레를 본 딴 길이지만, 성격은 전혀 다른 길이다. 제주올레가 한 민간단체가 앞장 선 일종의 시민운동에서 출발했다면, 규슈올레는 한국인 관광객 유치를 염두에 둔 일본 관광 당국의 마케팅 전략에서 비롯되었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이 급감하자 한국인 관광객에 크게 의존하는 규슈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 했다. 그 돌파구의 하나가 규슈올레 조성사업이었다.) 하여 제주올레는 제주도의 유명한 관광지를 어떻게든 피해 다니지만, 규슈올레는 규슈 각 지역의 대표 관광지와 어떻게든 얽혀 있다. 

제주올레는 제주도를 한 바퀴 순환하는 둘레길 형태를 띠는 반면에, 규슈올레는 다른 지역과 이어지지 못하고 한 지역 안에서 시작했다가 끝난다.'  
(10쪽)

그래서일까요? 일본 현지인보다 한국인 올레꾼들을 더 많이 보는 것 같아요.

가라쓰 올레길은 히젠 나고야 성터를 돌아보는 코스인데요.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중요 후방 거점이었습니다. 20만명이 거주할 수 있는 대규모 성이었으며, 대형 조선소와 항구 등이 설치돼있었어요.

아쉬운 점은 한글 설명 표지판을 찾기 힘들다는 겁니다. 

한국인이 많이 찾는 곳인데 왜 설명이 없을까요? 아마도 여기가 임진왜란의 전초기지라는 점을 굳이 한글로 알릴 필요가 없다고 느낀 탓 아닐까요? 하지만 다크 투어리즘이란 말도 있습니다. 과거의 화려하고 영광스러운 유적만 볼 게 아니라 가슴 아픈 역사도 알아야해요. 그래야 불행한 과거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고민할 수 있거든요. 


역사탐방의 길을 따라 어마어마하게 넓은 성터를 1시간 넘게 걸어다니며 생각했어요.

세상에, 현해탄 건너 이렇게 큰 성을 지으며 조선 침공을 준비하는데 이걸 우리 선조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니...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본거지였던 오사카성 다음 가는 규모로 큰 성을 지었어요. 17만 평방미터.

가라쓰 지역은 일본으로치면 변방 중에서도 변방입니다. 여기에 성을 쌓을 이유가 없어요. 대륙 정벌의 야심이 아니라면.

코앞에서 전쟁 준비를 하는데, 나라에선 까마득히 몰랐다니... ㅠㅠ 왕과 지도층이 무능하니 죽어나간건 애꿎은 양민들이었지요.

박물관이 있습니다.

마침 입장료가 무료라기에, 공짜 좋아하는 짠돌이, 얼른 찾아갑니다. ^^ 

히젠 나고야성의 규모를 보여주는 전시물. 이렇게 치밀하게 전쟁준비를 했는데...

이순신의 거북선을 만날 줄은 몰랐겠지요. 

일본 박물관에서 본 거북선의 위용에 가슴이 뜨거워집니다. 아, 하마터면 큰일날뻔 했구나, 그때...

조선에서 통신사도 보내고, 풍신수길(도요토미 히데요시)이 보낸 편지도 받았는데, 왜 조선의 궁궐에서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못한 걸까요? 번역의 오류도 한몫했을 것 같아요. 쇼군이 보낸 편지를 받아요. 한자로는 장군이지요. 응? 그냥 군대를 통솔하는 장군이 조선의 왕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조선은 문인들의 나라입니다. 무장들은 벼슬로치면 선비보다 아래에요. 그래서 장군이라는 직책을 크게 높이 보지 않았을 겁니다. 

일본은 선비가 아니라 사무라이가 지배하는 나라입니다. 끊임없이 내전을 치렀고요. 히데요시는 일본을 무력으로 통일한 패자에요. 일본의 천황은 지금 영국의 왕처럼 그냥 얼굴마담이고요, 쇼군이야말로 진정한 왕입니다.  쇼군이 일개 장군이 아니라 일본의 실질적인 왕이에요. 그의 명령에 전 일본은 전쟁 대비 태세에 들어간 것이고요. 바다 건너 저렇게 큰 성을 쌓고 있는데도 조선에선 태평하니 몰랐던 거죠. 

개인적으로 저는 일본어와 중국어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마스터하고 난 후 깨달았어요. 역사상 우리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두 나라가 중국과 일본인데, 이 두 나라를 아는 것이 중요하겠구나. 저는 반일도, 혐중도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혐오나 조롱의 대상을 이해하긴 어렵거든요. 규슈 올레길을 걸으며 <차이나 쇼크>를 읽은 것도 다 비슷한 맥락입니다. 그냥 싫어하거나 조롱할 게 아니라 대상을 알고 이해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10년 만에 새 책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를 들고 돌아온 경제학자 장하준(60) 교수님이 인터뷰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답니다.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한ㆍ미ㆍ일 공조를 하자고 하는데, 절대로 말려들면 안 된다. 우리는 대외 무역 의존도가 50%에 이르지만, 일본은 15% 수준으로 세계에서 가장 폐쇄된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은 정치적 이익을 위해 미ㆍ중 사이에서 한쪽을 버릴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럴 수 없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일본에 말려들지 말고 줄타기를 잘 해야 한다.”

저도 동감입니다. 

일본과 밀당하는 남자의 규슈 올레 답사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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