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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by 김민식pd 2022. 9. 16.

굿 라이프, 좋은 삶의 조건에서 돈은 얼마나 있어야 충분할까요? 이 질문에 대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고민하고 쓴 책이 있습니다. 경제사학자 로버트 스키델스키와 아들인 철학자 에드워드 스키델스키가 함께 쓴 책인데요. 인류가 최근 이루어 낸 눈부신 경제 성장 덕분에 좋은 삶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은 충분해졌어요. 그러니 여가와 같이 진정으로 가치 있는 ‘좋은 삶’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책.

<얼마나 있어야 충분한가> (로버트 스키델스키, 에드워드 스키델스키 지음 / 김병화 옮김 / 박종현 감수 / 부키)

책의 원제는 How Much Is Enough? Money and the Good Life. 입니다. <굿 라이프> 채널에 소개할 책을 고르기 위해 영어 원제에 Good Life라는 단어가 들어간 책을 찾다가 제가 좋아하는 두 권의 책을 만났어요. 스콧 니어링의 <조화로운 삶>의 원제가 Living the Good Life고요. 그리고 이 책입니다. 코로나가 터진 후, 저는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선택하고 은퇴를 결심했는데요. 그 결정을 내리는 데 이 두 권의 책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책에서는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인생에서 돈은 과연 얼마나 있어야 충분할까?'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돈이지요. 문제는 그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이라는 자원을 투입합니다. 피디로 일할 때, 드라마 촬영을 나가면 하루에 2~3시간 자면서 일을 해요. 밤샘 편집에 주말 출근에 시간외 근무 수당이 엄청 나오는데요. 돈은 많이 벌지만 그걸 쓸 시간은 부족하지요. 어려서부터 느꼈어요. 돈보다 더 중요한 자원은 시간이구나. 돈을 무조건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적당히 벌고 여가를 즐기는 삶이 좋은 삶이구나. 수명 연장 덕분에 우리는 노후에 더 많은 시간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은퇴 후 시간은 여가의 일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따라서 그 기간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삶의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1948년에 영국 남자는 평균적으로 65세까지 일했고 그로부터 2년 뒤에 죽었다. 오늘날 그들은 67세에 퇴직하여 평균 11년을 더 산다. 그러나 그토록 긴 여가를 생애 말년에만 몰아넣는 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이다. 사람들은 노동하는 기간 동안 앞으로 다가올 여가를 위한 준비를 거의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것을 즐기는 능력도 십중팔구는 줄어들었을 테니 말이다.
핵심적인 수수께끼는 그대로 남는다. 부유한 세계에 사는 우리는 1930년대에 비해 4~5배 이상 부유해졌지만 평균 노동 시간은 그때보다 15퍼센트 가량 줄어들었을 뿐이라는 것 말이다.'

물질적 욕구가 유한하다면, 우리는 이미 오래전에 경제적 조건을 갖추었으니 이제 자족하며 편하게 쉬어도 괜찮지 않을까요? 하지만 인간의 욕구에는 끝이 없어요. 자본주의의 기본 동력은 바로 욕구의 끝없는 확장입니다. 경제사면에서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를 누르고 체제의 승리를 거두었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가 만인에게 사랑받는 체제가 된 건 아닙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헤아릴 수도 없는 부를 가져다주었지만, 부가 주는 진정한 편익도 앗아가 버렸거든요. 이제 충분하다는 만족감이 바로 그것이죠. 현대 자본주의에서는 좋은 삶의 조건을 남들보다 더 많은 돈이라고 여기게 합니다. 하지만 절대적 만족이 없는 상대적 비교는 끝없는 욕구의 추구로 사람을 지치게 만들죠.


고대 인도에서는 좋은 삶의 조건을 무엇이라 여겼을까요? 브라만들의 고대 법전인 <다르마수트라>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사람이 늙어 가면 머리카락과 치아도 나이든 티가 난다. 그러나 아무리 나이가 들어도 생명과 부에 대한 갈망은 전혀 노쇠하지 않는다. 갈망이라! 바보들은 이를 포기하기 힘들어한다. 그 갈망은 나이와 함께 약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평생 지속되는 질병이다. 그것을 포기하는 사람은 행복을 찾는다.”

현대 중국을 보면 헷갈릴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저 나라는 사회주의인가, 자본주의인가? 정치 제제로는 공산당 일당 독재지만, 경제 시스템으로보면 그 어느 나라 못지않은 자유 경쟁 자본주의 체제처럼 보이거든요. 언뜻 모순처럼 보이는데요. 고대 중국의 양대 철학인 유교와 도교 역시 서로 모순처럼 여겨지는 가치관을 지향합니다.

유교 국가에서는 출세를 하기 위해 한자를 공부하고 고전을 암송하고 문장을 짓는데 수십 년이 걸립니다. 돈이 없으면 공부하기 힘들었어요. 유가의 문인들에게 부유함은 교육과 관직을 얻는 수단이었어요. 하지만 철학적 성향을 지닌 도가에게 물질적인 부란 여가를 가져다 주는 수단이에요. 도인들은 속세를 떠나 유유자적하며 살지요. 서로 다른 이데올로기지만 출세 지향적인 유교와 철학적인 도교가 경쟁 관계는 아니었답니다.

‘잘 알려진 중국 격언은 “관직에 있을 때는 유가, 은퇴하고 나면 도가”라고 말한다. 논리적인 모순은 이렇게 해소되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전형적인 중국식 해결책이다.’

인민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자본주의의 시장 경제는 받아들이지만, 정치 체제만큼은 공산당 주도 권력 구조를 포기하지 않는 것도 중국식 해결책이었네요. 저는 여기서 관직에 있을 때는 유가, 은퇴하면 도가라는 말이 와 닿습니다. 젊어서는 출세를 위해 최선을 다해 공부를 하고 일을 하고 노력을 하지만, 나이가 들어 물러날 때가 되면 이제 이룬 것에 만족하며 여가를 즐기라는 뜻 아닐까요? 

‘어느 정도의 경제 수준을 넘어서면 절대적인 의미로는 필수품이 아니지만 그것을 가진 사람을 타인들보다 우월한 존재로, 아니면 적어도 열등하지 않은 사람으로 드러내 주는 데 적합한 물품에 소득의 많은 부분을 쓴다. 그러한 물품은 평균 수준보다 항상 더 비싸기 마련이다. 그렇지 않다면 그러한 물품이 차별화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득은 경쟁적으로 상승하도록 압력을 받는다. 계속 상승하는 경쟁적 소비가 노동 시간을 계속 길게 붙잡아 두며, 그럼으로써 여가라는 기본재가 실현되는 것을 방해한다. 또 사람들을 타인들과 경쟁적인 관계로 밀어넣어 우정, 개성, 안전이라는 기본재를 망가뜨린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삶에서 우리가 원하는 게 진정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볼 것을 주문합니다. 돈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좋은 삶이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경제학자 아버지와 철학자인 아들이 함께 써내려간 책을 읽으며 저도 고민을 계속해봅니다. 노후는 언제 시작될까요? 이 정도면 물질적 조건은 충분하다. 그러니 나는 여가를 누리며 정신적 충만함을 위해 공부할 것이다, 라고 결심하는 순간 아닐까요? 좋은 노후란 돈벌이를 중심으로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대의 부는 약간의 부에 만족하는 것이다.’라는 글을 어느 소설에서 읽은 적이 있는데요. 요즘 이 글귀를 마음에 새기며 지냅니다.

합리적 소비란 무엇인가? 지속가능한 욕망의 범위를 고민하며 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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