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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신탁의 땅, 델포이 여행

by 김민식pd 2022. 10. 26.

저의 지난 6월 그리스 여행 일정,

아테네 - 크레타 - 산토리니 - 미코노스 - 델포이 - 메테오라 - 아테네.

크레타, 산토리니, 미코노스 같은 섬은 페리로 이동하고요. 내륙에 위치한 델포이와 메테오라는 아테네에서 출발하는 투어로 1박2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오전 8시에 출발했는데요. 마라톤 평원을 지나고, 테베 땅을 지나... 

저 앞에 겨울 스키 리조트로 유명한 몽파르나스산이 보입니다. 

11시 40분. 아라호바라는 마을을 지나갑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촬영지였다네요.

드디어 델포이 도착.

아테네에서 대중교통으로 오기는 시간이 너무 걸려 투어 버스를 탔는데요. 차로 달려도 반나절이 걸리는 곳이에요. 옛날에는 한 달씩 걸려서 신탁을 받으러 갔답니다. 


델포이의 신탁이 영험하다고 알려진 데에는 사연이 있어요. 신들의 땅, 고대 그리스에는 신탁소가 곳곳에 있었어요.

'기원전 6세기 중엽, 리디아 왕 크로이소스는 독립해 기세가 오른 이웃 나라 페르시아를 정벌할 것인가 말 것인가 궁리 중이었다. 신탁은 믿음직한 것인지, 어느 곳이 진실을 말해 줄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각지의 신탁소에 사람을 보내, 100일 후에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답하게 했다.

“나는 안다. 가는 모래알의 숫자도 바다의 광대함도. 벙어리의 마음을 읽어 말 못하는 자의 소리를 듣는다. 단단한 등껍질의 거북이 냄새가 나누나. 청동 그릇에 산양 고기와 함께 삶은 거북이의 냄새로다. 그 밑에 청동이 놓이고, 청동은 또 그 위에도 있도다.”

델포이의 무당은 이렇게 답했지만, 그것은 정곡을 찔렀다. 크로이소스는 거북이와 작은 양을 잘게 다져 청동으로 만든 큰솥에 넣고 청동 뚜껑을 덮어 끓였던 것이다. 그 영험함에 놀라서 기뻐하던 왕은 막대한 제물과 함께 황금으로 만든 기와, 사자 상, 금과 은으로 만든 혼주기(술과 물을 섞는 그릇) 등을 델포이 신전에 헌납했다. 게다가 델포이 사람 하나에게 황금을 주었는데, 그 덕분에 리디아인은 우선적으로 신탁 받을 권리를 얻게 되었다.'

<이야기 그리스로마사< (신선희, 김상엽 지음)

그 시절, 그리스 사람들은 전쟁을 하기 전에 신탁을 통해 신의 계시를 구했고요. 전쟁에서 이기면 신의 가호에 감사하는 의미로 승전 기념물을 바칩니다. 

델포이의 조각들은 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하고 자랑하는 기록의 흔적들입니다. 

독특한 모양의 돌이 있는데요.


바로, 옴파로스. 세상의 배꼽이지요.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제우스는 2마리의 독수리를 지구 반대방향으로 날려 보냅니다. 그 두 마리 독수리가 돌아와 만나는 곳이 세상의 중심이지요. 뭐, 그냥, 그 시절,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의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고 싶었나봐요. 그래서 저런 이야기를 지어낸 거죠. ^^

높은 탑도 있고요.

그 옆으로 사이프러스 나무가 많아요. 그리스인 들은 이 나무를 묘지에 많이 심었답니다. 나무의 모양이 하늘로 똑바로 솟아오르는게 마치 영혼을 하늘로 이끄는 것 같잖아요? 이 나무가 신들의 안테나였던 거죠.


이곳은 1930년, 델포이 축제가 열린 스타디움입니다.

인증샷 찍기 딱 좋은 곳~^^

이 건물의 용도는 무엇일까요? 고대 그리스의 은행입니다.

트레저리 오브 아테네 Treasury of Athene, 아테네의 금고가 왜 델포이에 있을까요? 그 답은 또 책 속에 있습니다.

'당시 그리스는 일반적으로 신전을 금고 대신 사용하는 관습이 있었다. 델로스동맹 금고는 델로스 섬의 아폴론 신전에 있었고, 스파르타도 필요 이상의 수입이 생기면 델포이에 있는 아폴론 신전에 맡겼다. 그리스인은 신이 보는 앞에서 도둑질을 할 사람은 없다고 믿었다. 이 믿음은 도난을 방지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었다.'

<그리스인 이야기 2 : 민주주의의 빛과 그림자> (시오노 나나미 지음)

신탁을 믿고, 신전에 금고를 만들고, 참 순진한 사람들이었네요, 그리스 사람들. 그런데요. 우리가 현대에 와서 볼 수 있는 건 이런 믿음의 결과물들이에요. 먹고 사느라 짓고 만든 건 다 사라졌지만, 신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건물이나 조각들은 아직 남아있지요. 감히 파괴하지 못했으니까요. 

델포이는 아폴로 신을 섬긴 곳인데요. 전쟁에서 이길 때마다 아폴로 신에게 감사의 제물을 바쳤습니다.
이번에 여행하며 새로 배운 영어 단어가 있어요.

영어 안내문에 나오는 단어 votive. 이게 뭐지?
given or done to honour and thank a god: 신에게 경배하거나 감사하기 위해 바친 제사나 제물.


아항! 현대에 와서는 사라진 단어지요. 요즘 우리가 신에게 제물을 바치지는 않잖아요?

델포이의 신탁이 용하다는 소문에 전국에서 신탁을 받으려고 사람들이 몰려들었어요. 그러다보니 신의 예언을 듣기 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어요. 이웃 나라랑 무역 과정에서 오해가 생겨요. '어라? 이 놈들이 약속한 물자를 안 주네? 우리를 무시하나?' 화가 나요. '저걸 버르장머리를 고쳐야겠다.' 하고 바로 군대를 동원하지는 않아요. 신에게 허락을 먼저 구해야지요. 신탁을 찾는데요. 가는 데 한 달, 줄 서서 신탁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데 한 달, 오는 데 한달... 그 사이에 갈등은 풀려 버려요. '미안! 지난번에는 흉작이 와서 우리가 약속한 밀을 못 보냈는데, 이번에 추수는 잘 되었어. 덤으로 더 줄게.'

  
그 시절에는 정보가 곧 돈이고 힘인데요. 델포이에는 전국 각지에서 신탁을 구하러 온 사람들이 한 달씩 기다리면서 사교를 했어요. '왜 왔어?' '엉? 왕이 그런 일이 있었어?' '아, 우리는 말이야. 노예들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그래서 말이지.' 대화가 오가는 중에 서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게 되는 거죠. 저는 그렇게 알게 된 세상 물정이 신탁보다 더 유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제게도 믿고 찾는 '델포이의 신탁'같은 존재가 있어요. 바로 책입니다. 고난과 시련이 닥치면, 일단 물러나 책을 읽습니다. 재미난 책을 읽다보면 어느새 고난이 끝나기도 하고요. 책 속에서 살 길을 찾기도 합니다. '아, 드라마 연출에 목을 맬 게 아니라 책을 써야 겠구나!' 하고요. ^^

저는 책으로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공부합니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어려움은 없다고 믿습니다. 고난이 찾아오면, 일단 기다려봅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그리스 여행기,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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