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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중독은 즉각적인 보상을 추구하는 행위

by 김민식pd 2022. 11. 18.

당뇨나 고혈압, 심장병 같은 성인병이 정신과 질환이라는 말 들어보셨나요? 정신적 스트레스에 노출이 되면 우리 몸은 비상이 걸립니다. 뇌에는 호르몬 분비와 자율신경계를 관장하는 시상하부라는 곳이 있는데, 이곳에서 호르몬이 분비되고 자율신경이 흥분되어 맥박과 호흡이 빨라지고 응급조치로 혈당과 콜레스테롤이 높아집니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원상복귀되지만,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몸에서 탈이 생깁니다.

중년기 사망의 중요한 요인이 되는 고혈압이나 협심증 등의 심혈관계 질환은 스트레스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억눌린 감정이나 분노가 적절하게 해소되지 못하고 쌓이는 경우 자율신경이 흥분되고 부조화가 초래되어 혈압에 영향을 미칩니다. 스트레스를 푼다고 폭식이나 과음을 하면 심장에 무리가 가고요. 

완벽주의 성향이 있고, 경쟁심이 많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스트레스성 심장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약속도 잘 지키고 매사에 정확하고 일도 잘하지만, 너무 잘하려는 욕심 탓에 스스로 피곤하게 합니다. 스트레스성 심장질환으로 병원을 찾은 분들은 내과 치료와 함께 정신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치료 효과를 높이는 길입니다.

인생은 참 어렵습니다. 잘 살려고 하면 할수록 꼬이는 것 같아요. 이럴 땐 차라리 큰 욕심 부리지 말고 그냥 사는 게 낫지 않을까 싶은데요. 실제로 ‘그냥 살자’라는 조언을 들려주시는 정신과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냥 살자> (신영철 / 김영사)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임상교수로 근무하시며,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을 역임하신 신영철 박사님. 제가 2019년에 박사님의 강의를 직접 들었는데요. 재미있으면서도 배울 점이 참 많은 분이라 선생님이 쓰신 책까지 찾아 읽었어요.

스트레스로 인해 신체질환이 발생하는 걸 정신 신체장애라고 하는데요. 신체화 장애라는 것도 있어요. 특별한 신체적 질병이 없는데도 다양한 신체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지요. 여기도 아프고 저기도 아프고 여기도 불편하고 저기도 불편한데 병원을 아무리 전전해도 속 시원한 답을 듣지를 못해요. 검사 결과 신경성이니까 신경 쓰지 말라는 답답한 소리만 듣습니다. 신경성 질병은 신경을 안 쓴다고 낫는 병이 아닙니다. 불안한 사람에게 불안해하지 말라고 하면 효과가 있을까요? 신경성이란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합니다. 그래서 적절한 치료가 필요한 거죠.
 
우리나라 주부들에게 흔히 보이는 화병이야말로 전형적인 신체화 장애입니다. 남편이나 자녀들로부터 받는 만성적 스트레스, 시댁과의 갈등에서 오는 가슴앓이 등, 주부들이 겪는 스트레스는 보통이 넘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스트레스를 적절히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남자들에 비해 적다는 거죠. 울화가 치밀 수 밖에 없습니다. 얼굴이 달아오르고 가슴이 뛰고 답답하다는 등 자율신경계 증상이 나타나지요. 이런 경우 일단 약물치료를 통해 신체가 편안해지도록 조치한 다음 심리적 갈등에 대해 상담할 필요가 있고요. 특히 가족이 당사자의 어려움을 인정하고 도우려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신체 증상은 일종의 경고 반응입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는 거예요. 경고 반응을 무시하고 저항기로 넘어가 결국 탈진기로 향하게 된다면 신체를 회복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에너지가 듭니다. 초기에 가벼운 스트레스성 증상을 보일 때 적절한 대응책을 세우는 것이 스트레스성 신체질환에 대비하는 건강한 자세입니다. 

스트레스를 술로 푸는 분들도 있지요. 술은 인간의 뇌를 흥분하게 할까요, 억제할까요? 정답은 억제입니다. 일정한 양 이상 들어온 술은 뇌에 억제제로 작용합니다. 길을 가다 이상한 사람을 만나 기분이 나빠요. 한 대 때릴까요? 당연히 안 되지요. 뇌에 있는 전두엽은 이런 상태에서 ‘때리면 안 돼. 큰일 난다’는 경고를 보내며 행동을 억제하고 조절합니다. 술을 마시면 이런 기능이 억제됩니다. 그냥 주먹이 나가기도 해요. 평소에 많이 억누르고 산 사람은 술을 마시면 평소와 전혀 다른 행동을 합니다.
 
살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가끔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어요. 그걸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은 극히 소수입니다. 문제는 자살 시도자들 중 44퍼센트가 음주 상태에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겁니다.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는 데 술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요. 전두엽이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탓입니다. 우울할 때 과도한 음주로 푸는 건 위험합니다. 상황이 더 나빠질 수 있어요. 



신영철 박사님은 도박 중독을 치료하는 의사입니다. 미네소타대학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와 10년 이상 중독 분야 특히 도박중독클리닉을 운영하셨거든요. 술, 마약, 담배 등 다양한 중독이 있지만 최근 도박 중독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불법 스포츠토토 같은 도박이 성행한다고요. 

젊은 학생들은 스포츠 토토를 도박이 아니라 스포츠라 생각합니다. 조금만 연구하면 돈을 딸 수 있다는 환상도 가지고 있어요. 자신이 스포츠를 좋아하니 잘 안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친숙성의 오류라고 하지요. 스포츠를 안다고 돈을 딴다면 왜 모두가 하지 않겠어요? 승률이 높아진다 해도 어차피 배당은 낮아집니다. 승률과 배당을 곱해 일정한 수가 나오도록 만들어진 것이 스포츠 베팅입니다. 계속 베팅을 한다면 승률은 상관이 없어요. 도박은 얼마나 오래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도박을 오래 하면 누구든 돈을 잃습니다. 

코로나가 터지고 오랜 시간 온라인 수업을 했어요. 그동안 게임 중독이나 스포츠 도박에 빠진 학생들이 많아요. 사람들은 도박이 돈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돈을 벌기 위해 도박을 하고, 돈이 궁해서 도박을 하고, 빚을 갚기 위해 다시 도박을 하고, 큰돈을 벌고 싶어 도박에 빠진다고 믿습니다. 

저자는 도박이 결코 돈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술을 마시고 일주일 뒤에 취한다면 과연 사람들이 술을 마실까요? 경마장에서 베팅을 했는데 달리던 말들이 경마장 밖으로 나가 한 달 뒤에 들어온다면, 사람들이 과연 베팅을 할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중독은 뇌가 즉각적인 보상에 빠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간단하고 빨리 승부가 나는 도박이 중독성이 강한 거죠.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지 않으면 중독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공부에 중독되지 않는 이유는 공부에 대한 보상이 즉각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지요. 아이들이 재미도 없어 보이는 핸드폰 게임을 밤새며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목표를 달성하면 원하는 아이템을 바로 얻을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중독자들은 기다리지 못합니다. 바로바로 주어지는 즉각적인 보상에 중독됐기 때문입니다.

중독 치료에 있어 중요한 건, 대안을 마련하는 일입니다. 새해가 되면 늘 금주를 결심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납니다.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술을 마시지 않고 뭘 하느냐가 중요하지요. 술을 안 마시고 집에 왔어요. 맨송맨송해서 재미가 없어요. TV 앞에만 앉아 있으니 짜증이 나요. 이 사람은 다음 날 저녁에 어디 있을까요? 당연히 술집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는 술 마실 시간을 대체할 중요한 일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 동네 예체능>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있지요? 탁구, 테니스, 볼링 등 다양한 운동 동호회 사람들이 나오는데 가만 보면 대부분 중독자들이라고요. 얼마나 건강한 중독이에요. 누구에게도 피해도 주지 않고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는 운동 중독. 중독은 중독으로 치료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저는 이 책을 읽고 어떤 일을 할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어봅니다. 이 일은 즉각적인 보상이 주어지는가, 긴 시간 투자를 해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가? 공부, 독서, 운동, 걷기, 다 즉각적인 보상보다는 오랜 시간 투자를 계속해야 보상이 주어지는 일입니다. 젊어서는 바쁘게 일하느라, 여가를 보낼 시간이 부족했어요. 그러니 그때는 술을 마셔도 시간을 아껴 금세 취하려고 폭탄주도 돌리고 그랬지요. 이제 노후의 시간에는 여유를 더해야 합니다. 즉각적인 보상보다 긴 시간 투자한 끝에 성과를 맛볼 수 있는 일을 찾아 나서야 합니다. 문화센터에 나가 꽃꽂이나 서예, 캘리그라피, 수채화 그리기, 영어회화를 배워보세요. 즉각적인 보상은 없어도 긴 시간 노력 끝에 내 삶이 더욱 풍성해지는 즐거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신영철 박사님은 책을 통해 ‘그냥’이라는 프레임이 행복하고 유연한 삶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그냥 살자’가 ‘대충 살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 타인의 말과 행동 등을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살자는 것이지요. 세상을 바라보는 프레임의 형태는 저마다 다르기에 ‘나’의 프레임으로 본 세상이 항상 옳을 수는 없고요. 누군가의 퉁명스러운 말 한마디는 단지 말 한마디일 뿐이고, 지금 걱정하는 많은 것은 사실 굉장히 작은 것에 불과하다고요.

즉각적인 보상보다 긴 시간 성장하는 삶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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