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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힘센 기획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by 김민식pd 2023. 4. 10.

오랜 지인이신 홍경수 교수님이 새 책을 내며 출판기념회에 초대해주셨어요.
<나는 오늘부터 힘센 기획자가 되기로 했다> (홍경수 저 / 학지사)
고려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KBS PD로 입사한 저자는 서울대학교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고 지금은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로 일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에서 질량을 가지고 있는 모든 물체는 인력을 가지고 있듯, 메시지를 가지고 있는 모든 콘텐츠는 힘이 있다. 콘텐츠는 감동을 만들고 그 감동은 사람으로 하여금 움직이게 한다. 콘텐츠를 기획하는 자가 세상을 바꿀 수 있기에, 기획의 숭고함이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모든 기획자가 세상을 구하는 것은 아니다. 세상을 구하려면 악당을 물리칠 만큼 힘이 세야 한다. 이 악당에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관성, 귀차니즘, 대충주의, 빨리빨리, 효율지상주의 등이 포함될 것이다. 힘센 기획자가 되기 위해서는 기획의 근력을 키워야 하고, 기획은 접근법을 창의적으로 개조해야 한다.'
(여는 글에서)
그날 출판기념회에는 MBC 예능 피디 선배이신 주철환 피디도 오셨어요. 

두 분의 인연도 재미난데요. 원래 기자로 일하던 홍경수 저자에게 피디를 해보라고 권한 것도 주철환 교수님이고요, 아주대에서 정년퇴직을 맞게 된 주철환 선배님이 후임을 찾다 홍경수 교수님에게 지원해보라고 권하셨다고요. 홍경수 교수님이 자신의 인생에서 두 번의 전환점을 마련해주신 주철환 선배와의 인연을 이야기하는데요. 저는 두 분의 정담을 듣다 문득 깨달았어요. '그러고보니, 저 두 분이 내 인생의 은인이로구나!'
1996년 MBC 공채로 입사한 저를 수습 사원 시절, 지도해주신 분이 바로 주철환 선배님입니다. 신입사원 연수를 맡아 기자 피디들을 다양한 세계로 이끌어주셨어요. 주철환 선배님 덕분에 다양한 방송 제작 현장을 둘러볼 수 있었고요, 많은 방송인들을 만날 수 있었지요. 무엇보다 기억에 남는 건, 신입사원 후배들에게 밥이랑 술을 많이 사주셨어요. 동기들은 무척 신기해했어요. "피디가 월급이 많나? 어떻게 매일 밤 수십만원씩 들여 우리 밥을 사주시는 거지?" 어느 선배가 답을 일러줬어요. "그 형이 책을 많이 썼잖아. 인세 받아서 후배들 술 사주시는 거지." 철환형은 16권의 책을 내신 파워라이터거든요. 그때 정말 부러웠어요. '아, 나도 언젠가 인세 받아서 밥사주는 선배가 되면 좋겠다.'   
2002년인가, 2003년인가, 어느날 KBS 홍경수 피디라는 분이 전화를 주셨어요. 피디 지망생들을 위한 책을 공저로 준비중인데, 각 분야 수십명의 피디들의 글을 모으고 있다고요. 저에게 시트콤 제작에 대한 글을 써달라고 하셨는데요. 어려서 책 읽기를 즐겼던 저는, 책에 내 글을 실을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에 흔쾌히 응했어요. 나중에 <PD WHO & HOW> 책 표지에 제 얼굴이 나오고, 수십명의 저자 이름에 내 이름이 포함된 걸 보고 엄청 신기해했지요. 그 일이 계기가 되어 <피디가 말하는 피디> <나의 영어 공부 이력서> 등 몇권의 책에 공저자로 참여할 수 있게 되었고요. 이는 나중에 제가 단독 저서를 내는 데 자신감을 심어준 계기가 되었어요.
10년이 지난 어느날, 홍경수 피디님이 KBS에 사표를 내고 대학 강단으로 자리를 옮기셨는데요. 제게 예능 제작 특강을 부탁하셨어요. 그래서 회사에 휴가를 내고 달려가 강의를 했던 기억이 있어요. 당시에는 제가 강의를 별로 해본 적이 없던 시절이었는데요. 다행히 반응이 좋았나봐요. 홍교수님이 다른 학교에도 추천해주시고, 기업강의도 추천해주셔서 저를 불러주시는 곳이 늘었어요.
즉, 저는 주철환 교수님 덕분에 책을 쓰고 싶다는 동기부여를 받았고요, 홍경수 교수님 덕분에 강의와 원고 집필의 기회를 처음 얻은 거지요. 제게는 실로 은인이라할 두 분입니다. 
기회는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그걸 잡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요? 너무 겸손하지는 않은 사람이에요. 만약 잘 모르는 KBS 피디가 연락했을 때, '죄송하지만, 저는 글을 잘 쓸 줄 몰라서요.'하고 원고 청탁을 고사했거나, 대학 특강을 요청하셨을 때, '아이고, 공대를 나온 제가 어떻게 방송 연출에 대해 강의를 하겠습니까.'하고 겸양을 떨었다면, 아마 지금의 저는 없었을 거예요.
겸손의 미덕도 중요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는 자신감이 더 필요합니다. '나도 노력하면 잘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이요. 

책을 보니, 2020년 한국 콘텐츠의 수출액은 120억 달러에 달했답니다. 가전제품이 73억 달러, 디스플레이 패널 수출액이 41억 달러인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액수이지요. 무엇보다 한국 콘텐츠 수출은 우리의 문화를 전세계에 알려 후광효과로 국가 경쟁력을 더욱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이어집니다. 자동차와 철강 수출로 유명했던 한국이 이제는 소프트파워 강국이라는 걸 만방에 알리는 거지요.
콘텐츠 기획, 개발 연구자로 평생을 살아온 홍경수 피디/교수님의 역작입니다. KBS 인재개발원에서 하신 강의의 핵심을 추린 책인데요. 우리 모두 힘센 기획자가 되어봅시다.
그 첫걸음은?
겸손함 대신 자신감을 장착하는 데 있지 않을까요?
'나도 오늘부터는 힘센 기획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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