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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재난은 3단 콤보로 온다

by 김민식pd 2022. 10. 5.

캐나다에 사는 여동생은 저보다 한 달 먼저 그리스 여행을 떠났어요. 동생이 톡을 보냈어요.
"오빠, 산토리니 진짜 좋아. 나는 2박 3일 있다가 가는데 다음에 또 오면 일주일은 여기서 머물고 싶어."
동생에게 영업을 당해 산토리니에서 5박 6일을 지내기로 했는데요. 흠... 솔직히 6일은 좀 과해요. 3박4일만해도 충분하고, 일정이 촉박한 분들은 2박3일이 딱 좋아요.
산토리니 2박 3일 추천 일정.
첫 날 이아 마을의 유명한 일몰을 보고,
둘째날 오전 화산섬 보트 투어를 하고,
오후에 아크로티리 유적 답사를 한 후,
저녁에 피라 마을에서 노을을 감상한 후,
다음날 아침에 페리로 이동하면 딱 좋을 듯.

산토리니에서 꼭 하면 좋을 것 중 하나는 선사 시대 유적 답사입니다. 이곳은 기원전 3600년 경에 이미 중요한 문명의 중심지였어요.

아크로티리 유적지. (입장료 12유로)
산토리니의 남부 해안에 있는 고대 미노아 마을인 아크로티리는 종종 '그리스의 폼페이'라고 불려요. 기원전 1642년에서 1540년 사이에 대규모 화산 폭발로 초토화되었지만 마을의 모습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여기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이 묘사한 잃어버린 도시 아틀란티스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어요.

청동기 시대 정착지의 잘 보존된 유적을 탐험하는 것은 매우 감동적인 경험인데요. 건물, 벽화, 도자기 가구가 놀라울 정도로 좋은 상태로 보존되어 있어요. 약 5천년 전에 흙과 돌로 3층짜리 건물을 짓고 살았다는 게 놀라울 뿐입니다.

여기는 크레타 섬의 크노소스 궁전입니다. 건축물이나 벽화나 도자기, 같은 양식을 보여줍니다. 크레타와 산토리니가 미노아 문명을 공유한 거죠. 고대 산토리니의 이름은 스크롱길리, 그리스어로 '둥글다'였어요. 원형의 섬은 기원전 1500년경 거대한 화산 폭발에 휩싸입니다. 그 폭발의 여파로 크레타섬의 미노아 문명도 파괴된 것으로 보여요. 왜냐하면 화산 분화의 여파로 발생한 쓰나미가 크레타와 인근 섬을 덮쳤을 것이기 때문이죠.

크레타 섬과 그리스 본토 중간에 위치해 있고, 해상 무역이 활발한 에게해의 중심에 있기에 산토리니는 훗날 다시 해상 무역의 중심지로 떠오릅니다. 비잔틴 제국의 일부였다가 터키의 지배하에 있던 시절도 있었지만, 지정학적 위치의 이점 덕분에 대체로 풍요를 구가했어요.


선사 시대의 유적이 이렇게 잘 보존된 상태로 다시 발견되는 게 쉽지는 않은데요. 비결은 화산재입니다. 이 마을 위로 화산재가 수미터씩 쌓였어요. 부드럽고 가벼운 재로 덮여 있었기에 건물이 무너지지 않고 원형을 유지하고 있어요.

흥미로운 건 폼페이와 달리 여기에서는 유골이 발견되지 않았어요. 화산 폭발이 일어났을 때, 이미 사람들이 마을을 버리고 달아난 후였던 거죠.

애써 지은 집을 버리고 왜 달아났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추측의 영역입니다. 현지에서 가이드들이 하는 설명을 귀동냥으로 들은 것과 검색을 통해 답을 찾아봤어요.

화산 폭발 전에 지진이 먼저 왔어요. 3층 높이 건물의 경우, 지붕이 무너지며 다치는 사람도 나왔을 거예요. 위험하니까 다친 사람들을 데리고 달아난 거지요.

그들이 지진과 화산 폭발을 피해 무사히 살아남았다면 다시 마을로 돌아왔겠지요. 하지만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요. 아마 그들을 기다린 건 쓰나미가 아니었을가 싶어요.

아크로티리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레드 비치가 있습니다. 항구를 옆에 끼고 발달한 고대 도시입니다. 화산 폭발의 여파로 높이 200 미터가 넘는 쓰나미가 닥쳐왔어요. 1970년에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기 전까지 수천년 동안 아크로티리는 유령 마을이 되었어요.
예전에 본 앙코르와트 사원이 떠올라요. 캄보디아 밀림 속에 그토록 놀라운 문명을 만든 사람은 누구였을까? 후손들은 왜 선조들이 누린 번영을 이어받지 못했을까? 크메르 문명이 사라진 이유는 무엇일까? 아크로티리와 앙코르와트를 직접 비교하긴 무리죠. 앙코르 와트는 불과 1천년 전에 지은 곳이고, 아크로티리는 기원전 17세기에 번창한 마을이니까요. 선사 시대에 이런 기술력을 가졌다니 놀랍습니다.


그 시절에는 3층 높이의 건물을 만든 기술력을 가졌는데, 왜 불과 100년전까지 후손들은 절벽에 동굴을 뚫고 집을 짓고 살았던 걸까요? 세상은 끊임없이 발전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불과 100년도 못사는 현대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 이야기입니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책 <문명의 붕괴>를 보면, 숱한 첨단 문명이 비극적 결말을 맞았습니다. 첨단 문명이란, 동시대인들이 보기에 놀라울 정도의 기술력을 자랑했던 곳을 말합니다. 위기는 단순하지 않아요.

지진, 화산 폭발, 쓰나미로 폐허가 된 아크로티리 마을을 보며 문득 생각해봅니다.
왜 재난은 3단콤보로 올까?
코로나도 화산 폭발같은 큰 변화입니다. 우리의 생활상에 거대한 지각 변동을 일으키고 있지요.

처음엔 보건상의 위기였어요. 정체모를 괴질로 사람들이 죽어나갑니다. 국경을 폐쇄하고 사람들의 이동을 통제하며 겨우 겨우 대처하지요.
다음엔 경제 활동의 위기가 옵니다. 방역 활동과 이동 통제로 경제 활동이 위축되고 관광 및 레저 산업에 타격을 가하며 실업이 증가합니다. 부랴부랴 중앙정부에서 돈을 풀어 경제 위기를 틀어막습니다.
마지막엔 인플레이션이 와요. 경제 활동은 줄었는데 통화량이 늘면서 돈의 가치가 떨어지고, 자산의 가격이 올라가는 인플레가 찾아옵니다.

코로나는 하필 최악의 시기에 찾아왔어요. 2008년 금융위기를 수습하느라 온 세계가 유동성 잔치를 벌인 후에 왔거든요. 이미 돈이 많이 풀렸는데, 거기에 더 풀었으니...
MBC 후배인 박정욱 피디가 페이스북에 <달러 패권의 힘>이란 글을 올렸어요.
2007년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 미국의 양적완화와 초저금리 -> 전세계적 달러 유동성 공급 -> 미국 경기 회복과 전세계 자산 버블 -> 미국 국내의 부실을 달러를 통해 전세계로 수출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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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 ->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그동안 뿌린 달러를 거둬들임 -> 미국 국내 인플레이션을 억제 -> 반면 달러화 가치 상승 -> 전세계 물가 상승 -> 미국 국내의 인플레이션을 달러를 통해 전세계로 수출해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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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달러 패권'이 '달러로 패는 권리'인 건가?

위기의 시대, 어떻게 살 것인가?
계속 고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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