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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

내게 필요한 건, 다른 의견

by 김민식pd 2022. 9. 2.

스마트폰이 생기고 온라인 소통의 장이 열렸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공유하는 일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나랏님이 하는 일이 잘못된 것 같잖아요? 선비가 임금에게 상소를 하러 갈 때, 도끼를 등에 메고 갔지요. ‘제 의견이 고깝게 여겨지면 제 목을 치소서.’ 요즘은 굳이 도끼를 등에 메고 한양의 궁궐까지 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인터넷 기사에 댓글을 달면 되거든요. 다만 이렇게 다른 의견을 표현하는 게 쉬워지면서 반대 의견에 적대감을 보이거나 아예 의견 대립을 피하는 일이 많습니다. 오늘 소개할 책의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의견'을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배운다면, 우리 사회는 더욱 생산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요.

<다른 의견> (이언 레슬리 지음 / 엄윤미 옮김 / 어크로스)

위협적인 대상을 만났을 때, 동물들의 반응은 둘 중 하나지요. 싸우거나 도망치는 거. 사람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의견 대립이 생기면 공격적으로 비난을 퍼붓거나, 자신의 의견을 속으로 삼키며 갈등을 피하려 합니다. 자, 싸우는 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고, 도망치는 건, 나를 죽이는 일입니다. 둘 다 생산적인 결과를 낳지는 않아요. 싸우지 않고, 도망치지도 않고, 의견이 서로 다른 사람끼리 소통할 수는 없을까요?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소통이 이루어지는 공간 중 하나가 위키피디아입니다. 인터넷 백과사전, 위키피디아는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편집자들의 집필과 감수를 통해 만들어집니다. 하나의 항목에 대해 서로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의 주장을 치열하게 펼칩니다. 2019년, 시카고대학의 과학자들이 위키피디아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가지고 정치적 양극화 현상을 분석했는데요.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에 반대하는 이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더 공들인답니다. 그 결과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팀에서 작성한 것보다 정치적으로 정반대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팀이 만들어낸 정보의 질과 양이 훨씬 더 뛰어나다고요. 지성은 ‘다른 의견’의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2차 대전 후, 경제가 발달하면서 영양 과잉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어요. 1980년대 초 세계 최고의 영양학자들이 모였어요. ‘아, 이대로 가면 비만이 공중 보건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가 되겠다.’ 정부에 식습관 변화를 권했습니다. 포화지방과 콜레스테롤이 많은 음식을 줄이라고요. 서방 국가의 국민은 영양학자들의 충고를 충실히 따랐어요. 스테이크와 소시지 대신 파스타와 밥을 먹고 버터 대신 식물성 오일을, 달걀과 토스트 대신 뮤즐리와 저지방 요거트를 먹었죠.
이후 수십 년 동안 공중보건의 재앙이 펼쳐졌습니다. 이전까지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던 비만도가 극적으로 치솟고, 당뇨와 같은 비만 관련 질병의 발병률도 급증했어요. 왜 이런 일이 생겼을까? 영양학자들이 논쟁을 통해 서로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법을 잊어버리고, 확증편향이 날뛰도록 내버려 둔 탓입니다.

1972년에 존 유드킨이라는 영양학자가 책을 냈어요. <설탕의 독>. 정제당이 서구 음식의 주요 재료가 된 것이 불과 300년밖에 되지 않았어요. 반대로 포화지방은 우리의 진화 과정에서 긴밀하게 함께해왔고 모유에도 풍성하게 들어있죠. 

‘유드킨은 선사시대부터 함께해온 식재료보다는 현대의 혁신으로 만들어진 식재료가 인간을 병들게 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지방이 해롭다는 주장의 근거도 빈약하다고 믿었다. 그는 비만과 심장 질환, 당뇨의 원인이 설탕일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했다.’

당시 영양학 분야에선 이미 지방 가설이 널리 퍼진 후고, 대부분의 영양학자들이 저지방식이 건강한 식단이라고 합의한 상태였어요. 유드킨은 설탕 가설을 주장하다 학계에서 따돌림을 당하고요. 연구의 기회조차 박탈당한 채 1995년에 쓸쓸하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유드킨이 직업적 사망선고를 받는 걸 본 다른 과학자들은 겁을 먹고 서구 식생활의 주요 문제가 지방이라는 합의에 감히 반대할 생각조차 못 합니다. 

엘리트 영양학자들의 조언을 받아들인 미국과 영국 정부는 지방과 콜레스테롤의 섭취를 줄이라고 권고했고요. 지방을 줄인 사람들은 탄수화물 섭취를 늘렸는데요. 비만율이 치솟고 사망률이 올라간 후에야 뒤늦게 설탕이 지방만큼 유해하거나 오히려 더 유해하다는 걸 깨달았다고요.



‘다른 의견’을 대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상대가 나에게 동의하도록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의 생각과 의견을 통해 나의 사고를 발전시키는 것이지요. 우리는 다양한 의견 사이에서 새롭고 더 나은 무언가,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내게 됩니다. 저자는 대화를 ‘무한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무한 게임에서 중요한 건 게임의 승패가 아니에요. 누가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게임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목적이지요. 탁구에서 초보에게 꼭 필요한 훈련은 랠리라고 공을 계속 주고 받는 겁니다. 랠리를 할 때, 세게 때려서 상대가 못 받게 하면 안 됩니다. 주고 받기가 이어질 수 있도록, 상대가 잘 받을 수 있도록 공을 줘야 합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대화의 목표는 “상대편 네트로 공을 꽂아 넣는 테니스가 아니라 친구들이 함께 비치볼을 공중에 띄워놓는 것”이라고요. 이기고 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대화를 이어가는 게 생산적인 대화를 하는 비결입니다.

96년도에 MBC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 심사위원이 제게 물었습니다.
“김민식 씨, 고등학교 내신등급이 15등급 중 7등급이네요.”“네, 그렇습니다.”
“왜 이렇게 성적이 낮습니까?”
“제가 고등학교 때 사춘기를 심하게 앓았습니다. 방황을 많이 했죠.”
“대학교 성적을 보니 학과생 전체 72명 중 70등을 하셨다고.”
“네, 맞습니다.”
“아이고, 꼴찌는 면하셨네?”
“제 뒤에 있던 두 명은 수배 중인 운동권이라 시험을 못 봤습니다.”
“대학 성적은 왜 이렇게 낮습니까?”
“사춘기가 심하게 길었지요.”
“김민식 씨, 우리 MBC에서 피디 뽑는다고 하면, 중고등학교 때 성실하게 공부 열심히 해서 명문대 신문방송학과나 언론정보학과를 나온 사람들이 많이 옵니다. 우리가 왜 김민식 씨 같은 사람을 뽑아야 합니까?”
“대한민국에 시청자가 5천만 명인데, 하나같이 어렸을 때 공부만 들입다 한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만 보겠습니까? 저처럼 좀 놀아본 사람이 만드는 프로그램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세상에 변화는 끊임없이 닥쳐옵니다. 조직이나 국가의 경쟁력은 다양성에서 옵니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이들로 균일한 조직을 이룬다면, 갑자기 변화가 닥쳐왔을 때 대응하기 힘듭니다. 생태계가 그래요. 진화와 발전은 종의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집니다. 어떤 회사가 잘 되려면, 다양한 재능을 가진 구성원을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의 질문을 놓고 논쟁을 벌일 때 새로운 생각과 정보, 통찰이 쏟아져 나옵니다. 논쟁을 벌이지 않았더라면 누군가의 머릿속에만 갇혀 있었겠지요. 조직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팀 내 다양성이 중요합니다. 회의 테이블에 앉은 사람들이 다양한 관점을 가질수록 창의적이고 통찰력 있는 논의를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다만 그 통찰과 창의성은 사람들이 서로의 의견을 공개적으로 반박하고 시험할 준비가 되어 있을 때만 현실화될 수 있습니다. 의견 대립은 다양성의 장점이 발현되도록 문을 열어줍니다.

‘인류가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건 ‘혼자 생각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 아니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집단 사고 능력 덕분이었다. 옷을 입는 것부터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까지, 우리가 다른 사람의 지식에 기대지 않고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우리 각 개인은 선조들에게 물려받아 동시대인들이 공유하는 방대한 지식 네트워크에 접속해 있다. 속해 있는 네트워크가 개방적이고 유연할수록 더 똑똑해질 수 있다. 열린 논쟁은 이 공동의 풀에 우리가 가진 전문성을 더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의 전문성을 얻어내는 방법 중 하나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3가지 큰 변화라면, 세계화, 정보화, 그리고 고령화입니다. 말인즉슨,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다른 나라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정보를 받아들이고, 나와 생각이 다른 나보다 어리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아는 것, 내가 믿는 것만 고집하며 사는 것보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과 어떻게 공존할 것이냐, 그것이 세상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요령이라 생각합니다. 새로운 생각에 귀를 열고 경청하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독서입니다. 나와 다른 의견에 대해 귀를 열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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