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에 다녀온 쿠바의 수도, 아바나 여행기입니다.
카피톨리오. 아바나라는 도시가 만들어진지 500년 되는 해, 2019년에 맞춰 완공했어요. 올드 아바나 걷기 여행의 시작점은 이 새로운 아바나의 명소입니다.
바로 옆에 있는 건물은 알리시아 알론소 대극장입니다.
알리시아 알론소는 무용가인데, 한쪽 눈을 실명합니다. 방향 감각과 균형 감각을 잃지만, 치열한 연습으로 세계적인 프리마돈나가 된 분이랍니다. 뉴욕에서 활동하다 1948년에 귀국하여 발레단을 만들고요. 훗날 쿠바 국립 발레단이 됩니다. 세계적인 발레리나였지만, 사회주의 국가가 된 쿠바에서 활동을 계속했고, 아직도 사랑받는 분인가 봐요. 모든 성공담에는 고난과 시련이 있어요. 그냥 성공하는 사람은 없고요, 고난과 시련에도 불구하고 다시 일어나 가는 이들을 대중은 응원합니다.
발레하는 커플 동상.
이제 오비스포 거리로 갑니다.
'아바나의 명동
오비스포 거리 Calle Obispo 카예 오비스포
올드 아바나의 여행자 거리 중 하나로 가장 번화하면서 인기 있는 곳이다. 다이키리로 유명한 엘플로리디타El Flolidita에서 시작해 아르마스 광장까지 이어진다. 거리엔 국영 환전소, 호텔, 전화 국, 관광 안내소, 쇼핑센터, 슈퍼마켓, 은행, 레스토랑, 기념품 숍 등이 있다. 대부분의 레스토랑 에서는 라이브 밴드의 공연도 열려, 걷는 내내 끊이지 않고 들리는 쿠바의 살사 음악에 걸음을 떼기 어렵다. 걷다 지치면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 모히토나 크리스털 맥주 한 잔으로 더위를 식혀 보자. 아바나 여행을 시작하는 여행자의 대부분은 이 거리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환전소, 인터넷 카드를 판매하는 에텍사Etecsa, 헤밍웨이의 단골 호텔 암보스 문도스 등이 모두 이 거리에 있다.
천천히 걸으며 쿠바의 매력을 제대로 느껴보자.'
<쿠바 홀리데이 (2020-2021 개정판) | 김춘애>
쿠바 홀리데이, 크레마 클럽에서 전자책으로 다운받아 읽은 책인데요. 현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쿠바의 경우, 인터넷 사정이 좋지 않아 구글 검색으로 여행 정보를 찾는데 한계가 있고요. 구글 지도가 무용지물이거든요. 전자책에 나와있는 지도를 보며 다녔어요.
오비스코 거리를 걷다보면 거리의 악사들을 자주 봅니다. 어디서나 노래를 하고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흥겹네요.
쿠바 국영 통신사 에떽사 영업점을 찾아가 와이파이 카드를 삽니다. 3시간짜리 카드 가격을 물어보니 직원이 영어를 못해 계산기로 75라는 숫자를 찍어서 보여줍니다. 얼마지? 설마 75달러? 카드 영수증을 보니 0.6달러라고 나오네요. 75페소였어요. 잉그라테라 호텔에서 인터넷 카드 사다가 사기 당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은 탓에 긴장했는데요. 너무 싸서 오히려 김빠지네요. 역시 국영 기업이 깔끔하고 투명하네요. 와이파이 카드를 샀으니 이제 마음 편하게 여행을 시작합니다.
아르마스 광장 서쪽에 있는 총독관저입니다. 스페인 총독관저, 미국 총독관저, 쿠바대통령궁으로 쓰인 곳이라니, 사연이 많은 건물이군요.
아르마스 광장에 소풍 온 아이들.
아바나 항구입니다. 유럽에서 건너온 배들이 모습을 드러낸 곳이지요.
이곳에 식민지를 만들고, 요새를 짓습니다. 해양제국의 시대는, 군함을 앞세우고 무역선과 선교사들이 들어오던 시절이었어요.
산 프란시스코 수도원.
성당 앞 동상입니다. 영화 <미션>이 생각나네요. 유럽인들이 이 땅에 온 후, 쿠바의 원주민들은 거의 절멸합니다. 결국 부족한 노동력을 메우기 위해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들을 데려와야 했지요.
수도원 옆 동상 '파리의 신사'. 1950년대 거리의 노숙자였던 호세 마리아 로페스 예딘의 동상입니다. 1899년 스페인에서 태어나 86세 되던 1985년 아바나에서 생을 마감했는데요. 뜨거운 여름에도 늘 검은색 정장 차림에 자신의 포트폴리오가 있는 종이를 지니고 다녔으며 아는 것이 많고 이야기를 즐기던 사나이였다고요. 아바나의 명물이었나봐요. 동상의 수염을 만진다거나 손을 만진다거나 혹은 발을 밟으면 행운이 온다는 등의 이야기가 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그 부위는 특히 뺀질뺀질 빛이 납니다.
비에하 광장입니다. 어디선가 '관타나메라'가 들려와요. 어릴적 제가 팬플룻으로 즐겨 연주한 곡인데요. '관타나메라'가 쿠바 노래인 줄 여기 와서 처음 알았어요. 저는 어려서 목관악기의 소리가 좋았어요. 플룻을 배우고 싶었는데, 20대에는 돈이 없어 팬플룻을 사서 배웠어요. 좋아하는 여학생 앞에서 멋지게 불려고 <외로운 양치기>라는 곡을 연습했다가 정작 앞에서는 긴장해서 삑사리가 났어요. 간이 쫄았는데 왜 폐활량이 주는 걸까요?
40대가 되어 본격적으로 플룻을 배우려고 레슨까지 받았는데, 녹내장에 걸려 그만뒀습니다. 녹내장 환자는 안압을 높이는 활동은 삼가해야 하거든요. 나이 50이 넘어가니, 하고 싶어도 못하는 일이 하나 둘 늘어납니다. 20대에 팬플룻도 배우고, 자전거 전국일주도 하길 잘했어요.
(관타나메라의 팬 플룻 연주~)
<관타나메라>의 가사를 쓴 사람은 호세 마르티라는 쿠바의 독립 영웅입니다. 원래는 작가였어요. 시인, 수필가,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그는 쿠바의 독립을 위해 스페인에 맞서 총을 들고 맞서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합니다. 그의 사상과 글은 쿠바 혁명에 영향을 끼쳤고요, 아바나 국제 공항의 이름이 호세 마르티 공항입니다.
거리 곳곳에서 호세 마르티라는 이름을 만날 수 있어요. 쿠바 친구를 사귀면 호세 마르티에 대해 물어보세요. 아마 우리가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을 아는 외국인을 만났을 때처럼 반가워해줄 지 몰라요.
오비스코 거리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입니다. 작가 헤밍웨이의 단골 숙소였고요. 이곳 511호에서 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헤밍웨이의 방'은 관광 명소로도 유명한데요. 아쉽게도 제가 갔을 때는 영업 중단 상태였어요.
헤밍웨이는 20년간 쿠바에서 살았어요. 혁명 이후 추방당하고 얼마 지나지않아 자살하지요. <노인과 바다>라는 작품에서 인생과 분투하는 노인의 삶을 그린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요?
자살은 헤밍웨이의 가족력인가 봐요. 1928년에 아버지 클래런스 헤밍웨이가 권총 자살을 했습니다. 플로리다로 내려가 의사 개업하며 은퇴할 계획이었으나 플로리다 부동산에 거금을 투자했다가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투자 자금을 모두 날려요. 수면 부족으로 고통받고 우울증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향년 57세.
아들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53세에 <노인과 바다>를 집필하고요. 이듬해 퓰리처상, 그 이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며 작가 인생 최고의 전성기를 누립니다. 59세에 쿠바 혁명으로 아바나 근처의 농장에서 쫓겨납니다. 카스트로 정권이 들어서고 미국인 추방과 자산 몰수를 시행합니다. 평생을 사랑한 쿠바에서 쫓겨난 상실감과 다시 대작을 써야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것 같네요.
몇 차례 자살 소동을 일으킨 그에게 누가 물었어요.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니 편안히 은퇴하면 되는데 왜 자꾸 자살하려는가?' 이렇게 답했답니다. "나는 작가다.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한다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할 필요가 없다." 62세에 엽총 자살 시도하다 부인에게 발각되어 미수에 그치는데요. 고혈압 치료로 위장하고 메이요 클리닉 입원.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의사가 정신병원 정식 입원을 권했으나 헤밍웨이가 세간에 자신의 병력을 알리기 싫어 거절했어요. 그때 의사가 한 말, '정신병원 입원하면 신문 하단에 조그맣게 기사가 날 것이나, 치료를 받지 않아 불의의 사태가 벌어지면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라고요. 메이요 클리닉에서 돌아온 지 이틀 후 자살합니다. 향년 62세.
<노후파산>이라는 책에서는 자산관리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노후에는 갑자기 큰 규모의 투자를 하지 말라. 노년에 재산상의 큰 손실을 입으면 회복하기 쉽지 않다.' 젊어서는 다시 일어날 힘이 있는데요, 노후에는 그렇지 않아요. 저는 거기에 더해 나이 50 넘어서는 너무 원대한 직업상 목표는 세우지 말자고 다짐합니다. 일이 욕심대로 되는 건 젊어서 가능한 일이고요. 나이 들어서는 쉽지 않아요. 그렇다면 삶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그게 노후의 공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산 크리스토발 성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호화로운 내부를 둘러보는데, 여행자 가족을 안내하는 가이드가 보입니다. 얼른 근처로 가서 귓동냥으로 설명을 들어요. (대학 시절부터 저는 무료 청강을 엄청 좋아했지요. 공짜로 배우는 즐거움!) 산 크리스토발은 영어로 '세인트 크리스토퍼'인데요. 아바나의 수호성인이랍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카피톨리오 옆에 독특한 문이 보여요.
쿠바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는 관계가 좋은가 봐요. 이렇게 중국 이름을 단 도로까지 있는 걸 보면. 쿠바의 안타까운 경제 상황을 생각하면 누구라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네요.
시간이 멈춰버린 도시입니다. 화려했던 과거의 유산들이 100년째 조금씩 폐허로 바뀌어 가는 곳. 그런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
거리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우리돈 300원입니다. 싸서 좋긴 한데... 이 나라의 열악한 경제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아 마음은 불편합니다. 그래도 아이스크림은 그러거나말거나 달콤하고 시원하네요.
아바나 하루 여행 경비는요.
숙박 10불 14000원.
아침 5불 7000원
점심 피자 200페소 2000원
아이스크림 30페소 300원
옥수수 80페소 800원
저녁 버거 75페소 750원
물 2불 2800원
하루 여행 경비 3만원입니다.
제가 다녀본 곳 중에선 세계 최저가네요.
이제 카리브해 바다를 찾아 본격적인 여행에 나섭니다. 쿠바 여행기, 다음 편에서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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