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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즐기는 세상/2017 MBC 파업일지

마음 먹은 대로 사는 법

by 김민식pd 2012. 2. 5.
어제 한 블로그 독자에게 이런 질문을 받았다.
"어떻게 매일 매일 글을 쓰실 수 있나요?"
뭐라 답을 해야할지 약간 난감했다. 
난 마음 먹으면 그냥 한다. 그 뿐이다.

어떤 일을 지속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다. 생각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나는 생각이 별로 없다. 친구들이 다 인정한다. "쟤는 참 생각없이 살아." 정말이다. 그래서 난 즐겁게 산다. 그냥 느낀 바, 내 감정에 충실하게 산다. '블로그가 재밌다.' 그렇게 느끼면, 그냥 매일 쓴다. '이거 한다고 뭐가 될까?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이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 하는게 더 좋지 않을까? 이 글 보고 누가 뭐라 그러면 어떡하지? 이거 혹시 징계 사유 아닌가?' 그런 고민은 안 한다. 그냥 마음 먹은 대로 산다. 하고 싶으면 하는 거지, 그 외에 뭐가 필요해.

난 항상 무언가를 시작할 때, 책의 도움을 받는다. 요즘은 마라톤에 도전하는 중이라,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고 있다. 하루키는 전업 작가로서 살면서 체력 관리를 위해 매일 달린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달리는 이유에 대해 그는 이렇게 적고 있다. 

'설사 절대적인 연습량은 줄이더라도, 휴식은 이틀 이상 계속 하지 않는 것이 트레이닝 기간에 있어서의 기본적인 규칙이다. 근육은 잘 길들여진 소나 말 같은 사역 동물과 비슷하다. 주의 깊게 단계적으로 부담을 늘려 나가면, 근육은 그 훈련에 견딜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적응해 나간다. "이만큼 일을 해주지 않으면 곤란하단다" 하고 실례를 보여가며 반복해서 설득하면, 그 상대도 "아, 좋지요"하고 그 요구에 맞춰서 서서히 힘을 들여 나간다. 물론 시간은 걸린다. 무리하게 혹사를 하면 고장나 버린다. 그러나 시간만 충분히 들여 실행하면, 그리고 단계적으로 일을 진행해 나간다면 군소리도 안 하고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서 그 나름의 고분고분한 자세로 강도를 높여 나간다. "이만큼의 작업을 잘 소화해내지 않으면 안 된다'라는 기억이, 반복에 의해서 근육에 입력되어 가는 것이다.'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중에서


난 요즘 일요일 아침마다 달린다. 전철을 타고 7호선 뚝섬 유원지 역까지 가서 한강 시민 공원을 달린다. 잠수교로 한강을 건너 동작대교 아래 동작역까지 달린다.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춥고, 피곤하고, 힘들다. 달리기를 멈추고 싶은 이유는 수만가지다. 그러나 달리는 이유는 하나다. 그렇게 마음먹었으니까. 달리면서 내 몸에게 계속 속삭인다. '드라마 촬영을 시작하면 추운 야외에서 하루 2~3시간밖에 못 자면서 몇 달을 버텨야한다. 달리기 쯤은 평소에 즐겨야해.'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명색이 콘텐츠를 만드는 피디라면, 하루에 하나씩은 글을 올려야돼!' 라고 마음을 먹는다. 그리고는 매일 아침 글을 쓴다. 

편안함은 너무 쉽게 적응되고, 힘든 것을 꾸준히 하기란 너무 어렵다.

달리기 근육 뿐 아니라, 양심도 그렇다. 지난 몇년간 우리는 권력에 탄압받고, 검찰에 기소당하고, 해마다 파업을 하면서 오래도록 싸웠다. 그 결과 우리는 싸움에 졌고, 모두가 패배의식에 빠졌다. '어차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라면, 그냥 이렇게 살아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우리는 양심을 안락함으로 길들이는 권력의 품에 안겨버렸다. 양심도 사역 동물이다. 끊임없이 단련시키지 않으면 어느 순간 편안함을 갈구한다.

파업은, 말하자면, 늘어진 말을 일으켜 세우는 채찍질 같은 것이다. 우리 몸에 상채기를 남기고 피를 뿌릴 지라도, 지금은 잠든 양심을 깨워야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본분을 잊고 살았던 2년, 뼈저리게 반성한다. 

MBC, 다시 싸우러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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