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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반세오를 아시나요?

by 김민식pd 2023. 3. 29.

작년 10월에 다낭 배낭여행을 갔습니다. 혼자 자유여행을 다니면 삼시세끼를 직접 식당을 찾아다니며 해결해야 합니다.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저렴한 식당을 찾다보니 메뉴를 읽기도 어렵고 주문을 하기도 어려워요. 그래서 만만한 쌀국수만 계속 먹었어요. 며칠 그러다보니 질리더군요. 열흘 내내 쌀국수만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베트남 음식을 공부해야겠구나. 급하게 예스24 북클럽으로 들어갔어요. 

<베트남 한 접시>라는 책이 있네요. 베트남 음식이라면 월남쌈과 쌀국수만 아는 제게 이 책은 보물창고였어요. 서울 구로지역 이주여성 단체 미래길의 대표 응우옌김빈이 들려준 베트남 음식 이야기를 이민희 저자가 정리했어요. 베트남 친구의 삶이 녹아 있는 음식을 보다 깊게 이해하고자 베트남으로 한 달간 여행을 떠나 쓴 책이기도 하고요. 여행기를 겸한 베트남 음식 소개책인데요. 고기 가득 붉은 국수 분보훼, 노릇한 부침개 반세오, 달콤한 디저트 체까지 분짜와 퍼 너머의 다양한 음식이 펼쳐집니다.

“낮은 플라스틱 의자, 비싸지는 않지만 맛있는 국수, 그리고 시원한 하노이 맥주.”

  2016년 5월 24일 미국 셰프 안소니 부르댕은 트위터에 썼다. 2018년 기준 2만여 개의 ‘좋아요’와 1만여 개의 의견이 달린 인기 글이다. 글과 함께 올린 사진 한 장 덕분이다.

  사진에는 셰프 자신이 있고, 셰프 맞은편에는 함께 국수를 먹는 버락 오바마 미 전 대통령이 있다. 그 무렵 베트남을 방문한 오바마와 셰프가 지역 식당에서 분짜bún chả 한 그릇을 먹고 남긴 기록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한 베트남 음식은 쌀국수 퍼phở와 월남쌈 고이꾸온gỏi cuốn이었는데, 이제는 대세가 분짜로 넘어간 것 같다.

분짜 bún chả
한 상에 다양한 재료가 놓인다. 얇은 면, 숯불에 구운 돼지고기, 잎채소, 그리고 젓갈 소스를 고루 즐기는 음식이다. 60,000동. (우리돈 4천원)

베트남 음식에 얽힌 다양한 일화가 소개되고요. 무엇보다 음식을 구성하는 재료, 주문하는 방법, 먹는 차례 등을 소상하게 일러줍니다. 베트남 저자와 한국 저자의 협업이 잘 구현된 책이네요. 한국인 입장에서 낯선 음식을 현지인이 알려주고요. 그걸 한국인 독자의 눈높이에 맞춰 친절하게 설명해주십니다. 책을 읽다 베트남 부침개라 불리는 반세오라는 요리를 봤어요. 

부산 동래에 파전이 있고 일본 오사카에 오코노미야키라는 명물 음식이 있다면, 베트남 중남부에는 반세오bánh xèo가 있다.

반세오의 반bánh은 떡, 빵, 케이크 등 밀가루 및 쌀가루 반죽으로 만드는 동그란 음식을 널리 이르는 표현이고, 세오xèo는 지글지글 기름에 음식이 끓는 소리를 뜻한다. 즉 반세오는 파전이나 오코노미야키와 마찬가지로 밀가루 반죽을 기름을 두른 팬에 얹어 만드는 고소한 부침개다. 반죽은 노란빛이고 완성된 모양은 반달을 닮았다. 그리고 젓갈 소스 느억짬에 찍어 먹는다. 그렇게 해서 보통 1인당 두 장씩 먹는다.
일단 쌀전병 반짱bánh tráng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는다. 반짱 위에 잎채소와 꼬치를 올린 뒤 반짱을 여미고 꼬치를 잡아당겨 뺀다. 그러면 고기와 잎채소가 함께 섞인 손가락 크기의 쌈이 완성된다.

부침개 좋아하고, 돼지고기 좋아하는 제게 구미가 확 당기는 요리군요. 휴대폰에서 구글 지도를 열어 다낭 숙소 근처에서 banh xeo라고 검색해봅니다. 구글 리뷰가 가장 많고 평이 제일 좋은 Bep Cuon이라는 식당을 찾아갔어요. 

식당 내부가 꽤 운치있어요. 고급식당이라는 게 한 눈에 들어옵니다. 구글에서 평이 좋은 식당답게 영어 메뉴가 있네요. 저는 새우 반세오를 시켰어요. 

아웅, 정말 맛있네요. 반세오에 반해서 다낭에서 머무는 열흘 동안 가고 또 가고 도합 4번을 갔어요. 나중에는 주인이 알아보더라고요. '유 컴 백?'하고 반가워해요. 그럴 땐 엄지손가락을 척 올리고, '나이스 플레이스, 그레이트 푸드!'라고 추켜세웁니다. 5000원 정도하는 메뉴인데 정말 맛있어요. 한국에 가면 이 식당이 제일 그리울 것 같아요.

저자 응우옌김빈은 하롱베이 출신으로, 서울에 정착한 지 10년이 지났다는데요. 그런 친구 이민희에게 다채로운 베트남 음식 이야기를 들려주어요. 분짜를 비롯해 분망수언(돼지갈비와 죽순이 들어간 국수), 분다우맘톰(두부 새우젓 비빔국수) 등 다양한 북부 음식뿐 아니라 베트남 사람들의 아침 식사 반미(샌드위치), 반꾸온(쌀전병), 쏘이(찹쌀밥)도 소개합니다.

책을 읽고 여행을 다니며 낯선 이름의 음식을 낯익은 맛으로 바꾸는 재미! 예전에 제가 낸 여행 에세이에서 이렇게 썼지요. '여행은 감각의 확장이다.' 새로운 풍광을 만나는 시각의 확장, 새로운 맛을 만나는 미각의 확장, 새로운 언어를 듣는 청각의 확장, 새로운 향을 맡아보는 후각의 확장, 새로운 질감을 만나는 촉각의 확장. 그중 최고는 역시 미각의 확장을 경험하는 맛집 탐방 아닐까요?

 

책은 인생을 바꾸기도 하지만, 여행도 바꿉니다. 쌀국수만 먹던 배낭족이 책 한 권을 만나니, 맛집 찾아 떠나는 베트남 식객이 되었어요. 이제 베트남 음식이 그리워서라도 또 가고 싶어요. 베트남 여행! 같은 시리즈로 <인도 한 접시>라는 책이 있네요. 내년 겨울에는 인도 여행을 가고 싶어졌어요. 인도 요리도 이색적이지만 참 매력적이거든요. 

베트남 여행 가시는 분, 이 책 한 번 꼭 읽어보시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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