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빠와 동생이 있어요. 대학을 다니던 동생이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마음고생을 심하게 합니다. 누구나 그럴 때가 있어, 하고 오빠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요. 동생의 상태가 조금씩 심해집니다. 학교도 안 나가고 사람도 안 만나고 방에 틀어 박혀 혼잣말을 합니다. 환청이나 환각이 심해 맨발로 집을 뛰쳐나가기도 해요. 온 가족이 독실한 크리스천이라 교회 목사님에게 상담을 합니다.
“귀신이 들린 겁니다.” 목사님 말씀을 듣고 온 가족이 며칠씩 금식을 하고 새벽기도에 매달려요. 어느 날 동생이 울면서 “오빠, 나 귀신 들린 거 아니야.” 하소연을 합니다. 목사님을 찾아가니 사탄은 거짓의 영이니 무조건 기도와 믿음으로 이겨내라고 하십니다. 10년의 세월이 흐르고, 동생의 병세는 더 나빠집니다. 폭력적으로 변해 칼을 들고 가족들에게 달려들어요. 오빠는 경찰을 부르고요. 동생은 곧장 정신병원으로 이송됩니다.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동생을 진찰한 의사의 첫 마디에요. “10년 동안 뭐하셨습니까? 왜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하셨습니까? 우울증, 조현병이 복합적으로 발병해서 악화되었습니다. 초기에 치료했다면 정상 생활도 가능할텐데 너무 오래도록 병을 악화시켰습니다.”
동생을 보살피던 오빠는 목사가 되고요. 미국으로 선교사로 파송돼 일하는데요. 동생과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 이들과 그 가족을 만나고, 그들을 돌보고 섬기는 일을 합니다. 오늘은 그분이 쓰신 책을 소개합니다.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들> (폴 김, 김인종 지음 / 마름모)
평생 정신질환에 대해 고민하며 사신 폴 김 목사님은 이 세상 거의 모든 사람이 알게 모르게 정신적 장애를 겪으면서 살아간다고 말하십니다. 정신질환의 거대한 스펙트럼에 우리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요.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상이라 생각하며 살아갑니다. 이 착각에서 깨어날 때 회복이 시작됩니다.
저자가 만난 한인 교포 중에 월남전 참전 용사가 있습니다. 70년대 말 미국으로 건너와 사업에서 크게 성공했습니다. 두 딸을 두고 교민 사회 활동도 활발히 하며 성공적인 이민 가정을 꾸려요. 초등학교 5학년 딸이 두 살 터울인 여동생과 싸우는 걸 보고 벌을 줍니다.
“자, 너희들 서로 미워하지? 그래서 싸우는 거지? 언니랑 동생이랑 싸우면 어떻게 되는지 가르쳐줄게. 서로 뺨을 때려.”
군복무 시절 군대에서 행해지던 변태적 벌을 어린 자녀에게 가합니다. 언니가 동생의 뺨을 살짝 건드리자 아버지가 나서서 있는 힘껏 동생의 뺨을 칩니다. 언니는 그걸 보고 아빠가 나서면 동생이 더 아프겠다는 생각에 직접 합니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해요. 열한 살, 아홉 살의 두 자매는 그렇게 울면서 서로 뺨을 때렸어요.
딸이 고등학생이 된 어느 날 늦게까지 공부하다 밤 11시쯤 잠이 들어요. 그때 아버지가 돌아옵니다. “아비는 힘들게 일하고 밤늦게 돌아왔는데 너희들은 자고 있어? 인사도 안 해?” 딸들을 깨우고 군대식 체벌인 빳따를 칩니다. 엄마가 말리면 아빠의 언성은 더 높아집니다. “뭐, 벌써 끝내라고? 네가 그따위로 가르치니까 애들이 이 모양이잖아!” 부부싸움이 벌어지고요, 아내랑 한바탕 싸운 후, 다시 딸들을 혼냅니다. 결국은 엄마도 끼어들 수 없게 되지요.
아버지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미움 속에서도 딸은 열심히 공부를 해서 명문대학에 진학합니다. 가정에서 겪는 스트레스 속에서도 신앙의 끈을 놓치 않아요. 어느날 교회 집회에서 큰 은혜를 받습니다. 기도 도중에 아버지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회개를 했어요. 아버지에게 사죄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찾아갑니다.
“아빠, 저는 어려서 아빠가 너무 무서웠어요. 사춘기가 심할 때는 아빠를 많이 미워했어요. 어떨 때는 아빠가 일을 나가시면 오늘 사고가 나서 들어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너무 죄송해요. 아빠를 미워한 거 다 고백하고 용서를 받고 싶어요. 아빠, 용서해주세요.”
“뭐? 네가 나한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 너는 오늘부터 내 자식도 아니다. 나가!”
무릎을 꿇고 비는 딸을 발로 걷어차고요. 딸은 쓰러지며 머리를 부딪혀 이마에서 피가 흘러요. 딸은 피를 흘리며 울며 불며 용서를 구하지만 아버지는 냉담하기만 합니다. 다음 날 아침, 딸이 학교 갈 시간이 되었는데 나오지 않아요. 엄마가 올라가 깨우니 딸의 눈동자가 돌아가 있어요. 딸은 온전한 정신을 잃고 외부 출입을 끊은 채 10년을 방에서 지냅니다. 큰 딸이 조현병에 걸리고 둘째 딸에게서도 뇌질환의 증세가 나타납니다. 독실한 기독교 가정이라 기도를 하며 신앙에 의지해 버티는데요. 갈수록 상황은 악화됩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나르키소스를 아시나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청년인데, 물속에 비친 자기 자신의 모습과 사랑에 빠져버리지요. 이처럼 자기애가 강한 사람을 나르시스트라고 하는데요. 나르시시즘이 심한 경우, 정신질환이 됩니다. Narcissistic Personality Disorder 줄여서 NPD, 자기애성 인격장애는 파괴적입니다. NPD 환자들은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이 형성되지 않고, 감정이입이라는 개념을 몰라요. 어린 자녀의 뺨을 때리는 아버지는 자녀들이 어떤 공포감을 느끼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애성 인격장애자 NPD 환자라서 그런 겁니다.
문제는 이들 NPD 환자들은 원하는 것을 이루는 성공, 권력에 대한 욕망, 자신이 최고여야 한다는 집착이 강하고요. 가정이나 직장에서 군림하면서 주변 사람들의 인격을 황폐하게 하고 육체적 정신적으로 주변인들을 서서히 죽여갑니다. 이념으로, 종교로, 지식으로 무장한 이들 NPD 환자들이 가정에서 가족들을 통치하는데요. 이들은 자신이 옳다고 믿고 정상이라 생각하기에 절대 정신병원을 찾지 않습니다. 이런 뇌질환자들이 오히려 정상인인 자녀나 배우자들을 미치게 해 정신병원으로 보내는 비극이 발생하지요.
미국 한인 가정의 1세대 이민자들은 1970년대 한국이라는 저개발국가에서 미국이라는 세계 최고의 선진국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공한 사람들입니다. 이민 2세대들은 반대로 미국이라는 선진국에서 태어났지만, 유색인종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어려서부터 절감하며 살았어요. 미국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니라는 정체성의 혼란을 안고 삽니다. 이민이라는 노력을 통해 가난을 벗어난 1세대와 달리 뚜렷한 성과를 내기 힘든 교민 2세대는 부모에게 주눅이 들기 쉬워요.
제가 19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요. 그때는 대학만 나오면 취업이 비교적 쉬웠어요. 회사에 들어가서도 열심히 일을 하면 승진과 고용 안정이 보장되던 시절이었고요. 지금은 세상이 달라졌어요. 대학 입시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요. 취업은 훨씬 더 어려워졌지요. 내가 살아온 과거를 기준으로 현재를 판단하면 미래 세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어요.
우리 중에 얼마간 신경증이나 성격장애 증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신경증인 사람들은 자신을 항상 수준 미달이고 늘 엉뚱한 선택을 하는 열등한 존재로 자각하고요. 반면에 성격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자신을 문제의 근본 원인으로 여기지 않고 오히려 자기보다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인가요, 내가 문제인가요? 세상이 문제인가요?
<한국 사회 전체에 정신적 고통이 만연하다>라는 제목의 OECD 보고서가 있어요. 한국인의 정신건강과 관련 의료 시스템을 조사한 평가보고서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과 학교 폭력, 알코올 남용, 도박, 인터넷 중독의 심각성을 꼽았는데요. 멀쩡해 보이는 부모가 자녀의 삶을 너무 힘들게 한 결과 학교 폭력이나 인터넷 중독으로 몰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참 열심히 잘 살았어, 하고 나를 긍정하는 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지만, 그런데 너는 왜 이렇게 노력을 안 하니, 하고 자녀를 추궁하는 건 아이의 건강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미국 교민 사회에서 정신질환을 앓는 젊은이들과 그 가족을 오랜 세월 돌본 폴 김 목사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정신질환은 착하고 똑똑한 청년들이 많이 걸립니다. 남에게 스트레스나 미움, 분노 등을 풀어내지 못하고 자신이 다 감당하고 참고 지내다가 뇌기능장애가 오는 겁니다. 악한 사람들은 정신질환에 걸리지 않아요. 악한 사람들은 순수한 사람들에게 그 스트레스를 다 떠넘겨 병들게 하고 자신들은 살아남죠.”
뇌질환자, 정신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자신은 아프지 않다고 확신하는 겁니다. 위장병 환자나 골절 환자 등 눈에 보이는 육체적 질환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병을 인정하고 의사의 지시를 따르고 치료에 임해요. 하지만 뇌질환자들은 자신의 질병을 받아들이지 않고 약물복용이나 치료를 기피합니다. 이 부정의 단계를 지나 자신이 병자라는 걸 인정하는 순간에야 회복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나를 돌아봅니다. 혹시나 나는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아주 정상적인 아픈 사람’이 아닌지. 오늘도 책 속에서 가르침과 깨달음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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