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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예테보리 쌍쌍바를 아시나요?

by 김민식pd 2023. 4. 17.

읽고 싶은 책을 어디서 찾을까? 저는 선수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입니다. 책을 읽는 것을 업으로 삼는 독서 선수들이 있어요. 그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그래서 당신이 읽은 책 중에서 제일 재미난 게 뭐요?’하고 토론대회를 연 게 장강명 작가님이 기획한 무료 전자 서평집 <한국 소설이 좋아서> 시리즈고요. 2권에 저도 글을 실었는데요. 무료 전자책이라 다운 받아두고 여행 다니다 심심할 때 한 편씩, 곶감 빼먹듯 읽습니다. 예스24 인문 MD로 일하는 손민규 님의 서평. 

‘서점 MD는 취미가 아니라 일로써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가 삶의 낙이었던 사람도 업으로 책을 읽어야 하면 힘들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 나는 박상 소설가의 작품을 찾는다. 웃기니까. 『말이 되냐』 『15번 진짜 안 와』 『예테보리 쌍쌍바』처럼 제목에서부터 웃기고 싶어 하는 이 소설가는, 표지를 넘기자마자 만나게 되는 작가 소개도 허투루 쓰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복권에 당첨돼 창작 밑천 3억이 생겼다. 죽으란 법은 없구나 했는데 아쉽게도 꿈이었다. 소설은 박상이 잘 쓴다고 믿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도 현실이 아니었다. 머리 아픈 날이 잦은 편이다. 그러나 내겐 열두 명의 독자가 남아 있다.”가 작가 소개라니, 말이 되냐?’

이렇게 흥미로운 책 소개를 받은 게 하필 5주간의 해외 여행 기간...... 귀국하자마자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예테보리 쌍쌍바>부터 찾아 읽었어요.

이 책의 저자 소개도 심상치 않네요. 

2006년 <짝짝이 구두와 고양이와 하드락>이라는 단편소설로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등단했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다
첫 소설집 <이원식 씨의 타격 폼>을 출간한 뒤 더욱 주목받지 못함.
야심차게 중간문학을 표방한 첫 장편소설 <말이 되냐>를 출간한 뒤 비로소 대중과 평단의 중간에도 못 끼는 작가가 됨.
오기와 근성과 록 정신과 찌질함으로 써낸 두 번째 장편소설 <15번 진짜 안 와>를 출간한 뒤 새삼스럽게 다시 전혀 주목받지 못하게 됨.

솔직히 주목받으려고 소설 쓰는 게 아니라서 괜찮음.
다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는 꿈에 
늘 주목하고 있음.

만약 누군가 단 한 명이라도 여전히 
듣고 싶어 한다면.’
 
이렇게 웃기는 책은 일 할 때 필요하지요. 지방 출장 갈 때 KTX 열차 안에서 읽으려고 쟁여뒀는데요. 집에서 초반부를 읽다 몇 번 미친 듯이 폭소를 터뜨린 후, ‘이거 기차에서 읽다가 코레일에 신고 들어가겠는데? 3호차 7번 좌석에 웬 미친놈이 앉아 있다고?’ 그래서 그냥 앉은 자리에서 반나절만에 다 읽어버렸어요. 중간에 웃다가 숨넘어가는 줄 알았어요.



<예테보리 쌍쌍바>는 소설 속 소설의 제목입니다.

‘주인공 스벤손은 예테보리란 도시를 배경으로 이백 년간 라이벌 관계인 가문의 에릭손과 이십 년 동안 싸웠으니 승부를 가리지 못한다. 그때 마침 아이스크림 파는 상인이 지나가는데 둘은 그 사람을 불러 쌍쌍바를 사서 나눠 먹으며 긴 투쟁 관계를 청산하고 친구가 된다. 그들이 쌍쌍바를 둘로 쪼개는 동작과 슬그머니 손을 잡으며 미소 짓는 과정도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과연 사람들이 묘사의 달인이라고 감탄할 만한 문장력이었다.’

(9쪽)

아니, 이게 무슨 이야기야. ㅋㅋㅋㅋㅋ 이 작가, 멀뚱멀뚱 진지한 표정으로 농담을 건넵니다. 이건 마치 박민규 소설 같잖아? 싶었는데, 고수는 서로를 알아보는지, 박민규 작가가 박상의 첫 소설집에 추천사를 썼네요. 
“스코틀랜드 네스 호에는 괴물 네시가 산다. 그리고 한국에는 박상이 산다. 꽤나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웃기는 책을 열차안에서 읽었다면 심하게 난감할뻔 했어요.

소설의 주인공은 대학 입시 고사장으로 가는 길에 하마터면 낙뢰를 맞을 뻔합니다. 눈앞의 가로수에 번개가 꽂히는 걸 보고 순간, ‘남들과 똑같은 건 싫다.’라는 생각이 들어 발길을 집으로 돌려요. 어차피 모의고사 최하위권인데 기를 쓰고 대학에 가면 뭐 하나 싶어 입시를 포기하는데요. 아버지는 밥상을 엎습니다.

“뭣이! 뭘 잘못 먹은 거야? 왜 갑자기 돌아버렸어?”
아버지는 마치 뭔가 잘못 먹은 사람처럼, 갑자기 돌아버린 사람처럼 행동하고요. 
“이제 네 밥은 네가 벌어먹어. 이 배은망덕한 웬수야.”
집을 나온 주인공은 고졸 학력으로 일자리를 찾아 고군분투하며 삽니다. 선수 모집이라는 세차장 구인 광고를 보고 가장 빠르게 세차하는 기록보유자가 되지만, 너무 무리하다 팔의 인대가 늘어나고요. 훗날 다시 찾아가 보니 기계 세차장으로 업종이 바뀌었어요. 본격적으로 스피드를 겨루는 직업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에 중국집 배달부가 됩니다. 오토바이를 타면 번개처럼 달린다하여 ‘말죽거리 날벼락’으로 불리지만, 고교 중퇴생 폭주족에게 밀립니다. 결국, 그는 설거지를 전담하는 식당 주방보조로 일하게 되는데요. 이곳에서 설거지계의 고수를 만나 가르침을 받습니다. 

“요즘 웬지 위태로워 보여요. 접시들과 싸우고 있어요.”
“제가요?”
“설거지의 세계에선 일반인을 파이터가 이기고, 파이터를 기술자가 이기고, 기술자를 아티스트가 이기지요.”

(197쪽)

아티스트의 경지에 올라가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주인공은 아티스트들을 보러 다닙니다. 쉬는 날, 밴드 공연이나, 발레 공연, 피겨 공연을 보러 다닙니다. 사람들이 몸으로 보여주는 고난도 예술을 보고 나면 강한 자극을 받고요. 이제 자신의 설거지 기술에 예술혼을 불어넣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재미난 소설, 개그를 위대한 예술로 승화시킨 작품을 읽고 나면 몸에서 피가 끓어오릅니다.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봅니다. 지금 나는 파이터인가, 기술자인가, 아티스트인가? 예술같은 노후를 꿈꿉니다.

  
아티스트가 되지 못해도, 재미난 소설을 마음껏 즐기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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