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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마블팬을 위한 가이드북

by 김민식pd 2022. 5. 9.

어려서는 DC 코믹스의 영화를 많이 봤어요. 슈퍼맨이나 배트맨 같은. 언제부턴가 마블 영화도 좋아요. 슈퍼맨은 엄청난 힘을 가진 외계인이고, 원더우먼은 신의 가호를 받는 아마존의 공주에, 배트맨은 막강한 부를 지닌 재벌 2세죠. 마블의 히어로들은 저마다 아픈 사연이 있어요. 스파이더맨은 피자를 배달하며 학비를 버는 고학생이고, 헐크는 감마선 누출 사고로 녹색 괴물이 됐죠. 데어데빌은 시각 장애를 가진 히어로고요. 선천적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지닌 DC의 영웅들과는 달리 마블의 영웅들은 불의의 사고로 초자연적 능력을 갖게 된 인간들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히어로가 ‘되어버린’ 인물들인 거죠. 그러다보니 인간적인 고뇌를 많이 하고요. 커다란 힘에 따르는 책임 때문에 고뇌하는 모습이 제게는 참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마블 팬을 위한 인문학적 가이드북이 있어요.

<마블로지> (김세리 / 하이픈)

마블의 이야기를 신화적으로 해석했어요. 마블 영화의 세계관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책이고요. 마블팬이라면 재미나게 읽을 수 있어요.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영웅의 유형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 번째는 “자기 스스로 여행을 택한” 영웅들이죠. 이들은 자신의 모험에 있어 뚜렷한 목표가 있어요. 가족이나 애인을 구한다든지, 괴물을 퇴치한다든지. 반면 두 번째 유형의 영웅들은 이른바 “던져지는 여행”을 하는 자들이죠. 이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생사의 갈림길을 경험하며, 제복을 입어야 하고, 기존의 자신과는 다른 인간이 됩니다.

'마블의 히어로들은 캠벨이 언급한 두 번째 유형의 영웅들에 속할 것이다. 스파이더맨은 우연히 방사능에 오염된 거미에 물렸고, 헐크는 우연히 감마선에 노출되었으며, 엑스맨의 선천적인 능력은 초자연적 힘이 아닌 돌연변이성 능력이기에 주로 사춘기를 기점으로 드러난다. 아이언맨은 신체적 약점을 지닌 영웅이며, 캡틴 아메리카 역시 슈퍼 혈청을 주입하는 인위적인 방식으로 본디 허약했던 육체가 인간 병기화된 경우이다. 닥터 스트레인지 역시 우연한 사고를 계기로 초자연적 마법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심지어 데어데블은 방사능 유해 물질로 인해 시력을 상실했지만, 이 사고로 인해 시각을 제외한 다른 감각들이 극도로 발달한 시각 장애인 히어로이다. 이들은 모두 예기치 않게 히어로의 임무를 맡게 되고, 그에 따른 난관을 극복해 나간다.'

우리에게 익숙한 마블의 주인공들을 신화와 철학적 세계관을 가져와 설명하는 흥미로운 책인데요. 마블 영화로 친숙한 건, 어벤져스 이전에 엑스맨 시리즈가 있었죠. 엑스맨의 창시자는 판타스틱 포, 스파이더맨, 헐크, 토르, 아이언맨 등의 영웅들을 만든 스탠 리와 잭 커비입니다. 스탠 리는 마블 영화에 매번 카메오로 나오는 콧수염 할아버지입니다.

'1963년 스탠 리가 이 시리즈를 처음 기획했을 때, 그는 이 세상에서 다르다고 배척받는 사람들을 위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뮤턴트들은 당시 인종이나 성적 취향의 차이, 혹은 신체적, 정신적 장애로 말미암아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들, 예를 들어 유태인, 흑인, 성적 소수자 등을 상징한다. 스탠 리의 아버지는 루마니아 출신의 유태인이었고, 이민자의 신분으로 미국에 정착해 고된 삶을 살았다. 가난한 이민자 부모 밑에서 성장한 스탠 리의 작품에는 소외된 계층에 대한 연민이 드러난다. 엑스맨의 출현 역시 이러한 그의 개인사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엑스맨> 시리즈를 볼 때마다, 울버린은 왜 저렇게 삐딱할까? 궁금했는데요. 만화 원작에 따르면 울버린은 19세기 후반 캐나다의 대지주였던 아버지 론 하울렛과 어머니 엘리자베스와의 사이에서 제임스 하울렛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어요. 집의 정원사였던 토마스 로건이 하울렛의 아내 엘리자베스와 내연 관계였고요. 정원사 로건이 치정에 얽혀 존 하울렛을 죽이는데요. 아들 제임스는 그 순간 분노를 느끼고 난생 처음 손에서 발톱이 솟아나는 신체적 변화를 경험하지요.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에 정원사 로건을 살해하고 말죠. 이후 야생으로 잠적해 버린 울버린. 나이 들어갈수록 자신의 외모가 아버지 하울렛보다는 정원사 로건을 닮아간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자신의 친부가 어머니와 내연 관계에 있던 토머스 로건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로건’으로 개명하죠.

이제야 울버린의 캐릭터가 이해가 되네요. 왜 그가 그토록 우울하고 분노에 찬 모습으로 살았는지... <마블로지>에서 울버린의 탄생의 비밀을 알고 나니, 그의 최후를 그린 영화 <로건>이 새롭게 떠올랐어요. 영화 <로건>에서 울버린은 늙어 치매가 온 자비에 박사를 살뜰하게 보살피는데요. 어쩜 어려서 자신의 친부를 살해한 트라우마가 그런 헌신으로 이끈 게 아닐까, 싶네요.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에서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로부터 우리가 앞서 언급했던 슈퍼 히어로들의 윤리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영화에서 타노스가 강력한 힘들을 모으는 과정에 주목해 보자. 타노스는 인피니티 스톤을 얻기 위해 자신이 사랑했던 수양딸을 희생시킨다. 그리고 나머지 스톤들 역시 다른 생명체를 파괴하거나 죽이는 방식으로 손에 넣는다. 그 과정을 주시해 볼 때, 타노스가 우주 최강의 권력에 눈이 멀어 자행하는 처사는 결코 우주의 미래를 걱정하는 자의 태도는 아니다.

  반면 히어로들은 가족, 동료, 그들이 지켜야만 하는 생명체 전체를 위해 자신이 가진 인피니티 스톤을 내놓는다. 이들은 타노스와 달리 자신이 지니고 있던 힘을 포기하며 타인을 위해 희생한다. 타노스가 전 우주의 개체 수와 균형을 말할 때, 캡틴 아메리카는 자신을 파괴시켜 달라는 비전에게 “모든 생명은 소중하다”고 말한다. 이것은 칸트의 언명처럼 오직 인간이 목적인 자들의 생각과 신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이 히어로와 빌런 간의 가장 큰 차이일 것이다. 타노스는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인간의 생명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삼는다. 인간은 단지 개체 수로 환원될 수 없는 존재이며, 그들 하나하나가 곧 하나의 우주이자 하나의 긴 서사임에도 불구하고.'

가벼운 스낵 컬처로 마블 영화를 즐기던 제가 이 책 덕분에 마블 세계관의 깊이와 철학적 사유를 함께 즐길 수 있었어요. 덕분에 덕질의 즐거움은 더욱 깊어갑니다. 오늘도 덕질의 기쁨이 함께 하는 하루가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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