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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국내여행

슬로시티 청산도 여행

by 김민식pd 2023. 1. 25.

전라남도 완도교육지원청에서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을 위한 특강을 했어요.

<내 인생 최고의 선물, 도서관>이라고요. 강의를 들으신 선생님이 블로그에 글을 남기셨어요. 

'피디님의 강의를 청산초등학교 아이들에게도 들려드리고 싶어요. 청산도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

청산도? 우리나라 가장 남쪽에 있는 섬들 중 하나 아닌가? 네이버지도를 열어 대중교통편을 검색해봅니다. 음... 청산도를 가려면 완도에서 배를 타야하는군요. 서울에서 완도가는 첫차가 아침 8시 10분에 있고요. 완도까지 버스로 5시간 넘게 걸려요. 1시 넘어 도착해 점심을 먹고 완도항에 가서 청산도 가는 2시 30분 배를 탑니다. 50분 정도 걸려 바다를 건너 섬에 도착하면 3시 20분. 초등학교 아이들은 집에 갈 시간이지요. 다음날 강의를 하고요.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강의를 하고 당일에 완도로 나오면 서울 가는 차가 없어요. 막차가 오후 3시 10분에 있거든요. (그래도 서울 도착하면 밤 8시가 훌쩍 넘습니다.) 결국 다음날 청산도에서 나와야 해요. 2박3일 일정을 잡아 청산도로 갑니다.

11월 15일부터 17일까지 다녀온 청산도 여행기를 올립니다.

아침 8시, 센트럴시티입니다. 저는 새벽에 터미널에 오면 그렇게 설레요. 오늘 가는 곳은 또 어떤 여행의 추억을 내게 줄까?

완도 가는 우등고속 버스 4만원. 5시간동안 버스를 타고 가며, 유튜브에 저장해둔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강의를 듣습니다. 장강명 작가의 <일은 나를 담는 그릇이다>

https://youtu.be/5oQ8Mex941w

장강명 작가님이 생각하는 일에 대한 3가지 조건이 있어요. 
첫째, 생계가 되어야한다.
둘째, 잘한다는 유능감이 필요하다.
셋째, 나를 담는 그릇이어야한다.

버스를 타고 가며 생각해봅니다. 인생 후반전에는 어떤 직업으로 나를 담아야 할까.

강의도 듣고, 음악도 듣고, 영화도 보다 꾸벅꾸벅 졸기도 하다보니 어느새 저 멀리 바다가 보이네요.

완도에 내리니 오후 1시 20분. 2시 30분 배를 타야해요. 완도 버스터미널에서 완도항까지 걸어서 30분, 차타면 5분인데요. 터미널 앞에 줄을 지어 서 있는 택시로 간편하게 이동합니다. 점심을 먹고 배를 타려고요.

배나 차 시간이 있을 땐 일단 기차역이나 터미널 근처까지 이동한 다음 밥을 먹습니다. 혹 음식이 늦게 나와도 밥을 먹다 시간이 되면 달려나갈 수 있거든요. 밥을 먹고 이동하다 시간을 넘길 수도 있어요. 완도항 여객선 터미널 바로 앞 해궁횟집에 가서 전복물회를 시킵니다. 

청산도를 검색해봤습니다.

'온 하늘과 바다, 그리고 산이 모두 푸르다 하여 이름 붙여진 섬, 청산도. 청산도는 일개 섬이 아닌 느림의 미학을 간직하고 있는 슬로시티로 잘 알려져 있다. 청산도는 슬로시티를 상징하는 달팽이만큼이나 느린 전복과 뿔소라가 많이 나는 곳이다. 특히 해녀들이 물질로 수확하는 전복과 뿔소라는 생산과 소비에 이르는 전 과정이 독특할 뿐 아니라, 갓 잡아 올린 신선한 해산물을 직접 맛볼 수 있다. 느릿느릿 여행도 즐기고, 시간이 허락한다면 청산도 바다가 선사하는 싱싱한 맛도 즐겨보자.'

출처 : 대한민국 구석구석

이 설명을 읽고 전복을 안 먹을 수 없죠. 전복의 꼬들꼬들한 살이 아삭아삭 씹히는 전복물회(15000원)도 맛있는데, 다음번에는 전복뚝배기에 도전해봐야겠어요.  

퀸 청산, 완도에서 청산도가는 배를 탑니다. (승선료 8,700원) 

연안여객선을 탈 때는 반드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합니다. 섬 여행 다닐 때 신분증을 가지고 다녀야해요. 

강연 갈 때는 옷을 차려입습니다. 간편한 등산복은 가방안에 넣어갑니다. 재킷은 구겨지면 안되니 입고 내려가요.  

연안여객선에는 이렇게 누워서 갈 수 있는 선실이 있어요. 뜨끈한 방구들에 등을 지지려고 누웠더니 까뿍 잠이 들었네요. 뱃고동 소리에 눈을 떠보니 청산도에 도착했다고요. 

배로 1시간이 안 되는 거리입니다.

오후 3시 20분에 청산도 도착했어요. 슬로시티 청산도의 상징 달팽이가 곳곳에서 반겨줍니다.

일단 숙소를 찾아가 짐을 두고 나옵니다. 빌리지 펜션에서 방을 빌리지요. 1박에 6만원. (비수기 평일 요금입니다.)

취사시설도 갖춰져 있어 편해요. 청산도에는 아침을 먹을 식당을 찾기 어려워 펜션에서 묵는 게 좋습니다. 연안항 근처 하나로마트에서 햇반과 3분짜장을 사왔어요. 

오후 4시, 옷을 갈아입고 산책을 나왔어요. 근처 바다를 구경합니다.

동네 지도를 살펴봅니다. 

어, 여기에 영화 <서편제> 촬영지가 있네요? 그 옆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도 있고요. 네이버 지도로 검색하니 걸어서 30분도 안 되는 거리에 있어요. 이제 그곳으로 향합니다.

제가 드라마 피디로 일했잖아요? 촬영장 찾아 전국을 헌팅을 다녔어요. 그래서 알아요. 어떤 방송에서 세트장을 지었다는 건, 그곳의 풍광이 아름답다는 뜻입니다. 나 대신 먼저 다른 감독이 발품팔아 찾아낸 장소에요.

그런 장소를 찾아가면, 뙇!

이렇게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지요. 

서편제 촬영지를 알리는 안내문을 보니, 영화에서 본 장면이 기억나요.  송화와 유봉이 진도 아리랑을 주고받으며 노래가락에 취해 춤을 추는 모습.

이 장면, 기억나시나요? 세 주인공이 시골길을 걸어가며 노래하고 춤추는데 저 멀리 바다가 펼쳐졌던 풍광. 롱테이크로 찍어 한국 영화 역사상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되었죠.

바로 이곳 청산도에서 찍었어요. 

1993년에 극장에서 <서편제>를 보면서, '아, 저 장면 찍은 곳에 한번 가보고 싶다.' 했는데요. 차타고 배타고 하루 종일 가야한다는 말에 포기했던 기억이 있어요. 30년만에 소원을 풀었네요. 역시 오래 살고 볼 일이에요. ^^

영화 촬영지는 이제 연인들을 위한 인스타 촬영지로 바뀌었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이곳을 인스타맛집으로 알고 찾아오겠네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도 있어요. 

논두렁 사이로 난 길을 걸어요. 

빨갛게 저물어가는 노을을 보면서... <서편제>의 소화를 생각합니다. 6.25 전쟁으로 부모를 잃고 소리꾼의 수양딸로 들어갑니다. 소리꾼 유봉은 약을 먹여 수양딸의 눈을 멀게 합니다. 한이 있어야 소리가 잘 나온다고요. 눈먼 소리꾼이 되어 시골장터를 떠돌며 소리를 팔아 생계를 이어가는 부녀... 어렸을 때는 몰랐는데요. 지금 다시 생각해보니, '한이 있어야 소리가 잘 나온다' 라기 보다... 불행의 서사를 일부러 만들어준 게 아닌가? 싶네요. 그래야 보는 사람이 더 애절하게 느끼고 안타까운 마음을 품게 하니까요.

1960년대라는 시대적 배경이 만든 비극이지요. 그때는 모두가 가난하고 모두가 힘들게 살던 시절이에요.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앞에서 웃고 즐겁게 노래하고 춤추며 돈을 벌기는 힘들었을 거예요. 사람들이 '저것들은 팔자가 좋아서...'라고 했을 테니까요. 먹고 살기 힘든 사람들 앞에서 더 힘든 모습을 보여주어 동정심을 부르고 노래하고 춤추는 팔자에 대해 당위성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요?

왜 시련을 극복해야만 예술인가요? 괴로움을 즐거움으로 승화해야만 예술인가요? 나의 즐거움이 타인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는 없을까요? 

눈이 먼 송화가 부르는 판소리도 애절하고 구슬프겠지만, 저는 송화가 방긋방긋 웃으며 관객들과 눈을 맞춰주며 신나게 노래를 불러도 좋았을 것이라 생각해요. 

청산도 앞바다의 낙조를 보며...

노후에 내가 누리는 즐거움이 타인의 즐거움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청산도 걷기 여행,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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