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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즐거운 불편을 선택한다는 것

by 김민식pd 2022. 12. 21.

퇴사를 결정하고 자발적 고립을 선택한 후, 책을 읽다가 가슴을 후벼파는 구절을 만날 때가 종종 있습니다.

<즐거운 불편> (후쿠오카 켄세이 지음 / 김경인 옮김 / 달팽이)

한국어판 서문에 나오는 글입니다.

'만사가 순조로울 때, 인간은 맹목이 된다. 진정으로 중요한 것을 보게 되는 때는 고난에 부딪혔을 때다.

세상에는 당신의 능력 (용모나 학력이나 부모님의 부와 명예 등, 사회적으로 유리하게 작용할 속성을 포함한)을 높이 사줄 사람은 얼마든지 있다. 일 관계로 연관된 사람의 대부분이 그렇다. 하지만 당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능력만을 평가해주는 사람들은, 당신이 능력을 상실하게 되면 떠나간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의 평가에만 모든 것을 걸고 살다 보면, 당신이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는 더이상 살아갈 수 없게 된다.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은 일이 아니며, 또한 세상의 평가도 아니다. 당신 자신의 존재 자체를 소중하게 생각해줄 사람을 한 사람이라도 더 만들고, 그들을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

맞아요. 나름 목숨 걸고 공부하고 일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중요한 건 공부나 일이 아니더라고요. 나를 지켜주고, 나를 아껴주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지요.

저자의 부인은 딸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중학교까지 나온 다음에는 네가 좋아하는 길을 가면 돼. 공부를 하고 싶으면 고등학교에 가면 되고, 일하고 싶으면 취직을 하면 되는 거야."

늘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딸을 채근하던 아내가 왜 생각이 바뀌었는지 묻자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너무 풍요로워져서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지, 그 본질을 잃어버렸지만, 학력이니 회사니 하는 것에 의존하지 않고, 역경에 직면했을 때 스스로 극복하고 헤쳐 나갈 힘을 키우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는 걸 알았을 뿐이에요."

저자가 2000년에 낸 이 책은, 당시 불황에 빠진 일본 경제를 직시하며, 이제 풍요를 추구하기보다 기꺼이 '즐거운 불편'을 감수하자고 말합니다. 저성장 시대가 왔다는 것은, 물건이 더이상 예전처럼 팔리지 않는다는 뜻인데요. 오랜 경제 성장의 결과, 사람들이 더 이상 필요한 것, 갖고 싶은 것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요. 물건이 팔리지 않으면 당연히 만들 필요도 없고요. 그럼 일을 줄여도 좋은 시대가 온 거죠. 일을 줄일 때는 고용을 줄여 실업의 고통을 증가시키는 것보다는 여러 사람이 노동 시간을 줄이고 여가 시간을 더 즐기는 한편, 그렇게 남는 일을 한 사람이라도 더 고용하는데 쓰자고 합니다. 

'기업이나 경제의 시스템을 단번에 바꾸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다만, 수입이 줄더라도 노동시간을 줄이겠다는 선택을, 사람들이 자신의 자유의사로 선택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만드는 정도는, 조금만 노력한다면 가능한 일이 아닐까? 수입의 높고 낮음보다도 휴일의 많고 적음으로 직장을 결정하는 젊은이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나, 소득의 상승보다 노동시간의 단축에 의해 생활만족도가 상승한다는 통계를 보더라도, 그런 형태의 일을 선택할 사람은 의외로 많은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나이 50이 넘어가면 일을 줄이고 여가를 늘려야한다고 생각합니다. 50대가 회사에서 자리를 비우면, 20대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을까요? 그렇게 늘어난 시간 동안 50대는 책을 읽고 길을 걸으며 다시 공부에 전념해도 좋겠지요. 100세 시대, 나이 7,80에도 일을 하려면 5,60에도 공부를 해야 하거든요. 직장을 다니며 돈을 버는 데 최선을 다하기 보다, 돈을 적게 벌더라도 공부와 여가 생활에 시간을 더 쓸수 있으면 좋겠어요.

책에서 제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요.

'사방 1킬로미터 안에도, 자기의 한 평생을 걸어도 다 맛보지 못할 정도의 기쁨들이 숨쉬고 있다.'

맞아요. 동네 도서관과 탁구장과 근린 공원 산책로에서 만나는 기쁨들로 매일 즐겁습니다. 

우리보다 먼저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고, 고령화를 맞은 일본 사회를 살며 대안을 모색하는 책을 읽으며 나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불편하더라도 조금 더 즐겁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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