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1일차 여행기, 이어집니다.
제가 묵은 코스모스 호텔. 전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인데요. 공항을 갈 때도, 페리를 타러 피레우스 항을 갈 때도 전철을 타고 가니까, 아테네 배낭여행자라면 전철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는 게 좋아요.
깨끗한 트윈룸이 1박에 4만원. 저는 편하게 잘 지냈어요. 한여름의 그리스, 낮에는 더워서 돌아다니기 쉽지 않아요. 교통이 편한 곳에 숙소를 잡고 오전 잠시 다닌 후, 낮에는 쉬고, 오후에 선선해지면 다시 나가는 편이 좋지요.
블로그 댓글에서 보리랑님이 질문을 주셨어요.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고백하면, 저의 영어 실력은 이제 많이 줄었어요. 20대에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한 지경입니다. 24년간 피디로 일하며 주로 쓴 영어문장은 두 개, "스탠 바이!" "오케이, 컷."이었어요. 쓰지 않으면 영어 실력은 줄어듭니다. 안 쓰는 영어를 유지하는 비결은 없는 것 같아요. 자꾸 써줘야 유지가 되지요. 그래도 여행하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영어로 돈을 벌기가 힘들지, 돈 쓰면서 하는 영어는 쉬워요. 상대가 잘 알아듣고요. 상대방도 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거든요.
여행할 때 저는 넷플릭스로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저장해 두고 틈날 때마다 영어 회화 청취 공부 삼아 봅니다. 마치 수다쟁이 친구가 옆에서 계속 영어로 떠드는 기분이에요. 조금씩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이날 저는 낮잠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트레버 노아의 다크 공포증'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봤어요. 영어 자막을 띄워놓고 보면, 청취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이건 재미삼아 하는 공부법입니다. 초보 회화 공부로는 적절하지 않아요.
"여행은 무지를 치료하는 해독제다."라는 트레버 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가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도 있거든요.
푹 쉬다 오후 5시가 넘어 나왔어요. 괜찮아요. 여기는 오후 8시가 넘어도 훤합니다.
오후 5시 45분. 소크라테스의 감옥. 가보면 좀 초라합니다. 진짜 여기에 소크라테스가 갇히고,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서양철학, 특히 고대 그리스철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이곳은 성지와 다를 바 없어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유명하죠. 자신을 탈옥시키기 위해 모인 친구들의 설득을 뿌리치고 스스로 독배를 들었다고요. 심지어 그는 자신을 탈옥시키려는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을 설득합니다. 왜 자신이 죽음을 선택하는지. 보다못해 친구 크리톤이 그럽니다.
“여보게, 간수가 오늘 만큼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군.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거야. 그럼 독배를 두 잔, 세 잔을 마셔야 할 수도 있다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든 후, 감방 안을 걷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혈액 순환이 잘 되어 온몸에 독기운이 잘 퍼지겠지요. 독기운이 오르는 걸 보고 자리에 누워 마지막 순간에 그럽니다.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한 것처럼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치유를 빌었고,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감사의 표시로 닭 한 마리를 신전에 바쳤습니다. 독약의 효능이 제대로 발휘되었으니 그 역시 의학의 신에게 빚을 진 거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리스 문명 기행>에서 김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사건이라 믿었다. 그것은 영혼의 해방이다. 반면 이승에서의 삶이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영혼의 수감 생활을 뜻한다. 쇠창살로 막힌 감옥에서 소크라테스가 탈옥한들, 영혼은 여전히 육체에 갇힌 상태니 감옥 바깥이라 해도 여전히 감옥인 셈이다. 하지만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면 영혼은 몸을 벗어나서 진정한 탈옥,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것을 왜 지금 와서 마다하랴. 사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한 이유도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철학이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데, 육체의 욕망과 감각은 언제나 인식의 혼란만 초래하며 영혼이 진리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육체적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혼을 가능한 한 가장 맑게 유지해야만 진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는 훈련, 그것이 철학이다. 따라서 철학은 죽음과 아주 비슷하다. 진정한 철학은 죽음의 연습인 셈이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철학이 완성되려는 순간, 왜 탈옥함으로써 육체의 감옥에서 계속 갇히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됩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긴 시간, 혼자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그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고라 여행기에 섭섭이짱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아고라가 이런 모습이군요. 생각보다는 작네요.
근데 이렇게 모든 건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할 정도로
문명이 발전한 나라가 지금은 왜 이리 국력이나 경제력이
약해진건지가 궁금해지네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 역시 3주간 그리스 여행을 하며 그 질문과 씨름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모든 일에는 주기가 있다. 약한 것은 강해지고, 흥한 것은 다시 망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리스가 약한 겁니다. 기원전에는 그리스가 세계 최강이었던 적이 있었고요. 한번 잘 나간다고 계속 잘 나가라는 보장도 없고요. 한번 망했다고 계속 죽으라는 법도 없어요.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섭섭이짱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산토리니 여행기에서 다시 고민해볼게요.
아테네 1일차 여행 경비
입장권 (콤보) 40,000원
숙박 40,000원
전철 5회권 8,000원
점심 6,000원 (그리스식 케밥인 기로스를 먹었어요.)
저녁 8,000원 (샌드위치를 두 개 사서 하나는 저녁, 하나는 다음날 아침)
마트 5,000원 (생수와 과일)
합계 : 109,000원
그리스 여행기,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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