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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쿠바의 첫 인상, 아바나

by 김민식pd 2023. 4. 7.

지난 2월, 겨울방학을 맞아 쿠바 여행을 다녀왔어요. 뉴욕 - 올랜도 - 마이애미 - 아바나. 마이애미 공항에 가니 은근히 쿠바로 가는 출국 절차가 복잡합니다. 먼저 쿠바 가는 항공권은 온라인 체크인이 안됩니다. 
부스에서 직접 보딩패스를 받아야하는데, 줄 앞을 지키는 직원이 온라인 서류 작성부터 하라고 하네요. 큐알코드를 찍고 들어가니 갑자기 스페인어가 화면 가득... 아항, 여긴 쿠바 사이트구나. 천천히 '언어 선택'을 눌렀습니다. 또 스페인어가 잔뜩 뜹니다. 그중 'Ingles'가 있어요. 이게 스페인어로 영어라는 뜻이지요. 완전 불친절하지요? English라고 해야 할 것을 Ingles라고 적어두면 스페인어 모르는 사람은 어떡하라고? 사회주의 국가의 비효율적인 웹사이트 운용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양식이 꽤 복잡합니다. 온라인 작성에 시간이 꽤 걸려요. 일찍 공항에 오길 잘했어요. 비행 시간이 촉박했다면 당황했을 것 같네요. 체크인하러 가니 쿠바 여행 목적을 묻습니다. 웃으면서 관광이라고 했더니, 직원이
"No, you're going on a business. You can't go to Cuba for pleasure."

미국에서 쿠바로 관광 목적의 출국은 불가합니다. 출장만 가능하지요. 씨익 웃으며 그랬어요.

"If you say so, I am on a business trip."

저야 작가니까요. 언젠가 낼 여행 에세이 집필을 위한 취재 여행이라고 하지요, 뭐.

직원도 씨익 웃어요. "웰컴 투 어메리카." 미안해, 그런데 그게 미국의 방식이란다. 

미국과 쿠바는 이웃 나라지만 사이가 별로에요. 미국이 부자나라니까 좀 봐줘도 될듯한데 뒷끝 쩌네요. 바로 옆 쿠바 비자 발급소가 있어요. 카드로 100불 결제합니다. 

마이애미에서 아바나 가는 비행기 안... 자리가 3분의 2 정도 비어있어요. 서울 - 뉴욕이나 뉴욕 - 올랜도 비행기는 만석이었거든요. 이것도 경제 제재 탓이겠지요. 

하늘에서 본 마이애미 비치, 해변을 따라 고층 빌딩들이 늘어서 있는데요.

딱 한 시간 날아가 나타난 쿠바의 풍경. 도시는 없고 곳곳이 무성한 숲입니다. 세계 경제의 중심과 변방이 이렇게 가깝다니...

공항에 도착해 숙소로 이동합니다. 쿠바에선 대중교통이 불편해 택시를 타야합니다. 그런데 네비게이션이 없어요. 기사님이 길을 가다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갑니다. 현지 로밍이 안 되는지라, 저 역시 길을 찾을 길이 없네요. 갑자기 타임머신 타고 과거로 온 것 같아요. 지도를 보고 묻고 또 물어서 길을 찾는 나라.

도로변에 웅장해 보이는 건물이 있어요. 그런데...

응? 폐가입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버려지면, 실내에 나무가 저렇게 자랄까요?

아바나에서 묵을 까사에 도착했어요. 아바나의 숙소는 국영 호텔 아니면 민박집 까사인데요. 1박에 10불, 저렴한 가격을 보고 한국에서 에어비앤비로 예약했습니다.

여행 다닐 때 숙소에 체크인하고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근처에 마트부터 찾는 것입니다. 생수랑 과일을 구입해 냉장고에 넣어둬야 마음이 편해요.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편의점 같은 가게가 없습니다. 여기는 다 국영 상점인데요, 저같은 외국인은 이용하기 힘들어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서서 기다리는데요, 정작 상점 안 선반은 텅텅 비어있습니다. 사진은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여기에선 차가 언제 올 지 알 수가 없어요. 그래서 일단 무작정 기다립니다. 생각해보니, 우리도 옛날엔 그랬네요.

이게 아바나의 시내버스입니다. 버스를 수입할 돈이 없어 트레일러를 개조한 버스가 달립니다. 세계화 시대에, 국제 무역 시장에서 소외된 나라의 삶은 이런 것일까? 보면서 저는 자꾸 북한 생각이 납니다. 쿠바가 이렇다면, 북한은 지금 어떤 모습일까?

길거리 피자 가게를 찾았어요.

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하는 피자. 햄이나 소시지는 커녕 피망도 없이 그냥 치즈만 올렸어요. 쿠바의 식료품 부족 현상은 제가 2주가 지내면서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데요. 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바로 직전에 플로리다에서 본 슈퍼마켓의 풍경이 떠올라요. 사회주의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합니다.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입니다. 1777년 완공된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이에요.

콜럼버스가 쿠바섬에 도착한 건 1492년인데요. 원주민들이 전염병과 반란 등으로 인구가 줄자 아프리카에서 흑인 노예 100만명을 데려옵니다. 아르헨티나에는 흑인이 없었는데, 쿠바에는 흑인 인구가 꽤 많습니다. 쿠바에 식민지를 건설한 스페인은 노예노동을 동원한 담배와 사탕수수 농장 운영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습니다.

1898년 아바나항에 정박중이던 미국 선박의 폭발을 계기로 미국과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미국이 이기며 스페인의 영토였던 쿠바,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를 차지합니다. 1900년대 초, 미국이 내정간섭을 중단하고 물러나지만, 정치적 혼란을 틈타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요. 바티스타 독재 정권 하에서 아바나는 미국 관광객들이 찾는 환락도시가 됩니다. 

카스트로는 공산 혁명을 성공시킨 후, 미국 자본을 몰수하고 국유화합니다. 미국인을 추방하고 국교를 단절해요. 그래서 미국은 쿠바에 대해 경제제재를 가하지요. 다시 미국을 곯려주려고 소련의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건설하려 하고요. 비행기로 1시간도 안 걸리는 나라에 소련의 군사 시설이 들어온다는 소리에 미국과 쿠바의 갈등은 날카롭게 치솟습니다.

오바마가 방문했던 산 크리스토발 대성당 내부.

2015년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관계 수복에 나섭니다. 쿠바를 다녀온 동생이 그랬어요. "오빠, 조금 있으면 미국 사람들이 쿠바로 몰려갈텐데, 그럼 여행지 물가도 올라가고 지금의 순박한 쿠바 민심은 사라질지도 몰라. 미국 사람들이 쿠바 물 흐리기 전에 얼른 다녀와." 글쎄요. 2023년 2월에 다녀오고 느낀 소감. 제발 미국 사람들이 쿠바 물을 흐려도 좋으니, 이 가난한 나라에 뭔가 좀 변화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무역 제재 탓인지, 사회주의 경제의 실패 탓인지, 너무 가난해요...

대성당 광장. 미국 마이애미에는 쿠바에서 온 불법 이민자가 많이 사는데요. 쿠바에 두고 온 가족을 수십년째 만나지 못한 사람이 많아요.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그들 쿠바 불법 이민자들에게 비자를 주고 고향 방문을 허락하는 방안을 추진합니다. 이게 엄청난 역풍을 불러요. 불법 이민자에게 합법적인 지위를 주면, 미국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빼앗기데 된다고 난리가 나지요. 결국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반이민자 정서는 강화되고요. 다시 미국과 쿠바의 관계는 악화됩니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善意)로 포장되어 있다(The road to hell is paved with good intentions).' 

오바마가 선의를 가지고 추진했던 인도주의적 결단이 결국 반이민자 정서에 불을 붙여 트럼프의 득세를 불러오고요. 뒤이어 집권한 바이든은 아예 시도조차 못합니다. 괜히 오바마짝이 날까봐... 전쟁을 부추기면 인기가 올라가고, 평화를 위해 노력하면 인기가 떨어지는 이 슬픈 역설...

500년 된 도시, 아바나.

100년 넘은 건물이 폐가처럼 있는데요. 더 슬픈 건 저런 곳에서 사람이 살아요.

70년 넘은 자동차가 도로를 달립니다. 복고를 좋아해서 그런 게 아니고요, 신형 자동차를 수입할 경제적 여력이 없어서 그래요.

쿠바에서 전하는 첫번째 소식이 너무 울적해서 죄송합니다. 그냥 가서 직접 보고 느낀 대로 적어서 그래요. 힘든 마음을 추스리고 다시 여행기를 올릴게요. 다음편에는 올드 아바나 걷기 여행을 소개합니다.

여전히 머릿속에 맴도는 생각...

'아, 쿠바가 이 정도면, 북한은 어떨까?'

그 질문에 대한 답도 쿠바 여행 도중 얻습니다.

그 얘기는 또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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