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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행복한 노후를 위해 필요한 것?

by 김민식pd 2023. 3. 3.

제가 2020년에 명퇴를 했는데요. 퇴직하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평생 다니던 직장이 사라지고, 매월 나오던 월급이 사라지고, 매일 만나던 사람들이 사라졌어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혀 몇 달을 지내다 보니 내 삶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것 같아 우울해지더군요. 퇴직 이후의 삶은 두 갈래로 나뉩니다. 노년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옛날을 그리워하며 ‘아, 그 시절엔 참 좋았는데.’ 하면서 남은 시간을 허송세월하다 갈 수도 있고요. 정년 이후의 수십 년을 선물이라 여기고 젊은 시절보다 더 적극적이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어요. 100세 시대, 기나긴 노후가 주어졌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건 아닙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해야 해요. 행복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을 정립해야 합니다. 오늘은 그걸 도와주는 책 한 권을 소개합니다.

<아직 긴 인생이 남았습니다> (기시미 이치로 지음 /전경아 옮김 / 한경비피)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으로 많은 독자들에게 위로와 깨달음을 선사해준 기시미 이치로 저자의 책입니다. 더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 2막을 위한 정년 철학론. 정년 이후의 삶이 막이 내린 뒤 퇴장하는 쓸쓸한 삶이 아니에요. 정년 이후에도 내 삶의 무대에서 주인공으로 살 수 있습니다. 노년은 왜 불안하고 또 노후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불안, 태도, 일, 인간관계, 행복, 미래라는 6가지 주제를 통해 철학자의 지혜를 들려주는 책입니다. 

노후의 행복에 필요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돈? 돈만 있으면 행복해질 거라 생각한다면 오히려 불행해질 수 있습니다. 지금 자신이 불행한 이유가 돈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면 아들러가 말하는 ‘열등 콤플렉스’에 빠진 겁니다. 열등 콤플렉스란 인생에서 마주하게 되는 문제를 건설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열등감을 내세워 자신을 속이는 것을 말하는데요. 열등 콤플렉스에 빠진 사람은 불행의 원인을 돈으로 돌리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어도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은 있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거나, 친구를 만나 동네 공원을 산책하거나, 일상의 소소한 설렘을 찾을 수 있어요. 돈이 없어도 행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기나긴 노후에는 필수입니다.

아이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거나 공부 말고 다른 일을 하겠다고 할 때, 선심 쓰듯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네 인생이니까. 단, 스스로 돈을 벌어서 해”라고 말하는 부모가 있지요. 부모가 원하는 길을 가지 않는다고 아이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끊어도 되는 건 아닙니다.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은 돈을 벌어 가족을 부양하는 자신이 아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아이를 먹여 살린다고 부모가 우월한 것은 아니고요. 아이도 부모에게 학비를 받는다고 부모가 시키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닙니다.


경제적 우위에 있다는 이유로 자신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퇴직하고 나면 문제가 생깁니다. 퇴직으로 수입이 없어지거나 크게 줄면 자신의 존재 이유가 사라졌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면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 빠르게 늙습니다. 돈을 벌기 때문에 나는 가치 있는 존재야, 라고 믿었다면 퇴직 후에는 새로운 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찾아야 합니다. 

은퇴하고 고독을 느끼는 이유는 인생에서 일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일은 삶의 큰 보람이지요. 하지만 사는 보람이 일밖에 없어서는 안 됩니다. 직장을 그만뒀을 때 사는 보람이 사라져요. 육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가 다 자라고 품을 떠나 빈둥지 증후군을 느낀다면,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유일한 보람이기 때문입니다. 삶이 공허해지는 것 같아 어른이 된 아이의 삶에 개입하고, 간섭을 하면 안 됩니다. 

퇴직은요, 평생 일을 한 자신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고요. 자녀의 독립 또한 이제껏 아이를 잘 키웠다는 증거입니다. 아이가 나이 서른, 나이 마흔이 되어서도 부모에게 의존해 산다면, 그게 아이를 제대로 키운 겁니까? 자, 퇴직도, 자녀의 독립도, 성공이라 여겨야 합니다. 실패가 아니에요. 성공의 결과, 우리는 외로워집니다. 이제 우리는 외로움을 벗어날 방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저자는 정신과 의원에서 근무할 때 아들러의 책을 번역하는 일을 합니다. 책 번역이 돈이 되지는 않지만, 배우는 게 많고 상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는데요. 병원 원장은 직원인 저자가 책 번역하는 걸 고깝게 여겼대요. 저자가 몸이 자꾸 아파 정밀 검진을 받았는데 이상이 없다는 결과가 나와 원장에게 보고했더니 쉬는 날까지 번역을 하니 본업에 지장이 생기는 거라고 핀잔을 줬다고요. 저자는 납득이 가지 않아 쉬는 날에 골프를 치는 건 괜찮냐고 물었어요. 원장은 골프는 문제가 없다고 대답했고 그 말을 듣고 저자는 아, 나는 더는 이 병원에서 일하지 못하겠구나, 생각했답니다. 


기시미 이치로가 훗날 아들러 심리학의 대가가 되어 <미움받을 용기>를 써낸 비결이 여기에 있어요. 병원에서 심리과 임상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공부 삼아 아들러 책을 번역했던 거죠. 공부가 즐거워서 휴일에도 했는데, 그런 공부를 못하게 하니 전업 작가로 전향한 거죠. 사표를 내니까 원장이 이렇게 말했대요.
“상담을 받으러 오는 사람들은 당신을 보고 오는 게 아니라 우리 병원을 보고 찾아온 겁니다.”
제가 MBC에 사표를 내겠다고 하니까 저렇게 말하는 사람이 있었어요. ‘그동안 사람들이 너를 찾은 건 네가 MBC 피디라서 그런 거야. 퇴사하고도 사람들이 너를 찾아줄 것 같아?’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듣고 살지요. 넌 회사를 나가면 찾는 사람이 없을 거야.

심리학자 아들러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할 때 용기를 낼 수 있다고 말합니다. 직장에서는 늘 누군가의 평가를 받아야 하죠. 퇴직 후에는 더는 남들의 평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으로 살기만 하면 돼요. 남이 나를 귀하게 여겨주기를 바라는 대신, 내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며 살면 됩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사용의 심리학’입니다. 무엇이 주어졌는지가 아니라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이론이지요. 무엇이 주어졌는지에 중점을 두는 심리학은 ‘소유의 심리학’입니다.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다고 바로 좋은 사진을 찍게 되진 않습니다. 반대로 고성능 카메라가 아니라도 휴대폰 카메라로도 꾸준히 연습하고 제대로 활용하면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어요. 인생 2막도 마찬가지입니다. 퇴직이 문제가 아니라 은퇴라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아갈지 스스로 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노후의 행복을 찾는 데 있어 핵심 개념은 공헌감입니다. 공헌감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느낌이지요. 사람은 가정이나 직장에서만 공헌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공동체에 속해 있고 따라서 존재만으로도 어디에서나 가치가 있어요.

공헌은 자신을 희생하며 고통을 감내하는 게 아니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세상에 쓸모가 있어짐으로써 일이 즐거워지는 걸 뜻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받는다 해도 행복해질 수 없어요. 또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는커녕 누군가를 희생해 이익을 얻는 일이라면 행복을 느낄 수 없지요. 노후에는,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공헌감을 느낄 수 있어요. 

퇴직하고 제가 매일 탁구를 치는데요. 제가 다니는 탁구장에 얼마 전에 플래카드가 붙었어요. ‘김준창 회원님의 팔순을 축하합니다.’ 저는 그분 나이가 팔십인 줄 그때 처음 알았어요. 라켓을 잡으면 날아다니는 분이거든요. 움직임이 하도 날렵해서 40대도 당해낼 수가 없는 분이에요. 탁구는요. 나이 80에도 즐길 수 있는 구기 공목입니다. 한국 탁구의 최연소 대표팀 기록을 갖고 있는 신유빈 선수가 열일곱살에요. 1963년생 니시아렌과 공식 대회에서 승부를 겨룹니다. 나이 차이가 41살이에요. 나이 60에도 올림픽 대표 선수로 출전하는 게 탁구의 세계입니다. 저는 탁구장의 70대 회원들을 보며 매일 희망을 다집니다. '나도 열심히 운동해서 저 나이에 추우나 더우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재미나게 운동을 하며 살아야겠다.'

다만 탁구가 초보에겐 진입장벽이 좀 높습니다. 누군가 내 공을 받아줘야 연습을 할 수 있는데요. 초보랑 랠리를 하다 보면 엉뚱하게 친 공 주우러 다니다 시간 다 가거든요. 제가 초보일 때 제 공을 계속 받아주신 고수들이 있어요. 불리해도 저랑 한 팀을 먹고 시합을 해주신 분들이 있어요. 그 덕분에 제가 초보를 면했지요. 매일 아침 탁구장에 갈 때 제가 하는 다짐이 있어요. 신입회원이 오면 가장 먼저 반기는 사람이 되자. 탁구장이라는 공동체에서 나의 역할이 있어요. 새로운 분이 오면 그분의 연습 상대가 되어드리는 거죠. 하루 2시간 운동을 한다면 그중 20분은 신입회원들과 연습을 합니다. 초보의 공을 받아주는 사람이 탁구장에서는 은인입니다. 내가 그런 은인을 만난다면, 언젠가는 그 은혜를 갚아야죠. 고수에게 갚을 수는 없고요. 내 실력을 키워 다른 신입회원에게 갚으면 됩니다. 

노후의 공부란, 나의 쓸모를 찾아가는 일이고요. 나의 쓸모를 키워줄 공간이나 공동체를 찾는 것입니다. 젊어서는 돈을 버는 일로 삶의 보람을 삼았다면, 나이 들어서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함으로써 삶에서 보람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노후의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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