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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연공제를 어떻게 혁파할까

by 김민식pd 2022. 6. 22.

<쌀 재난 국가> 두번째 리뷰입니다. 지난번 글에서 이어집니다. 전편에 이어서 읽는 편이 좋습니다.

https://free2world.tistory.com/2805

 

쌀농사를 짓는 이들은 서로 간섭하고 싫은 소리를 해야 서로가 사는, 협업과 조율 시스템을 만들어왔어요. 우리는 오랜 세월 동안 이 협업 시스템을 발전시켜왔고, 근대화 과정에서 이 시스템을 공장으로, 사무실로 이식시켰습니다.

'부장님이 사사건건 일과 삶에 간섭하는 것에 숨이 막히는가. 집 안에서뿐 아니라 직장에서도 ‘간섭 권력’이 작동하는 곳이 동아시아 사회다. 추석에 집안 어른들로부터 듣는 싫은 소리에 넌덜머리가 나는가. 추석이란 무엇이냐고? 바로 씨족사회의 간섭 권력의 위계가 당신의 일상을 적나라하게 집안 전체에 드러내고 평가하는 자리다. 동아시아는 개인주의자가 남 신경 안 쓰고 하고 싶은 일 하며 자유롭게 살기에 이상적인 곳이 아니다. 서로가 촘촘하게 엮여 타인의 생각과 행동을 지켜보고 감시하며 베끼고 잔소리하고 보폭을 맞춰가면서 서로 엇비슷해져가는 사회인 것이다.'


(173쪽)

2019년에 저는 저자의 전작을 읽고 신문 칼럼에 이렇게 썼어요. 

'<불평등의 세대>를 쓴 이철승 저자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무지개 리더십'을 도입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세대와 성별의 리더들로 구성된 '무지개 리더십'으로 더 젊은, 더 새로운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조직과 사회에 불어넣어야 한다고. 젊은이들과 여성을 조직의 최상층으로 끌어올리면, 경직된 권위주의 문화와 386세대의 장기 집권으로 인한 수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단다.


2020년 새해에는 50대도 워라밸을 챙겼으면 좋겠다. 야근이나 회식을 권하는 행동은 이제 삼가자. 젊은 사람들이 결혼, 출산, 육아를 꺼리는 바람에 출생률이 낮다고 걱정을 많이 하는데, 출생률 걱정하지 말고, 있는 사람 나라 밖으로 쫓아내지나 말자. 386세대가 2020년 새해 결심으로 취미 생활이나 어학 공부에 매진하면 좋겠다. 오랫동안 누려온 리더십은 이제 젊은 세대와 조금 나눠도 좋을 것 같다. 50대가 잘 놀아야, 나라가 산다.'

이철승 저자는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세대’라는 키워드를 통해 한국 사회의 위계 구조가 어떻게 세대와 맞물리며 불평등을 야기해왔는지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흥미롭게 논설합니다. 이번 책은 ‘쌀’ ‘재난’ ‘국가’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한국 사회의 불평등 구조와 경쟁/비교의 문화는 어디서 왔고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보다 심도 깊게 분석하는데요. 

청년 실업과 비정규직 차별, 학벌주의, 연공서열과 여성 배제의 구조, 부동산 문제 등 현대 한국 사회에 심각한 분열과 구조적 위기를 일으키는 많은 문제들이 벼농사 체제의 유산들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음을 책에서 설명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문제의 원인과 결과로 연공제를 지목합니다.

'오늘날 한국의 세대 내 불평등과 세대 간 불평등은 모두 이 연공제에 응축되어 있다. 연공제로 인해 세대 간, 연령 간 불평등이 만들어지고, 이것을 향유할 수 있는 정규직과 그렇지 못한 비정규직 사이의 임금격차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정규직화를 위한 핵심 요구 사항은 연공제의 적용이다. 젊은 청년들은 연공제 혜택으로 안정적인 임금상승을 60세 혹은 65세까지 누릴 수 있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에 20대를 소비한다. 이쯤 되면 연공제 공화국이라 부를 만하다.'


(317쪽)

연공제는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위력을 발휘했어요. 국가경제가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고, 경기 침체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는 2020년에, 상층 임금 소득자들은 승승장구했어요. 코로나 직격탄이 세계경제를 침체의 늪에 빠뜨린 2/4분기에 5분위 기준 최하층 근로소득이 18퍼센트 떨어질 동안, 최상층은 겨우 4퍼센트밖에는 줄지 않았습니다. 경제가, 기업 조직이 위기에 처하건 말건, 정규직의 임금은 끝없이 자동적으로 오르도록 설계된 연공제 탓이라 저자는 설명합니다.

'중하층의 사회안전망 구축을 도외시한 채 연공제를 토대로 노동시장 상층에 성장의 혜택을 집중시켜온 한국형 위계 구조하에서 이 경쟁은 더욱 치열하게 진행될 것이고, 이 구조와 제도를 따라 이미 확대된 불평등은 다음 세대에도 재생산될 것이다. 승자와 패자 사이의 보상 구조가 너무도 불평등한 이 시스템은, 한국 자본주의 모델의 공정성과 효율성 모두에 깊은 회의를 자아낼 것이다.'

(330쪽)

수천년 동안 이 땅에서 벼농사를 짓고 사느라 우리는 협업을 중시했고요. 노동집약적인 농사를 짓느라 위계 질서와 연공제가 공고해졌습니다. 세계화의 시대, 일사분란한 협업보다는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는 게 중요하고요. 나이와 연공서열로 다양한 의견의 발산을 막는 건 비효율적인 일이 되어버렸어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해, 벼농사 시대가 남겨준 유산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계속 고민할 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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