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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우리는 왜 불평등에 민감한가

by 김민식pd 2022. 6. 15.

우리는 오래도록 쌀 농사를 지어왔습니다. 쌀 농사는 재난에 취약합니다. 물을 채워놓은 논은 가뭄이 오면, 쩍쩍 갈라져서 벼가 말라 죽어요. 가뭄은 재앙으로 바뀝니다. 벼농사의 성패는 짧은 시간 하늘에서 쏟아지는 집중호우를 어디엔가 가둬두는 인간의 능력에 달려 있어요. 통제에 성공하면 축복이요, 실패하면 재앙입니다. 비가 쏟아지는 짧은 시간 동안 대규모 노동을 동원해야 했기에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협업을 잘합니다. 그런데 협업은 창의적인 활동과는 다른 과정입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협업이 효율적으로 이루어집니다. 혼자 '아니, 그런데 꼭 물을 그 논으로 대어야 하나?'하고 물으면 협업은 망가지죠. 여기서 한국 사회의 특징인 위계가 발생한다고 말하는 책이 있어요.

<쌀 재난 국가> (이철승 / 문학과 지성사)


'한국인에게 이 위계란 일상 자체다. 한국인만큼 협업을 잘하는 종족도 드물지만, 한국인만큼 위계를 따지는 종족도 드물다. 그 위계의 구조는 엄격할뿐더러 세밀하고 촘촘하다. 인간관계마다,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이 위계의 구조는 깊이 드리워져 있고, 우리의 아이들은 이 위계에 적응하고 순응하는 법부터 배운다. (...)

우리는 왜 이 위계 구조를 그토록 오래 강고히 지속시켜왔고, 얼마나 더 오래 이 위계 구조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가? 우리는 왜 그토록 ‘평등과 정의와 형평’을 갈망하면서, 동시에 위계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가? 왜 평등과 정의를 외치는 사람이 뒤로는 학벌과 직업, 연공서열 위계에 집착하는가?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이 책이 모든 질문에 다 답하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건드릴 것이다, 때로는 다소 도발적으로.'

(23쪽)

오늘의 질문 : 밀농사와 쌀농사의 차이점은?

바로 협업의 유무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라는 그림을 봐도 알 수 있듯, 밀의 종자를 파종하는 건, 그냥 걸어다니며 씨를 흩뿌리면 됩니다. 하지만 벼농사는 다르지요. 모내기를 하고, 일열로 줄을 지어 촘촘하게 모종을 심습니다. 쌀과 밀의 차이는 수확량에서 드러납니다. 쌀은 같은 면적에 재배했을 때, 쌀은 밀의 3배 정도 수확량을 냅니다. 다만 생산성이 높은 대신, 위험도가 큽니다. 밀은 그냥 밭에서 쑥쑥 자라지만, 쌀은 논에 물대기를 꾸준히 해줘야 해요. 여럿이 함께 일을 하니, 작업에 위계 질서가 생깁니다.

벼농사 지역과 밀농사 지역의 사람들은 행복의 정도에 차이가 있습니다. 고소득자의 경우, 지역별로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저소득자의 경우, 벼농사 지역의 주민들은 소득이 낮을수록 행복도가 급속히 저하되어 밀농사 지역의 동일 집단에 비해 훨씬 더 불행하다고 느낍니다. 이 차이는 어디서 올까요?

바로 이웃과의 비교와 질시에서 옵니다. 벼농사는 공동노동 조직을 통해 서로 긴밀하게 엮여 있지만 소유는 따로 하는 공동생산 - 개별 소유 시스템이에요. 이런 시스템 안에서 개인들은 서로의 수확량을, 서로의 성적을, 서로의 소득을, 서로의 직업적 성공을 수시로, 1년 열두달, 인생 전체에 걸쳐 비교하고 평가합니다. 질시는 이러한 비교에서 싹트지요. 

'결론적으로, 벼농사 지역 정주민의 행복은 관계로부터 온다. 나와 내 자식이, 내 가족의 수확량과 소득과 지위가 이웃보다 더 많고, 더 높고, 더 우월해야 한다. 내 행복의 근원은, 나라는 독립된 개인의 내면의 충만감이 아니다. 내가 남보다 더 잘났다는 것을 남의 눈으로 남의 입으로 확인받을 때, 동아시아 벼농사 지역의 정주민은 더욱 행복해(뿌듯해)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관계적 행복' 혹은 '관계적 불행'이라 명명한다. 행복의 근거가 타인과의 비교 우위에 터해 있는 것이다.'

(136쪽)

북한을 탈출해 한국 사회로 찾아온 탈북민 중 다시 북한 사회로 돌아가는 사람이 있답니다. 자유를 찾아왔는데, 왜 다시 속박을 찾아가는 걸까? 절대적 가난보다 더 힘든 건 상대적 빈곤이지요. 북에서 살 때는 모두가 가난했는데, 남쪽으로 오니 자기가 제일 가난한 겁니다. 그 상대적 평가가 사람을 힘들게 합니다.

21세기 들어 우울증이 심해지니 정신과 의사나 심리상담사를 찾는 이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관계로부터 탈출하라. 행복은 당신의 내면에 있다"라고 말하지요. 밀농사 지역 (서구)의 심리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인데요. 동아시아 벼농사 정주민에게는 잘 통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일상과 내면을 훤히 투사함으로써 서로를 관계에 속박시키는, 그래서 행복해지고 불행해지는 그런 종족이니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처방은, 관계로부터의 탈출이 아니라 관계의 대체 혹은 재구축입니다. 

21세기, 우리에게 닥치 가장 큰 재난은 코로나입니다. 국가는 재난을 맞아 잘 대처했을까요? 보건상의 위기는 잘 대처했지만, 경제적 여파까지 관리하기는 쉽지 않았어요. 전세계적으로 자산의 폭등이 일어나고요.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지요. 부동산 불평등의 심화가 많은 사람들을 힘들게 하고 있어요. 

<쌀 재난 국가>의 표지에서 저자는 질문을 던져요. 

'한국인은 어떻게 불평등해졌는가'

우리는 평등하고 공정해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이랍니다. 

더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은 다음 글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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