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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동정과 공감의 차이는?

by 김민식pd 2022. 11. 4.

서울대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자살 예방에 기여하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어 서울대 의학대학원에 진학하신 분이 있어요. 하버드에서 석사를 마치고, 예일대 의과대 정신의학과 교수님으로 재직중인 나종호 선생님. 뉴욕에서 정신과 레지던트로 일하며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셨어요.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나종호 지음 / 아몬드)

한 날 한 시, 같은 곳에서 태어난 두 사람이 있어요. 한 사람은 중증 조현병을 앓는 노숙자예요. 뉴욕의 거리를 헤매며 환청과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본 행인이 경찰에 신고해 병원으로 이송되죠. 뉴욕에서는 정신적 문제로 자신이나 타인에게 즉각적인 위해를 가할 듯한 사람을 신고하면 경찰이 병원으로 이송한답니다. 뉴욕에는 전체 인구 1 퍼센트에 해당하는 8만 명의 노숙자가 있고요. 노숙자 중에는 중증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 환자는 저자가 만난 조현병 환자 중 증상이 가장 심했다고요.


또 한 사람이 있어요. 잘 나가는 변호사입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난 흑인 여성으로 성실하고 똑똑했기에 집안에서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한 수재고요. 로스쿨에 합격한 후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뉴욕의 유명 로펌에서 일하며 슈퍼 워킹맘으로 승승장구하며 삽니다.

자, 한 사람은 중증 조현병 환자에 노숙자고요. 또 한 사람은 성공한 변호사지요. 두 사람이 길을 걷다 마주칠 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확률은 0입니다. 둘은 같은 사람이거든요. 과중한 업무로 초과근무를 하던 변호사가 어느 날 환청을 듣기 시작합니다. 업무와 육아 스트레스가 심해 그런가 싶어 정신과를 찾고 약을 처방받아 먹는데요. 남편은 아내가 정신과 약을 먹는 걸 싫어해요. 약을 끊고 일하다 환청에 피해망상까지 시달리고요. 결국 직장에서 해고되고 맙니다. 조현병 때문에 이혼을 당하고 양육권도 빼앗기고 노숙자로 살아가는 환자를 보며 저자는 고민을 합니다. 정상과 질환의 경계는 어디에서 생기는 걸까? 


저자가 만난 환자 중에는 어릴 적 삼촌에게 당한 학대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20대 청년 알리도 있어요. 중동에서 태어났으나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부모님을 여의고 미국에 사는 삼촌에게 입양이 됩니다. 그런데 삼촌은 술만 마시면 알리에게 손찌검을 해요. 중학생이 될 때까지 매일 구타를 당하며 큽니다.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돌아온 알리에게 술에 취한 삼촌이 화를 내요. “왜 이렇게 늦었냐?”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오는데요. 중학생이 되어 덩치가 커져 힘이 붙은 알리는 자신을 내려치는 삼촌의 방망이를 거세게 잡았어요. 야구방망이를 맞잡고 힘싸움을 하던 삼촌이 방망이를 던지고 주방에 가서 부엌칼을 가져 옵니다. 그날 알리는 술 취한 삼촌이 칼에 다쳐요.

상담을 하며 저자는 그 끔찍한 밤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알리가 칼에 찔릴 때 저자 자신이 찔리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고요. 그런데요. 알리는 방망이를 잡았을 때, 자신이 술에 취한 삼촌보다 힘이 더 세다는 걸 느꼈어요. 만약 방망이를 너무 세게 당기면 삼촌이 중심을 잃고 넘어질 거라고 걱정을 했다고요. 자신을 매일 학대하고 해치려는 삼촌이 다칠까 봐 오히려 걱정했다는 소년의 말을 듣고 저자는 눈물을 흘립니다.

‘환자는 흔히 트라우마를 일으킨 사건의 원인을 스스로에게 돌리곤 한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실제로는 현실감이 떨어지는 권선징악의 논리를 교육받는다. 그래서 끔찍한 일이 발생했을 때, 트라우마의 피해자는 ‘내가 뭔가 잘못해서, 내게 문제가 있어서 벌어진 일’이라며 사건의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 그런 환자가 ‘그 일은 내 탓이 아님’을 깨닫도록 돕는 과정은 쉽지 않지만, 매우 보람 있는 일이다.’

나종호 선생님, 정말 귀한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저자가 만난 환자 중에는 키가 180센티미터 정도 되는 거구의 십대 소년도 있어요. 제이콥은 중증의 자폐증 환자인데요. 하루 벌어 하루 견디는 뉴욕의 싱글맘으로 사는 그의 어머니는 자폐증을 가진 덩치 큰 아들을 혼자 돌보는 게 너무 힘이 들어요. 그래서 가끔 병원을 찾아와 아들을 입원시켜달라고 합니다. 정신 병동에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의사들은 입원을 허락합니다. 아들이 입원한 시간 동안 엄마는 잠시나마 돌봄 노동에서 벗어나 쉬는 거지요. 

두 명의 교수가 있어요. 첫 번째 교수님은 두 아이의 엄마예요. 제이콥이 입원할 때마다 한숨을 푹푹 쉽니다. “내가 응급실 사람들한테 제발 입원시키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이것 봐. 이제 걸핏하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오잖아. 우리가 어머니의 잘못된 행동을 용인하니까 그런 거라고. 나도 아이를 키워봐서 얼마나 힘들지는 알아. 그렇지만 정신과 의사는 동정심만으로 환자의 입원을 결정해서는 안 돼.”라고 말합니다. 

또 다른 교수님이 있는데요. 이 분은 공개적으로 자신이 동성애자라고 밝힌 남자 교수예요. 제이콥이 입원한 걸 보고 가족 미팅을 잡으라고 합니다. 퇴근 시간이 넘어도 괜찮으니 어머니를 뵙고 싶다고요. 환자의 보호자가 긴장한 모습으로 상담실에 들어옵니다. 레지던트인 저자의 머릿속에 맴도는 말이 있어요. ‘저도 집에 한 살짜리 아이가 있어요. 그래서 어머니가 얼마나 힘드실지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이 환자의 어머니에게 도움이 될지 아니면 해가 될지 판단이 서지 않아요. 머뭇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교수님이 말합니다.

“어머니, 저는 아이가 없어요. 남편과 함께 아이를 입양할까 생각한 적도 있지만, 용기가 부족해서 그러지 못했어요. 애를 키워본 적이 없어 어머니가 어떤 심정일지 사실 잘 몰라요. 그렇지만 듣고 싶어요. 배우고 싶어요. 제이콥을 어떻게 키우셨는지, 들려주시겠어요?”

잠깐 놀란 어머니는 숨을 고르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제이콥이 태어났을 때 느낀 환호와 기쁨, 내 아이가 다른 아이들과 조금 다르구나 생각하게 된 계기, 제이콥이 자폐증 진단받은 뒤 남편이 떠나고, 싱글맘으로 하루하루 끼니를 해결하며 자폐증 아들을 키우는 고단한 삶의 이야기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고요. 상담 막바지에 교수님은 자폐증 부모 모임과 외래 클리닉의 연락처를 건네주시며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이야기하십니다. 

저자는 사람은 자신이 경험한 만큼만 공감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 순간, 공감이라는 것이 경험치와 무관할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지요. 동정과 공감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영문으로 동정은 sympathy, 공감은 empathy, 비슷해 보이지만 동정은 그리스어로 함께 라는 뜻을 가진 sun과 pathos 감정을 합친 단어입니다. 동정은 어떤 사람의 바깥에서 그의 고통을 함께 느끼고 이해하는 것이고요. 공감은 안이라는 뜻을 가진 em과 pathos를 합친 단어에요. 

동정심은 고통을 겪고 있는 주체의 아픔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철저히 타자화합니다. 고통을 겪는 사람을 연민하지만 그 아픔에는 개입하지 않기에 나와 고통을 느끼는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공감은 고통을 겪는 사람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진심 어린 공감은 타인의 고통을 실제로 덜어줍니다. 심리 치료에서 가장 큰 치료 효과를 보이는 요인이 바로 치료자의 공감 능력입니다.

첫 번째 교수는 제이콥의 어머니에게 동정심을 느꼈고요. 두 번째 교수님은 아이를 키워본 적이 없지만, 그녀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궁금해했고 적극적으로 들어주며 공감했어요. 경험하지 않아도 공감할 수 있는 겁니다. 그날 이후 저자가 졸업할 때까지 제이콥은 병원 정신과 응급실을 찾아오지 않아요. 모두 제이콥 어머니에게 휴식이 필요하다고 착각했지만 정말 필요했던 것은 진심으로 공감해줄 단 한 사람의 마음이었다고요. 

흔히 공감 능력은 타고난 특성이라 생각하는데요. 정신과 의사로 수련하며 저자는 공감 또한 학습과 의지 그리고 노력에 의해 발달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공감의 조건 3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다른 사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가치 있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 것.
둘째, 내가 모든 관심의 중심이 되지 않고자 하는 의지. 공감이란 타인을 향한 진심 어린 관심과 호기심에서 시작하거든요.
셋째, 다른 사람에게서, 특히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일수록 더 배울 것이 많다는 점을 깨닫는 것입니다. 자신과 다른 사람의 차이를 존중하고 이를 가치 있게 여기는 과정이 바로 공감이니까요.

저자는 정신과 응급실에서 일하며 자살을 시도한 환자들의 상담을 많이 하셨어요. 자살을 생각하거나 시도하는 사람들은 무엇을 해도 삶이 나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대요. 이 비극적인 상황에서 탈출하고 고통을 멈추는 유일한 길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자살을 시도하는 그 순간만은 자살은 선택지가 아니라, 현실의 고통을 멈출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라고요.

자살을 언론에서 극단적 선택이라고 부르는데요. 선택지가 없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선택이라는 표현을 쓸 수가 있을까요? 자살은 선택이 아닙니다. 자살 유가족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질문이 바로 “고인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묻는 것”이라고요. 다른 죽음과 달리 자살만은 죽음이 망자의 삶을 압도해버립니다. 누가 암으로 돌아가셨다면,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보다 어떻게 살았는지를 떠올리며 삶 전반을 기립니다. 유독 자살로 사망할 경우, 그 사람의 삶 자체보다 죽음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사랑하는 이를 자살로 잃은 슬픔만으로도 벅찬 유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극단적 선택이라는 표현은 자제해야겠어요.

한국의 우울증 유병률은 코로나 시대에 36.8퍼센트까지 뛰었지만, 항우울증 처방률은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입니다. 몸이 아플 때, 빨리 병원에 찾아가야 합니다. 안 가고 버티면, 약으로 고칠 병을 키워서 수술로 해결해야 할 수 있어요. 마음이 힘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다른 의학적 질환과 마찬가지로 정신질환 또한 조기에 치료를 받을 경우, 효과와 예후가 더 좋습니다. 반대로 발병 후 치료받지 못한 기간이 길어질수록 약물에 반응하는 속도도 더디고 예후도 좋지 않다고요.

한국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항우울제 처방률은 최저 수준이랍니다. 정신과 치료에 대한 낙인을 없애야 하는 절실한 이유가 여기에 있어요. 정신 건강 서비스 접근성을 높이는 것이 자살을 예방하는 데 매우 중요한 요소거든요. 정신과적 문제로 응급실에 오는 사람은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에 비해 위급해 보이지 않아 진료에서 후순위로 밀리곤 하는데요. 저자는 자살 사고로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진심을 담아서 고마움을 전한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청하는 일에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해요. 병원에 오기로 결정하신 것, 그런 용기가 없으면 안 되는 일이에요. 정말 잘하셨어요.”

정신 질환은 뇌 호르몬과 신경전달물질의 이상으로 생기는 의학적 질환입니다. 나약해서가 아니라 생물학적인 기전이 분명한 원인입니다. 정신과 환자에 대한 낙인과 편견을 없애고 병원에 대한 심리적 문턱을 낮추는 일이 중요합니다. 

힘들어서 정신과를 찾는 사람에게 저자는 오늘도 인사를 드립니다. “용기 내줘서 고맙습니다.” 그 용기가 환자를 살리고요. 가족들에게 희망이 됩니다. 

마음이 아플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일이 더 쉬워지기를 소망합니다. 

그것이 나를 살리고 가족을 살리는 길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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