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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여행예찬/짠돌이 세계여행

누구나 철학자가 되는 곳, 소크라테스의 감옥

by 김민식pd 2022. 8. 10.

아테네 1일차 여행기, 이어집니다.

제가 묵은 코스모스 호텔. 전철역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숙소인데요. 공항을 갈 때도, 페리를 타러 피레우스 항을 갈 때도 전철을 타고 가니까, 아테네 배낭여행자라면 전철역에서 가까운 숙소를 잡는 게 좋아요.

깨끗한 트윈룸이 1박에 4만원. 저는 편하게 잘 지냈어요. 한여름의 그리스, 낮에는 더워서 돌아다니기 쉽지 않아요. 교통이 편한 곳에 숙소를 잡고 오전 잠시 다닌 후, 낮에는 쉬고, 오후에 선선해지면 다시 나가는 편이 좋지요.

블로그 댓글에서 보리랑님이 질문을 주셨어요.

"영어 실력을 유지하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솔직히 고백하면, 저의 영어 실력은 이제 많이 줄었어요. 20대에 동시통역사로 활동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초라한 지경입니다. 24년간 피디로 일하며 주로 쓴 영어문장은 두 개, "스탠 바이!" "오케이, 컷."이었어요. 쓰지 않으면 영어 실력은 줄어듭니다. 안 쓰는 영어를 유지하는 비결은 없는 것 같아요. 자꾸 써줘야 유지가 되지요. 그래도 여행하는데 지장은 없습니다. 영어로 돈을 벌기가 힘들지, 돈 쓰면서 하는 영어는 쉬워요. 상대가 잘 알아듣고요. 상대방도 내가 알아듣기 쉽게 설명하거든요.

여행할 때 저는 넷플릭스로 미국 스탠드업 코미디를 저장해 두고 틈날 때마다 영어 회화 청취 공부 삼아 봅니다. 마치 수다쟁이 친구가 옆에서 계속 영어로 떠드는 기분이에요. 조금씩 감각이 되살아납니다. 이날 저는 낮잠 자고 일어나 침대에서 뒹굴거리며 '트레버 노아의 다크 공포증'이라는 스탠드업 코미디 쇼를 봤어요. 영어 자막을 띄워놓고 보면, 청취 공부에 도움이 됩니다. 이건 재미삼아 하는 공부법입니다. 초보 회화 공부로는 적절하지 않아요.

"여행은 무지를 치료하는 해독제다."라는 트레버 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직접 겪어보지 않으면, 가서 직접 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일도 있거든요. 

푹 쉬다 오후 5시가 넘어 나왔어요. 괜찮아요. 여기는 오후 8시가 넘어도 훤합니다.

오후 5시 45분. 소크라테스의 감옥. 가보면 좀 초라합니다. 진짜 여기에 소크라테스가 갇히고, 여기서 죽음을 맞이했을까요? 그건 알 수 없죠. 하지만 서양철학, 특히 고대 그리스철학을 공부한 사람에게 이곳은 성지와 다를 바 없어요.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유명하죠. 자신을 탈옥시키기 위해 모인 친구들의 설득을 뿌리치고 스스로 독배를 들었다고요. 심지어 그는 자신을 탈옥시키려는 친구들과 대화를 통해 그들을 설득합니다. 왜 자신이 죽음을 선택하는지. 보다못해 친구 크리톤이 그럽니다.

“여보게, 간수가 오늘 만큼은 말을 많이 하지 말라는군. 말을 많이 하면 독약이 잘 듣지 않는다는 거야. 그럼 독배를 두 잔, 세 잔을 마셔야 할 수도 있다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든 후, 감방 안을 걷습니다. 몸을 움직이면 혈액 순환이 잘 되어 온몸에 독기운이 잘 퍼지겠지요. 독기운이 오르는 걸 보고 자리에 누워 마지막 순간에 그럽니다. “여보게, 크리톤.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졌네. 자네가 대신 갚아주게.”
지난 포스팅에서 소개한 것처럼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의 신입니다. 아픈 사람들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치유를 빌었고, 약을 먹고 병이 나으면 감사의 표시로 닭 한 마리를 신전에 바쳤습니다. 독약의 효능이 제대로 발휘되었으니 그 역시 의학의 신에게 빚을 진 거죠. 자신의 죽음에 대해 이렇게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사람, 도대체 소크라테스는 어떤 사람이었을까요?

<그리스 문명 기행>에서 김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 몸에서 영혼이 분리되는 사건이라 믿었다. 그것은 영혼의 해방이다. 반면 이승에서의 삶이란 육체라는 감옥에 갇힌 영혼의 수감 생활을 뜻한다. 쇠창살로 막힌 감옥에서 소크라테스가 탈옥한들, 영혼은 여전히 육체에 갇힌 상태니 감옥 바깥이라 해도 여전히 감옥인 셈이다. 하지만 독배를 마시고 죽는다면 영혼은 몸을 벗어나서 진정한 탈옥, 영원한 해방과 자유를 누리게 된다. 그것을 왜 지금 와서 마다하랴. 사실 소크라테스가 철학을 한 이유도 죽음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철학이란 진리를 추구하는 것인데, 육체의 욕망과 감각은 언제나 인식의 혼란만 초래하며 영혼이 진리에 이르는 것을 방해한다. 육체적 간섭을 최대한 배제하고 영혼을 가능한 한 가장 맑게 유지해야만 진리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육체로부터 영혼을 분리하는 훈련, 그것이 철학이다. 따라서 철학은 죽음과 아주 비슷하다. 진정한 철학은 죽음의 연습인 셈이다. 그러니 죽음으로써 철학이 완성되려는 순간, 왜 탈옥함으로써 육체의 감옥에서 계속 갇히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다보면 누구나 철학자가 됩니다. 내가 그런 상황이라면 나는 어떤 선택을 내렸을까? 긴 시간, 혼자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봤어요. 나는 어떤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그런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나는 앞으로 하루하루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아고라 여행기에 섭섭이짱님이 댓글을 달아주셨어요.

'아고라가 이런 모습이군요. 생각보다는 작네요. 
근데 이렇게 모든 건 그리스에서 시작했다 할 정도로 
문명이 발전한 나라가 지금은 왜 이리 국력이나 경제력이
약해진건지가 궁금해지네요.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건지?'

정말 어려운 질문입니다. 저 역시 3주간 그리스 여행을 하며 그 질문과 씨름했어요. 제가 내린 결론은 이거예요. '모든 일에는 주기가 있다. 약한 것은 강해지고, 흥한 것은 다시 망한다.' 지금 우리가 보는 그리스가 약한 겁니다. 기원전에는 그리스가 세계 최강이었던 적이 있었고요. 한번 잘 나간다고 계속 잘 나가라는 보장도 없고요. 한번 망했다고 계속 죽으라는 법도 없어요. 기나긴 시간의 흐름에서 보면 모든 것은 순환합니다. 섭섭이짱님의 질문에 대한 답은 산토리니 여행기에서 다시 고민해볼게요.

 

아테네 1일차 여행 경비

입장권 (콤보) 40,000원

숙박 40,000원

전철 5회권 8,000원

점심 6,000원 (그리스식 케밥인 기로스를 먹었어요.)

저녁 8,000원 (샌드위치를 두 개 사서 하나는 저녁, 하나는 다음날 아침)

마트 5,000원 (생수와 과일)

 

합계 : 109,000원

그리스 여행기, 다음편에 이어집니다.

댓글8

  • 섭섭이짱 2022.08.10 06:41 신고

    깔리메라

    와우~~ 4만원 숙소..일일경비 10만원..
    역시 김민식 작가님은 가성비 여행의
    최고중에 최고👍👍👍

    돈 쓰면서 하는 영어는 쉽다는말 공감백배입니다.
    그냥 아무 단어하나만 말해도 그렇게 찰떡같이 알아듣고
    바로 대응하는지...돈의 힘이란 ㅋㅋㅋ
    그래도 가끔 무시당하면 영어 유창하게 하기위해
    영어공부 다시하자라는 다짐을 하게 되는데
    그 산을 넘기가 쉽지는 않네요.

    앗...제 댓글 보셨군요 ^^
    요즘 역사에 관심이 많아지다보니
    한 나라의 흥망성쇠가 궁금해지더라고요.
    그리스는 흥망한 이유가...
    반대로 한국은 전쟁이 일어났음에도
    어떻게 이렇게 빨리 경제 강국이 되었는지 그 이유가...
    이런 궁금증이 생겨 이거저것 책도 보고
    유튜브도 보고 SNS 글들도 보는데
    다양한 관점들이 있긴 하더라고요.

    앞으로 제 궁금증에 어떤 얘기를 풀어주실지 궁금하네요.


    오늘도 걸어서 그리스속으로
    김민식 가이드님과 여행 잘하고 갑니다.

    에프까리스또

    s ) 매주 수요일 아침 7시는
    좋은 삶, 좋은 책 굿라이프 유튜브 채널
    꼬꼬독에서 꼬꼬독 🐓🐓📚 꼬꼬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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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순이 2022.08.10 10:00

    소크라테스의 철학으로 진지하다가
    갑자기 아테네 1일차 여행경비 보고 빵 터졌습니당~
    경비가 아주 날씬해서요ㅎㅎㅎ
    답글

  • 그냥웃쟈 2022.08.10 11:37 신고

    포스팅 잘 보고갑니다. 즐거운 하루되세요
    답글

  • 관계도대왕 2022.08.10 15:48 신고

    영어를 잘한다고 말을 잘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갑자기 예전에 영어회화 학원 다녔던 시절이 생각나네요.
    선생님은 미국인 원어민 선생님이셨고, 학생들은 다양한 연령과 성별이 있었어요.
    학생중에 40대는 넘어보이는 누님이 영국을 다녀오셨는지 유창한 영국식 발음으로 스피킹을 잘하시더라구요. 그런데 얘기를 듣다보니 영어는 잘하시는데 듣기보다는 말을 많이하시고, 내용들이 불평과 부정적인 내용들이어서 학생인 제가 보기에도 '외국인 선생님께서 저 사람과 대화하기 피곤하시겠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무엇이 중요한가... 영어를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공용어 바디랭귀지가 있으므로 대화를 함께 즐겁게 이어나가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저는 말을 재밌게 잘 하지는 못하지만, 말을 잘하지 못해도 사람 관계에서는 진심이면 통하는 것 같아요.

    한창 오징어게임이 유행 할 때 제 친구에게 그랬어요.
    '야, 요즘 니 게임 유행하더라 봤어?' (네 얼굴 오징어)
    친구: 어, 다 봤어

    언어는 재밌습니다. 요즘은 우영우라는 드라마를 보는데 재밌습니다. 제 친구 얼굴만큼요.

    작가님도, 매일매일 작가님 글 보러 오시는 분들도 건강하시고 행복하시면 좋겠습니다~기러기, 토마토, 우영우, 역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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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명 2022.08.10 18:31

    비밀댓글입니다
    답글

  • 일등선수 2022.08.10 21:15 신고

    매일 아침 써봤니? 오늘 다 읽었네요~ 블로그 하는 사람으로써 글감이 항상 고민인데 작가님 책 보다가 끝부분 가서야 글 쓸 생각을 했어요~ 네이버블로그 하는데 작가님 책보며 요기도 만들었네요^^ 읽으면서 참 많은 생각을 했는데 다 날려버린 것이 아쉽습니다~ 뭐 하나라도 썼음 된거라며 위로해봅니다^^
    아테네라....혼자만의 여행이 간절한 지금, 언젠가 그럴 날이 올거라 기대해 봅니다^^
    답글

  • 아리아리짱 2022.08.12 19:00 신고

    김민식 작가님 아리아리!

    작가님의 발길을 쫓아 아테네를 누벼보고 싶어집니다. ^^
    답글

  • 꿈트리숲 2022.08.19 22:33 신고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었을때
    이게 다 읽은 건지 그렇다고 안 읽은 것도
    아닌 것이 답답하고 찜찜하고 뭐 그런게
    한동안 갔었어요.
    그냥 그 시대의 소크라테스라는 사람을
    이해해보자 싶었는데, 김헌 선생님의 말씀을
    읽으니 안개가 좀 걷히는 기분이 듭니다.
    김헌 선생님은 강의도 참 재밌게 하셔서 쓰신
    책들도 꼭 봐야겠다 생각했는데, 작가님께서
    소개해주시니 더더 확신이 드네요.
    줍줍하는 그리스 여행기! 역사도 철학도 지리도
    스펀지처럼 흡수하는 중입니다^^
    답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