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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어떻게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것인가

by 김민식pd 2022. 9. 30.

노인들 가운데 우울증을 앓는 분들이 많습니다. 우울증은 치매의 고위험 요소 중 하나입니다. 우울증이 생기면요, 외부 활동을 기피해 집안에서 칩거하다 근감소증이 오구요. 몸이 아프고 활동이 불편해지니 사람을 만나는 걸 더욱 피하게 됩니다. 타인과의 소통이 줄어들면서 결국 뇌의 인지 기능까지 저하됩니다. 정신건강과 육체의 건강은 밀접하게 이어져 있습니다. 마음이 힘들 땐, 그 힘든 마음을 돌볼 수 있어야 노후의 건강을 지킬 수 있습니다. 어떻게 다친 마음을 치유할 것인가, 정신분석가로 일하는 저자의 책을 통해 답을 찾아볼까 합니다.

<마음의 문법> (이승욱/돌베개)

사람은 언제 우울할까요? 타인과의 관계에서 정당하게 표현되어야 할 분노가 좌절되고, 그 분노의 좌절을 자신에게 책임 지우면서 발생할 때가 많습니다. 즉 분노가 자신을 향할 때 우울로 변환되죠. 우울한 사람은 어쩌면 지나치게 착한 사람 아닐까요? 이승욱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십니다. 

’진정 우울한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두려워 끝내 자신을 학대한다. 부당한 상황에서 분노하지도, 정당하게 요구하지도, 사실 관계를 논리 정연하게 따져 잘잘못을 바로잡지도 못한 자신의 못남에 대해 분노하고, 또 자기 마음을 학대한다. 그래서 우울한 사람은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다. 다만 타인에게 착했을 뿐, 자신에게는 가혹했다. 이처럼 우울은 우리 삶의 불균형에서 기원한다.’

지나치게 착한 사람으로 살기 위해 타인을 과도하게 배려했으나 정작 자신은 소외시킨 사람이 우울증을 앓게 된다는 말씀에 정신이 번뜩합니다. 건강은 무엇인가, 나를 배려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자신을 선하게 대해야 해요. 우울할 때는 자신을 더 존중해야 하고요. 그 존중의 방식에는 입을 열어 말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부당한 일에 공정함을 요구하고, 과도한 착취나 의존을 허용하지 말고, 자신이 느끼는 불편함을 솔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싸워야 할 때, 싸우는 것이 나 자신에 대한 존중입니다.

다만 그게 누구에게나 쉽지는 않지요. 만약 나서서 싸우기 어렵다면, 나를 존중하기 위해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찾아봐야 합니다. 저는 우울할 때, 책을 읽고 길을 걷습니다. 둘 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거든요. 평소 내가 즐겨 하는 일을 찾아 그 일로 시간을 보내며 나를 챙겨줍니다. 세상에서 내가 아니면 나를 챙겨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나를 버리면 누가 나를 아껴주겠어요?


몇 년 전, 갑자기 회사에서 계획에 없던 명퇴를 하고, 하던 일이 다 끊기고 한참 우울했던 적이 있습니다. 드라마 피디에, 신문 칼럼니스트에, 강연자에 엄청 바쁘게 지내다 일이 딱 끊기니까 문득 제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아 힘들더라고요. 아마 노인의 우울도 비슷한 이유에서 오지 않을까요? 아이들 다 키우고 가족의 뒷바라지가 끝난 중년의 나이에 빈둥지 증후군이 찾아오는 이유가 그게 아닐까요? 은퇴하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책에는 이런 구절이 있습니다.

‘중년이 되면 또 다른 생산성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자기 삶을 더 부유하게 만드는 걸 뜻하지 않는다. 자기가 여태껏 쌓아온 지적 경험, 경험으로부터 쌓은 지혜, 보유한 물적 토대 등을 다음 세대에 어떻게 전수할 것인가? 그 행위를 하지 않으면 중년의 삶은 아주 중요한 과제를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 세대를 위해 기여하는 자세가 자신과의 연대라고 말합니다. 그 행위가 중년의 삶을 더욱 가치 있게 만들어주기 때문이죠. 내가 있는 공동체 안에서 봉사할 수 있는 활동을 찾아서 하는 것. 내가 가진 유무형의 자산을 후대에게 잘 물려줌으로써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가 되자! 참 멋진 가르침입니다.

작년에 어느 중학교 선생님에게 메일을 받았어요. ‘서울에서 차 타고 5시간 걸리는 거리에 있는 시골 학교라 저자분을 모시기에 쉽지는 않은데요. 꼭 피디님을 모시고 진로 특강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아, 그래도 나를 불러주는 곳이 있네요. 반가운 마음에 남해 바다 어느 섬마을 학교를 찾아갔는데요. 수업 시작했는데 중학생 아이들이 등 돌리고 앉아 뒤에 앉은 아이와 낄낄거리고 놀더라고요. 제가 주의를 줬더니 금세 조용해지더군요. 네, 아예 엎드려 자더라고요. 멘붕이 왔어요. 아, 유무형의 자산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주기는 개뿔... 책을 보니, 정신분석가인 이승욱 선생님도 대학 특강을 갔다가 비슷한 경험을 하셨어요. 

‘강의가 시작되기도 전에 3분의 1은 한 팔을 깔고 엎드렸다. 3분의 1 정도는 스마트폰을, 또는 옆에 앉은 남자/여자 친구를 만지작거렸다. 그나마 강단 쪽을 바라보는 나머지 학생들도 강의에 크게 관심이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야심 차게 준비한 하이데거와 실존, 정신분석 강의는 청중의 무기력에 의해 무기력해졌다.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의 강의 경험이다. 나름 강의 좀 한다고 자부했던 나는 무기력해진 채로 돌아왔다. 상처라면 상처였다.
저 200명 넘는 젊은이들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은, 달리 의심할 것도 없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기 싫다'라는 무기력의 함성이었다. 똑똑한 젊은이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전달하는 메시지는 나를 당황스럽고 불안하게 했다. 더할 나위 없이 수동적인 자세로 이다지도 공격적인 집단 행위를 할 수 있다는 걸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날 이후 나는 무기력에 관심을 기울였다. 이 증상을 이해하고 싶었다.’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 하지 않나요? 집에서? 아이들이 너무 무기력한 모습으로 앉아 있어 뭐라고 잔소리를 하기도 민망할 때가 있지 않나요? 저는요, 학교 강의를 가보면, 이렇게 무기력한 10대 청소년들 정말 많이 봅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승욱 선생님은 같은 학교에서 2년 후 다시 강의 요청을 받습니다. 이번에는 심지어 축제 기간 중에 무료 강연을 해달래요. 강의 주제를 '무기력'으로 잡습니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하시지요.
 
‘부모는 자녀를 착취한다. 아이는 생명을 걸고 공부하지만 부모는 조금도 만족하지 않는다. 더!더!더!를 외치며 아이의 노력을 착취해서 자신의 행복을 채우려 한다. 기업은 실적과 성과라는 이름으로 직원의 피땀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쥐어짜고, 제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편 갈라 서로를 착취하게 하면서 또 싸움을 부추긴다. 남녀는 외모와 능력의 유무로 서로를 착취하면서도 혐오한다. 국가는 이 모든 것을 방조하고 조장하며 나아가 국민의 양심을, 정의를, 미래를, 심지어 생명까지 착취한다. 학생들에게 말했다. 지난 12년간 여러분은 부모의 욕망을 위해, 학교의 실적을 위해, 교육제도의 실험 대상으로 자신의 에너지를 써왔다. 많은 에너지를 타인을 위해 사용했을 뿐 제대로 돌려받지 못했다. 그래서 우울하고 까닭 모를 분노를 느끼고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무기력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생존 본능의 발로다. 그러니 여러분의 무기력에 대해 죄책감을 갖지 않아도 된다.’

이승욱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기계발서를 읽고 힘을 얻으려 하지도 말고, 명사의 강연을 듣고 심기일전하려 하지도 말고, 여행을 해서 충전하려 하지도 말고 자신의 무기력을 수용하라'고 말하십니다. 무기력이라는 증상도 그저 살고 싶다는, 착취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는 지극히 정상적인 자기 보전의 행위라고요. 

책을 읽고 부끄러웠어요. '아, 그렇구나!' 저는 진로 특강을 가서 공대를 다니던 내가 어떻게 책을 읽고 피디가 되었는지, 어떻게 영어책 한 권 외워서 동시통역사가 되었는지, 신나게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 말들이 지금의 중학생들에게는 또 하나의 고문처럼 느껴졌을 거예요. 저 아저씨도, 책 읽고 영어 공부 하라고 잔소리를 하는구나... 하고요. 아이들이 제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 걸 저는 무력 시위로 느꼈는데요. 책을 읽고 나니 그 또한 아이들의 살려는 몸짓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인간의 모든 증상은 하나의 메시지다. 우울은 내가 나 자신의 분노를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절규이며, 강박은 소외된 나 자신의 실재를 확인하려는 의례이며, 무기력은 착취당하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대한의 몸짓이다. 공황은 욕망에 휩쓸려 자기를 상실해가는 자들이 두려움을 느껴 무서워하는 얼굴로 자기를 다시 찾아달라고 주체에게 애걸하는 모습이다. 자기 삶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스스로에 대해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내가 모르는 게 무엇인지 알 때까지 삶에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이 책은 그에 대한 하나의 방법론이며, 작은 예시들이다.’ 

고령화 시대에 갈수록 우울증을 앓는 노인이 늘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농사를 짓던 시대에는 오랜 경륜을 지닌 노인의 지혜가 마을의 생산성을 키우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어요. 그래서 어느 집안이든 어른들을 모시고 그분들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죠. 이제 정보화 시대에요. 스마트폰에 검색하면 최신 정보가 수없이 올라옵니다. 노인의 사회적 역할이 줄어들면서 우울감이 늘어나는 게 아닐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감각은 바로 내가 내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느낌입니다. 내게 가장 소중한 것들을 나 자신이 결정할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 청소년기에는 부모가 내 진로를 결정하고, 청년기에는 직장 상사가 내 업무를 관장하고, 중년이 되면 가족 내에서 역할을 다 하느라 나 자신을 배려하며 살기 힘듭니다. 어쩌면 중년 이후, 우리는 진짜 내 삶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아닐까요? 아이들도 다 컸고, 직장에서의 책임도 다 했으니, 이제 나를 배려하며 살고 싶습니다. 하루하루 책을 읽고, 길을 걷고, 친구들과 즐거운 수다를 나누며 살고 싶습니다.
책 속에서 내 삶의 주인공이 되는 방법을 배울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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