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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은퇴자의 세계일주

나는야 그리스 자비 유학생

by 김민식pd 2022. 11. 2.

6월에 3주간 그리스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블로그에 여행기를 연재하며 코너 제목을 고민했어요. 뭐라고 할까? 그러다 <그리스 인문학 기행>이라고 카테고리를 정했어요. 너무 거창한가요?

중년 백수가 할 일 없이 그리스를 구경다닌 게 아니라, 자비 유학생으로 인문학 공부한다는 마음으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공대를 나와 딴따라로 평생을 살았으니 제게 부족한 건 인문학적 소양입니다. 중년이란 부족한 걸 채워가는 나이입니다. 인문학의 기본은 문사철입다. 문학, 역사, 철학, 그리스 여행을 하면 셋 다 공부하게 됩니다.

우선 여행 다니면 짬짬이 그리스에 관련된 책을 읽습니다. 세계문학전집에 반드시 끼는 책이 <그리스인 조르바>인데요. 책의 배경이 되는 크레타 섬에서 이 책을 읽으면 감회가 새롭습니다. 저자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고향에서 저자의 발자취를 찾아봅니다. 그리스 신화는 스토리 텔링의 고전입니다. 그리스의 유적을 다니고 유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 신화를 알아야 합니다. 김헌 선생의 <신화와 축제의 땅 그리스 문명 기행>, 양승욱 님의 <지금 시작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등 수업 교재로 삼을 책들이 많고요. 여행 짬짬이 책을 읽으며 공부합니다. 

이 분은 누구일까요? 손에 무엇을 들고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번갯불을 들고 있다면 제우스, 삼지창을 들고 있다면 포세이돈이거든요. 

그리스에서 하는 역사 공부. 영화 <300>을 보고 시오노 나나미의 <그리스인 이야기>를 읽어보세요. 눈앞에서 스파르타의 전투가 치열하게 펼쳐집니다. 역사 공부를 하면, 아테네가 어떻게 고대 도시로서 그렇게 융성할 수 있는 지 알 수 있어요. 페리클레스가 파르테논을 지은 이유도 알 수 있고요. 알고 나면 보이는 게 달라지고요. 역사를 공부하면 여행이 더욱 풍성해진다.

끝으로 철학.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로 이어지는 아테네 철학자들이 바로 서양 철학의 시조들입니다. 원래 계획은 <플라톤의 국가론>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시학>까지 읽는 것이었는데 목표였는데요. 봐야할 게 너무 많고, 노느라 바빠 다 읽지는 못했어요. 괜찮아요. 나는 자비 유학생이니까요.


그리스 인문학 유학, 등록금은 항공권으로 대신합니다. 박물관에서 만나는 소장품이 다 수업용 교재예요, 귓동냥으로 현지 가이드들의 설명을 듣는 건 청강하는 거죠. 배우겠다는 자세에는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생활비는 한국에 있어도 어차피 드는 돈이에요. 숙박이야 뭐 기숙사비 내는 거라고 쳐야지요. 3주간의 그리스 유학, 인문학 공부하듯 착실하게 즐겼어요. 

그리스 유학 생활에 도움을 준 5개의 앱이 있어요.  
   
일단 저는 새벽 5시 쯤 일어납니다. 알람을 맞춰두진 않아요. 셀프 유학생이기에 정해진 수업 시작 시간은 없습니다. 잠에서 깨는 시간이 등교 시간이죠. 일어나면 <예스24 북클럽>에 들어가 오늘 새로 들어온 책을 살펴봅니다. 내키는 책이 있으면 읽고, 없으면 그리스 여행 중 읽으려고 찜해둔 책들을 읽습니다. 여행 떠나기 전 그리스를 검색어로 넣어 뜬 책들을 다 크레마 카르타에 넣어 왔어요. 독서가 공부의 시작입니다.

 
글을 한참 읽고 나면 글이 마렵습니다. <네이버 메모장>을 열고 블루투스 키보드를 연결해 글을 씁니다. 전날의 여행기도 좋고, 책을 읽다 떠오른 단상도 좋아요.

 
오전 6시에 창밖으로 동이 트면 운동을 시작합니다. <홈트레이닝> 앱을 열고 근력 운동을 15분 가량 합니다. 앱을 보고 따라해도 되고, 유튜브를 띄워놓고 따라하기도 해요. 탄력밴드를 이용해 운동을 하고, 스쿼트나 플랭크같은 간단한 전신 운동을 합니다. 그런 다음 적당히 몸이 달궈지면 나가서 달립니다. 낮이 되면 지중해의 태양은 뜨거워요. 아침 해 뜬 직후가 가장 선선합니다. 저녁에 해질 무렵도 선선하기는 좋은데, 사람들이 붐비는 크레타의 골목을 달리는 건 민폐입니다. 인적이 드문 새벽의 해변을 달립니다. 원래 그리스 철학자들도 리케이온에서 몸을 단련하며 공부를 했어요.

  
운동을 마치면 아침을 먹고 잠시 어학 공부를 합니다. <듀오 링고>를 꺼내 그리스어 초급 공부를 합니다. 그리스어 알파벳 읽기를 공부하는데, 앱 설계를 참 잘했어요. 누구나 쉽게 따라갈 수 있게끔 만들었네요. 세상 참 좋아졌어요.

 
어학 수업까지 마치면 오전 여행을 시작합니다. 2~3시간 정도 걸어요. 그런 다음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영화를 본다. <넷플릭스>로 영화를 볼 때는 영어 자막을 틀어놓고 본다. 한동안 영어를 쓰지 않아 영어가 녹슬었어요. 다시 영어 활용 모드로 전환하기 위해 영어로 영화를 봅니다. 여행 중엔 스탠드업 코미디를 즐겨 봅니다. 쉴 새 없이 개그 퍼레이드가 이어지고. 관객은 웃는데 나는 안 웃긴다? 그럼 공부가 필요한 순간인 거죠. 맥락을 놓친게 무엇인지, 나의 해석이 어디서 틀린건지 확인할 수 있어요. 공부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구분하는 일입니다. 그냥 알듯 말듯 넘어가서는 늘지 않아요. 

이렇게 예스24 북클럽, 네이버 메모, 홈 트레이닝, 듀오 링고, 넷플릭스까지 5개의 앱을 쓰고 나면 졸려요. 낮잠을 잘 시간입니다. 

자고 일어나면 오후 3,4시 정도. 여전히 지중해의 태양은 뜨겁습니다. 괜찮아요. 나는 유학생이잖아요. 호텔 방을 대학 강의실이라 여기고 선생님들을 모셔옵니다. 예스 24로 김헌 선생을 모셔 그리스 역사 수업을 받거나, <소피의 세계>를 읽으며 아테네 철학 공부를 합니다. 5개의 앱으로 돌아가는 루틴이 다시 시작됩니다.

중년 백수의 그리스 유학 생활, 지루할 틈이 없어요.

끝으로 저의 유학비용을 총정리합니다.

그리스 여행 경비 (2022년 6월 4일~25일, 총 21간의 여정)

항공권 91만원

아테네 3박4일 339000원

크레타 2박3일 287000원

산토리니 5박6일 746000원

미코노스 3박4일 506000원

메테오라 1박2일 335000원

아테네 2박3일 301000원.

합계 3,424,000원.

 

중년 백수의 세계 인문학 기행은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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