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대학 4학년 여름방학 때, 유럽 배낭여행을 갔어요. "취업하면 장기 해외 여행은 못 가니까, 졸업하기 전에 가야 해." 그 여행이 정말 좋았어요. 영어 공부한 보람도 느꼈고요. 한 달 동안 여러 나라를 돌아보는 재미가 있었거든요. 회사를 다니면서도 매년 한 번씩은 해외 여행을 다녔어요.
은퇴하고 저의 목표는 1년에 한번 해외 여행이 아니라, 짝수달마다 해외 여행을 다니는 겁니다. 방학 때는 장기 여행, 학기 중에는 단기 여행. 겨울방학에는 미국/쿠바/스페인/터키를 다녀왔다면, 지난 4월에는 8일 동안 가까운 일본에 다녀왔어요. 동경이나 오사카는 여러번 다녀왔지만 규슈 지역은 가본 적이 없었거든요.
일본어 회화책 핸드북을 가져가 공항에서 혼자 암송을 합니다. 뇌 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는 일본어 회화 기능을 활성화시켜야 할 때입니다. ^^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로 날아갑니다. 일본의 주요 도시 가운데 후쿠오카만의 특징을 들자면 뭐니 뭐니 해도 한반도와 대륙과 가깝다는 점입니다. 후쿠오카에서 도쿄까지는 직선거리로 약 900킬로미터, 후쿠오카에서 오사카까지는 약 500킬로미터지만, 한국의 부산과는 200킬로미터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즉, 한국과 더 가까운 거죠. (물론 그렇기에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한반도 침공 때 선봉 기지로 활용되기도 했고요.)
공항에서 지하철 역까지 무료 셔틀 버스가 있습니다. 후쿠오카 전철 1일권이 640엔인데요. 1회권이 260엔이니 하루에 3번 이상만 타면 남는 장사에요.
아침 일찍 일어나 봄비를 맞으며 달려간 곳은 오호리 공원입니다.
저는 공원 산책을 좋아합니다.
일기예보를 보니, 오전엔 비가 온다고요.
이럴 땐 실내 관람을 할 수 있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찾습니다. 후쿠오카 시 미술관에 갔어요. 입장료는 200엔. 뒤에 0을 하나 더하면 원화가 되는 거죠. 입장료 2000원.
그림이 있는 전시실 내부는 촬영 금지라 로비 풍경을 찍었어요. 그림을 보고, 저건 혹시 살바도르 달리인가? 하고 보니 진짜 달리 그림입니다. '와, 나 이제 그림 보는 안목이 생긴건가?' 2월에 뉴욕 미술관 여행 가서 달리 작품을 여럿 본 덕분에 감식안이 생겼나봐요. 원래 그림 보는 눈은 젬병이었는데. ^^
구글 이미지 검색으로 찾은 '리가트의 성모'. 후쿠오카 미술관 소장품인데요. 유명한 작품이네요. 작은 시립미술관인데 마크 로스코나 바스키아 작품도 있고요. 앤디 워홀의 엘비스도 있습니다. 영문 그림 설명이 없는게 아쉬우나 카메라를 일본어 설명문에 대고 켜면 구글 번역으로 한글이 뜹니다. 다만 그림은 촬영 금지니 오해받지 않게 조심하는 편이 좋아요.
어느 일본 해녀 할머니의 인터뷰가 상영되고 있었어요. 평생 물질을 하며 사셨는데. 같이 다니던 동료가 없어 외롭다는 말에 인터뷰어가 묻습니다.
"친구는 왜 안 나오나요?"
"영감이 말린대. 이제 잡을 것도 없고, 나이 들어 위험하니까 하지 말라고. 나? 나는 잔소리하는 영감이 없으니 그냥 나오지."
ㅋㅋㅋㅋㅋ
동창회에 다녀온 70대 아내가 풀죽은 표정으로 들어오는 걸 보고 남편이 묻습니다.
"와, 어느 집 손자가 서울대 갔다 카더나?"
"아니."
"그럼, 누구는 남편이 다이아반지 사줬다 카더나."
"아니."
"근데 왜 표정이 그렇게 어두워?"
"차 마시고 놀다가 다같이 밥먹으러 가는데, 나는 남편 밥 차려줘야 한다고 혼자 들어왔어. 다들 남편 일찍 보내고 혼자 사는데 나만 아직......"
고령화 시대에, 자기 밥은 자기가 챙겨먹어야 해요. 삼식이는 미움 받아요. 아내가 약속 있어 나가면, 본인도 알아서 밖에서 잡숫고 오거나, 밀키트로 간단하게 챙길 줄 알아야해요. 무엇보다 60이 넘으면 자기 앞가림은 하고 살아야 서로 민폐를 끼치지 않아요.
오호리 공원 바로 옆에는 후쿠오카 성터가 있어요.
조금 더 일찍 왔다면 벚꽃놀이를 했겠네요.
기모노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예쁜 카페도 있어요.
이제 시립 박물관으로 갑니다. 미술관은 art museum, 박물관은 그냥 museum이라고 되어 있네요. 입장료는 200엔(2000원)인데 지하철 1일권을 보여주면 50엔 할인됩니다. "앗싸, 개이득!"
일본의 축제 장면을 재연한 전시가 있고요.
도자기 전시관도 있어요. 후쿠오카는 예로부터 도자기의 고을로 유명합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잡혀간 도공들이 이곳에 정착했거든요.
조선인 도공들이 만든 도자기는 아름답기로 소문이 자자했어요. 전쟁으로 끌려간 이들이 어떻게 예술혼을 불사를 수 있었을까요? 김시덕 선생님이 쓴 <일본인 이야기> 1권에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임진왜란 때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간 조선인 가운데 일부가 전쟁 후에도 조선으로 귀국하지 않고 일본에 정착합니다. 재능만 있으면 본국에서 차별받느니 외국에서 대접받으면서 살겠다는 거죠. 도자기 굽는 재능이 있던 조선인 도공들이 그러했습니다.'
조선의 신분계급은 사농공상이었어요. 선비가 제일 우대받고, 그 다음이 농사 짓는 농부, 그 다음이 공인과 상인이었어요. 지금과는 반대지요. 지금은 장사하는 재벌이 선망의 대상인데... 지배계급인 유학자는 그렇다치고 농부는 왜 공인이나 상인보다 높았을까요? 농사짓는 땅을 가진 기득권 세력이거든요. 조선 시대에 물려받은 땅이 있다면 농사를 지었겠지요. 그런 땅이 없다면 남의 논에 소작을 부치거나 산으로 들어가 화전을 개간하기라도 해야겠지요. 그마저도 안 되면? 기술을 배워 물건을 만들거나, 장똘뱅이로 곳곳을 떠돌아야 했겠지요. 아무튼 조선 시대에 도자기 굽는 일은 천대받는 직업이었는데, 일본으로 건너간 순간 물 건너온 기술자가 되는 거지요.
순간, 이것이 미국이 IT 산업의 강자가 된 이유로구나!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이끄는 이들 중에는 인도나 중국, 유럽이나 남아공에서 건너간 프로그래머가 많아요. 어린 시절, 컴퓨터에 빠져살던 덕후들인데요. 고향에서는 별 대접을 못 받았지만, 미국에 가면 존경받는 벤처 사업가가 됩니다. 뉴욕 증시 덕분에 빠르게 투자금을 모을 수 있고요. 성공하면 엄청난 돈을 받고 엑시트할 수도 있고요. 그렇게 모은 돈으로 더 큰 사업에 도전할 수 있지요.
후쿠오카 타워를 보고
모모이치 해변공원을 걷습니다. 이제 비는 그쳤네요.
날이 개었으니 다시 오호리 공원을 걷습니다.
호숫가 산책을 하며 그런 생각을 했어요.
만약 내가 있는 곳에서 환대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다른 곳으로 떠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구나...
세상이 이렇게 넓은 데, 어디든 못가겠어요?
당신이 어디에 있든 환대받으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다음 편에서는 일본 근대화의 고향, 나가사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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