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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슬픈 코미디언의 시대

by 김민식pd 2022. 11. 14.

<보통 일베들의 시대> (김학준 / 오월의봄)를 읽었습니다.

책 표지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집니다. 
‘혐오의 자유’는 어디서 시작되는가? 

일베의 시작은 유머 콘텐츠랍니다. 사이버공간에서 웃기는 글이나 사진을 올리면 사람들이 좋아요를 누르죠. 재밌다고 댓글을 달아주고요. 유머 콘텐츠는 인정욕구를 충족시켜주는 자본입니다. 웃기는 게시물을 올린 사람은 ‘인정욕구’를 충족하고, ‘일간 베스트’ (줄여서 일베)에 등극하게 됩니다. 조회수가 높은 게시물을 올리기 위해 경쟁을 하는데요. 조회수 경쟁을 위해서는 시간과 공을 들여 콘텐츠를 만드는 것보다 자극적인 제목을 달고 어그로를 끄는 콘텐츠를 올리는 게 유리합니다. 신문 기사도 그렇지 않나요? 오랜 시간 공들여 쓴 기획기사보다 본문과 관계없는 제목으로 낚는 기사에 사람들은 클릭을 누릅니다. 조회수 장사에는 막장 전략이 효율적이라는 걸 깨달은 이들이 점점 강도를 높여갑니다. 그러다보니 고인을 희롱하는 것도 개의치 않고, 광주 민주화 운동이나 세월호 참사 같은 사회적 비극의 희생자는 물론 유가족도 농담의 대상으로 삼기 시작합니다. 

유머 콘텐츠가 올라오는 디시갤러리의 경우, 과도해지는 막장 행각이 고소나 고발을 부르는 위험요소입니다. 갤러리 관리자에게 도가 지나친 게시물에 대해 삭제 권한을 부여합니다. 이용자 입장에서는 공들여 만들어놓은 ‘짤방’이나 저장 가치가 높은 ‘드립’이 사라지는 건 심각한 ‘손실’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웃기다고 인정한 게시물이 날아가는 건 표현의 자유에 대한 침해라고 생각한 이들이 '개념글'을 탄압받기 전에 옮깁니다. 이것이 ‘일간 베스트 저장소’가 생긴 배경입니다.

일베의 존립 근거는 표현의 자유를 극한으로 추구하는 데서 오구요. 그들은 자신들에 대한 비난에 이렇게 대응합니다.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씹선비 ㅋㅋㅋㅋㅋ’ 

책의 저자 김학준은 유니텔부터 프리챌, 디시인사이드, 인스타그램을 거친 인터넷 죽돌이 출신 사회학 연구자랍니다. 2014년 논문 <인터넷 커뮤니티 일베저장소에서 나타나는 혐오와 열광의 감정동학>으로 서울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아요. 2014년에 낸 논문을 바탕으로 2022년에 책을 냅니다. 시간이 지나고 일베는 사라졌는가? 우리 사회에서 ‘일베’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답니다. 여성가족부를 폐지하는 걸 보면 저자의 생각에 수긍이 갑니다. 저자는 일베를 비난하는 것보다, 일베가 태어난 배경에 주목하자고 말합니다.  

‘일베 이용자 개개인을 비난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하지만 이들은 한국이 마주하고 있는 문제의 증상이지, 원인도 원점도 아니다. 한국 산업화의 원천은 혐오였으며, 혐오자들은 국가가 그 발전 과정에서 필요에 따라 체계적으로 생산해낸 도덕적 정치적 산출물이다.’


(343쪽)



저자가 학위 논문을 준비하며 일베 이용자들을 만났던 2014년, 1제곱미터당 514만원이었던 서울의 아파트 중위가격은 2021년 7월 기준 1,250만원이 되었어요. ‘국민 평수’인 84제곱미터로 계산하면 4억 3,200만 원에서 10억 5,000만 원이 된 것이죠. 2021년 4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이 487만원이니 10억 5,000만원은 숨만 쉬며 살아도 18년을 모아야 하는 돈입니다.

‘청년들이 스스로의 삶을 자조하는 현상에 대해서는 청년 세대가 공유하는 루저 정서가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이 있다. 청년실업 지표가 나날이 악화되며 교육도 취업도 포기한 니트족이 증가하는 최근의 경제 상황에서 자신이 점점 쓸모없어지고 있다는 ‘잉여로움’의 ‘느낌적인 느낌’이 확산되는 것은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리고 동시에 ‘죽창’도 ‘짱돌’도 들 수 없다는 사실을 청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제 기능을 하지는 못할지언정 체제가 뒤집힐 빈틈은 보이지 않고, 대안이 될 수 있는 정당도 체제도 없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웃는 것뿐이다.’

(254쪽) 

DC 영화 조커가 문득 떠올랐어요. 가진 것도 없고, 가질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여, 오로지 가진 자들의 위선에 대해 폭력으로 응징하는 조커. ‘슬픈 코미디언의 시대’가 도래했어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 책을 들었다가 더 많은 질문을 안고 갑니다.
앞으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희망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고민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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