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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달아날 때 생각해두면 좋을 일

by 김민식pd 2022. 8. 15.

서미애 장편 소설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엘릭시르)를 읽었습니다. 전작 <잘 자요, 엄마>를 무척 재미나게 읽었는데요. (많이 무섭습니다.) 이 책도 참 좋네요. (덜 무섭습니다. ^^) <잘 자요, 엄마>의 주인공 하영이 이번 작품에서는 열여섯살이 되어 전학을 갑니다. 그 학교에는 따돌림을 당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반 아이들에게 집단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는 서울에도 있었다. 행동이 굼뜨거나, 엉뚱한 소리를 해대거나, 이해력이 떨어져서 반 친구들에게 쉽게 표적이 되는 아이. 처음부터 집단행동을 하지는 않는다. 먼저 돌을 하나 던져보고 반응을 살핀다. 그때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따라 아이들은 그를 괴롭힐지 내버려둘지 결정한다.

처음엔 몇 명이 장난처럼 시작하고 점점 그를 무시하거나 괴롭히는 아이들이 많아지면 반 전체의 장난감이 된다. 무리지은 아이들은 쉽게 분위기에 휩쓸려 도를 넘기 시작하고, 그러다 보면 끔찍한 결과를 낳기도 한다.'

(246쪽)

제가 고교 시절에 학교에서 왕따였다고 말하면 사람들이 놀랍니다. "피디님이요?" 집단 따돌림을 받을 만한 사람이 따로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여러 요인이 어우러져 지옥이 펼쳐집니다. 저의 경우, 불우한 가정 환경이 큰 몫을 차지했지요. 소설의 주인공도 어린 시절 집에서 핍박을 받습니다.

'식탁 위에 놓인 바나나라도 하나 먹으려고 하면 효자손으로 손등을 때렸다. 하루 세끼 먹여주는 것도 감지덕지인데, 뭔 과일까지 처먹느냐고 옆구리를 찔렀다. 하영이 하는 행동은 모두 밉살맞게 보였는지 수시로 파리채나 효자손이 날아들었다. 그와 동시에 했던 말들, 생각하기도 끔찍하다. 때리는 건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 하지만 말로 인한 상처는 오래, 깊게 아프게 했다. 

몸의 상처는 눈에 보이지만 마음에 새겨진 상처는 본인만 안다. 가족에게 받는 상처는 절망을 남긴다.

하영은 자신의 절망에 지고 싶지 않았다. 내가 선택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들 때문에 더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았다.'

(322쪽)

어려서 많이 맞았어요. 제가 맞은 이유는 하나였어요. 성적 부진... 제가 고등학교 때 반에서 50명 중 22등이었거든요. 25등 안쪽이면 상위권 아닌가요? 반 중간보다 높으면 상위권, 낮으면 하위권? 그런데요, 아버지의 목표는 저를 의대 보내는 것이었어요. 반에서 1등이 아버지의 목표였기에 늘 매를 맞았지요. 애초에 저는 의대 갈 생각이 없었는데 말이죠. 집에서 구박을 당하고 학교에 와서 울상을 하고 앉아 있으면 아이들의 먹잇감이 되기 십상이었어요. 

어느날 가출을 결심했어요. 집에서는 맞고, 학교에서는 놀림을 당하고, 그런 삶이 지긋지긋했지요. 가만히 생각해봤어요. 가출이 답일까? 집을 나가서 혼자 밥벌이를 하며 나는 지금보다 더 잘 살 수 있을까? 학교 수업을 들어도 반에서 중간 정도 가는 내가, 선생님 도움 없이 혼자 공부해서 대입시험에서 더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까?

괴로울 땐 달아나는 게 맞아요. 그런데요. 달아날 때 조건은, 그 결과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한다는 거죠. 가출을 하고, 자퇴를 하면 더 못난 내가 될 것 같았어요. 집을 나가는 대신 독서실에서 먹고 자고 하면서 미친듯이 공부를 했습니다. 죽을 각오로요. 고3 1학기 중간 고사 성적이 50명 중 22등이었는데, 6개월간 머리를 싸매고 공부한 결과 대입 시험에서 반에서 2등을 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을 했어요. 집에서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학교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며, 합법적인 가출에 성공했습니다.

힘들 때는 달아나야 합니다. 절망에 지지 말고 희망을 찾아 떠나야지요. 다만 그럴 때 조건은 하나입니다.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달아나야 합니다. 달아나서 내 삶이 더 힘들어진다면, 달아나는 의미가 없어요.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 참 재미있어요. 소설을 읽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봤네요.

서미애 작가님, 요즘 한국 추리문학계에서 가장 핫한 분입니다. <잘 자요, 엄마>는 전세계 13개국에서 출간 예정입니다. 그 소설에서 세상을 뒤흔든 연쇄살인범 이병도가 범죄 심리학자 선경과 면담을 주문합니다. 선경의 남편은 전처가 낳은 딸 하영을 집으로 데려와요. 살인범과 면담을 하며, 남편의 전처 소생을 키우며, 선경은 이병도와 하영의 과거에 공통점이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과연 살인마는 태어나는 것일까요, 만들어지는 것일까요?

<잘 자요, 엄마>가 하영 연대기 1부,

<모든 비밀에는 이름이 있다>가 2부입니다. 

하영 연대기 3부작의 마지막 종결편을 기다립니다.  

추리소설 좋아하시는 분들, 서미애 작가님을 영접해보세요.

무더운 여름을 서늘하게 보내실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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