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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쿠바 트리니다드 여행

by 김민식pd 2023. 5. 3.

지난 2월 14일에 다녀온 쿠바 트리니다드 여행기를 올립니다.

제가 묵은 까사 (민박집)의 거실입니다. 스페인 식민지 시절 지어진 유럽풍의 건물이에요.

방이 넓고 깨끗합니다. 1박에 25달러. 3만원.

새벽에 "빵사세요~" 외침에 깼습니다. 시장 경제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으니 다들 각자도생합니다. 팔 수 있는건 다 팔고다니는데요. 상점을 열 수 없으니 직접 이고지고 다니며 팝니다. 계란 장수며, 과일 장수며, 바구니에 담아 손수 들고 다니며 팝니다.

주인이 차려주신 아침을 먹습니다. (조식 5불, 8천원) 스페인어로 뭐라뭐라 하는데, 오늘이 '디아 드 아모르'라고 하네요. '연인의 날? 아하! 2월 14일 발렌타인 데이로구나!' 한국이라면 며칠 전부터 편의점 앞에 산처럼 쌓인 초콜렛 선물 셋트로 알테지만 쿠바 들어온 후로는 초콜렛 구경도 못하고 와이파이가 며칠째 안되니 알 턱이 있나요. 

아침 먹고 길을 나서니 벼룩시장이 보입니다. 벼룩시장이 있다는 건 근처에 관광 명소가 있다는 얘기지요.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마요르 광장입니다. 

트리니다드 혁명 역사박물관이 이곳의 명소인데요. 종탑 전망대 오르는데 입장료는 50페소 (500원). 기꺼이 냅니다. 

종탑에 오르면 트리니다드 구시가의 전망을 볼 수 있어요. 계단 중간에 있던 직원이 "돈 드링크 바." Don't drink bar. 라고 하기에 고개를 갸우뚱했어요. 술 마시지 말라고? 아, 높은데라 위험해서 그런가? 웃으며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는데요.

올라와보니 여기저기 깨진 종들이 보입니다.

아! 돈트 링거 벨 "Don't ring a bell." 종을 치지 말라는 소리였군요. 

저멀리 앙콘 비치가 보닙니다. 차로 시내에서 30분 거리인데요. 지난 며칠간 카리브해는 만끽했으니 이번엔 패스. 

1층 박물관에는 미국의 쿠바 피그만 침공 때, 추락시킨 미국 전투기의 잔해가 전시되어 있습니다.

강당에선 라이브 기타 연주 공연이 있어요.

노련하네요. 중간에 후렴구가 나오자, 박수와 떼창을 유도하고, 어느 순간 기타 반주를 엇박자로 칩니다. 리듬을 놓친 박수가 잦아들자 목청을 높인 솔로로 기교를 마음껏 뽐냅니다. 관객의 참여도 유도하고 또 솜씨도 뽐내는데 아주 자유자재로 리듬을 탑니다. 관객 참여도가 높은 공연이네요. 

멋진 공간에 울려퍼지는 기타 소리~ 천상의 화음인걸요?

마요르 광장 옆, 계단 가득 앉아 있는 사람들. 여기가 바로 까사 드 라 무지카입니다.

밤 10시에 살사 공연을 하는 곳입니다. 입장료가 우리 돈 1000원이라니, 한번 와봐야겠네요.

점심은, 또띠야 하몽 이 케소, 햄 치즈 오믈렛입니다. 280페소 (2800원) 망고 주스는 1000원이고요.

마요르 광장 옆 건축박물관을 갑니다.

이즈나가 가문의 집인데요. 스페인 식민지 시절, 트리니다드의 농장주들이 얼마나 화려하게 살았는지 보여주는 역사적 장소입니다.

샹들리에는 보헤미아 즉 체코산이고요. 

장식 가구는 프랑스산. 유럽 각지에서 사들인 특산품들이 있습니다. 19세기 트리니다드 사탕수수 농장주 부호의 삶을 보여주는 곳입니다. 입장료 500원.

트리니다드 지역박물관입니다. 입장료 1200원.

역시나 과거의 화려한 부를 전시하는 곳.

전망대에서 마요르 광장과 혁명박물관 종탑이 한 눈에 들어옵니다. 

미국인들이 쿠바를 망치기 전에 얼른 가라더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요. 미국인 거의 없습니다. 대부분 유럽 여행자들이고요.

미국인들은 쿠바를 여행하려면 비자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아요. 발칸 반도에서 온 여행자를 만났는데요. 원래 태국을 가고 싶었는데 비자가 안 나왔답니다. 그곳에서 오는 여행자가 많지 않아 태국 관광청에서 아직 신경을 덜 쓰는 모양이에요. 비자 문제가 없는 나라를 찾아보니 그중 하나가 쿠바였대요. 유고슬라비아 시절 같은 사회주의 국가로서 동지애가 있나봐요. 개인적으로 저는 한국의 국력과 외교력에 감사하고 있어요. 한국 여권만 있다면 세계 어느 곳이든 갈 수 있거든요. 이런 여권 흔치 않아요.

트리니다드에서 했던 것 중 가장 좋았던 것은 승마 트레킹입니다. (3시간 15000원, 정말 싸지요. 놀이공원에서 고삐잡고 한바퀴 도는데 5000원인데, 여기서는 혼자 말을 타고 갑니다.)

말잔등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1시간 말타고 가면 산 아래에서 말을 쉬게 하고 혼자 트레킹을 합니다.

필롱 폭포, 수심 3미터인데 물이 맑아 다들 여기서 수영을 즐깁니다. 얕은 곳에는 이끼가 낀 곳이 많아 미끄러우니 조심해야 해요.

저는 승마를 몽골에서 간단하게 배웠어요. 몽골의 말은 작아서 초보자가 타기 딱 좋습니다. 몽골에는 끝없는 평원이 펼쳐져 있기에, 길도 차도 벽도 없어 초보 기수가 마음 편히 달릴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달린다는 건 경마 기수의 전력 질주가 아니라 트로트 따가닥 따가닥 가는 정도입니다.

몽골에서는 말을 탄 가이드가 앞에서 내가 탄 말의 고삐를 쥐고 갑니다. 여기는 가이드가 뒤에서 오고 혼자 말을 타고 갑니다. 몽골은 초원이라 정해진 길이 없어 말이 사방팔방 갈 수 있으니 옆에서 고삐를 쥐고 가고요. 여기는 길이 정해져 있어 굳이 말 고삐를 잡을 필요가 없지요. 저같은 초보라도 말을 혼자 타는 데 크게 어렵진 않습니다. 말은 가장 오래된 자율주행 이동수단이에요. 김유신의 애마를 생각하면 됩니다. 주인이 곯아떨어져도 단골 술집에 데려다주는... 트리니다드의 말들은 매일 정해진 길을 따라 관광객을 실어나르기에 혼자서도 잘 갑니다.

도중에 사탕수수 농장에 들러 사탕수수 착즙액을 마십니다. 이 정도 옵션 쇼핑은 애교지요. ^^

아이들이 돌이 깔린 광장에서 축구를 합니다. 운동화를 아끼려고 신발은 벗어두고 맨발로 공을 차는 모습이 인상적인데요. 차마 사진은 못 찍습니다. 물건 여남은 개를 길가 좌판에 올려놓고 파는 노인이나, 폐차 직전의 낡은 차를 열심히 수리하는 기사의 모습. 다 옛날 가난했던 우리 모습 같아 사진으로 기록하고 싶지만, 차마 카메라를 들이대지 못하겠어요. 식민지 시절 풍요의 역사는 찍어도, 현재의 가난을 찍지는 못하겠어요. 그들의 일상이 나의 구경거리가 될 수는 없으니까요.

까사 데 라 무시카, 음악의 집. 살사 공연을 보러 갔어요. 가이드북에는 좋은 자리 잡으려면 저녁 8시까지 가서 밤 10시에 시작하는 공연까지 2시간 정도 기다리라고 했는데요. 그땐 호시절이었나봐요. 2월에 갔을 때는 9시 반에 갔는데도 한산했어요. 신나는 살사 음악에 흥겨운 춤사위가 이어지지만, 이국에서 온 방랑자는 상념에 젖어 조용히 구경만 하다 갑니다. 

쿠바 여행기,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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