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포대 벚꽃 여행

2020년 연말에 구조조정으로 명퇴를 하면서 괴로움이 컸습니다. 능력이 부족해 더이상 회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서글픔도 컸고요. 부장이나 국장같은 관리직을 단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하고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는 것도 아쉬웠어요. 40대 후반을 유배지에서 떠돌다 겨우 복귀했는데, 변변히 일도 못하고 그만두는 제 처지가 서글펐죠. 세상에 대한 원망은 오래 묵히면 자책과 분노로 이어지기 쉽습니다. 내가 하지 못한 무언가를 후회하기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었어요.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도 좋고, <매일 아침 써봤니?>도 좋지만, 제가 개인적으로 애정하는 졸저는 <내 모든 습관은 여행에서 만들어졌다>입니다. 삶이 힘들 때마다 나를 구원한 건 여행이었거든요. 퇴직 후, 힘들 때 무엇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다 제주도나 동해안으로 여행을 떠났어요. 언젠가 그 기록을 모아 <퇴직자의 여행법>이라는 주제로 책을 내고 싶습니다. 벚꽃소식이 들려오면 길을 떠납니다. 여행작가로 인생 2막을 꿈꾸는 제게 이것은 일이자 공부니까요.

2021년 3월 30일에 다녀온 강릉 벚꽃 여행기를 올립니다.


아침 8시 정각, 서울역에서 강릉가는 KTX를 탑니다. (편도 27600원)

오전 10시, 강릉역에 도착하고요. 역에서 나와 오죽헌을 향해 걸어갑니다.

강릉역에서 걸어서 30분 거리에 오죽헌이 있고요. 이제 경포호로 향합니다. 경포호 주변은 강릉의 벚꽃 명소거든요.

평일 낮 풍경입니다. 서울 여의도와 비교해 무척 한적한 벚꽃 놀이를 즐길 수 있어요.

경포교차로에서 바다를 향해 걷습니다.

'꽃길만 걷자' 은퇴 후, 저의 다짐입니다. ^^

몇 해 전, 강원영동 MBC에 일하러 왔다가 "선배님, 이 근처가 봄이면 벚꽃이 만개합니다. 꽃필 때 꼭 한번 와보세요."라는 얘기를 듣고 버킷리스트 메모에 올려뒀어요. <퇴사 후 하고 싶은 일> 메모가 있거든요. 평생 모은 꿈의 목록을 하나 둘 지워갑니다. 

경포호가 끝나는 곳에서 바다를 만납니다.

오전 11시 50분. 경포해변에서 잠시 쉬어갑니다. 

솔숲이 우거진 강릉 바우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걷습니다. 

오후 1시, 사천진 해수욕장 도착.
여기서부터는 강릉 바우길 12구간입니다.

사천진 해수욕장 - 연곡 해수욕장 - 영진해변 - 주문진 해수욕장 

연곡해수욕장 솔향기캠프장을 지나 오후 2시 30분, 영진 해변에 도착했어요. 

해변을 따라 걷는데 손표지판이 걸려 있어 보니...

맞아요, 인생 뭐 있나요. 먹고 싶은 거 먹고, 가고 싶은 데 가는 거, 그게 인생이죠.

오후 3시, 오늘의 숙소, 주문진 씨베이 호텔에 도착했어요. 강릉 숙소를 검색하다 1박 35000원에 나온 호텔이 있더군요. 할인율이 80퍼센트가 넘기에 혹 해서 보니 위치가 주문진항, 강릉에서 좀 멀어요. 어떡하지? 

이렇게 좋은 바다 전망 4성급 호텔이 1박에 35,000원!

오늘의 질문 : 여행 코스는 어떻게 짜는가?

평소엔 일정에 맞춰 숙소를 잡지만, 은퇴하고 시간이 많은 저는 숙소에 맞춰 일정을 짭니다. 싼 숙소를 찾는 게 우선이고요. 그렇게 찾은 숙소를 기점으로 도보 여행 코스를 짭니다. 강릉역에서 주문진 호텔까지 걸어서 5시간. 그 중간에 경포 벚꽃길도 걷고, 동해안 해파랑길도 걸을 수 있어요. 이동거리가 길어도 숙소가 저렴하다면 일단 예약하고 운동삼아 걷는 거죠. 노후에는 삶의 모든 순간이 다 여행이 된다고 믿습니다. 

숙소가 마음에 들어 5월에 동해안에서 서핑 배울 때 다시 오려고 검색하니 그때는 79000원이네요. 야놀자 특가를 운좋게 잡았던 거죠. 

강릉 시내에선 먼 편이라 이동은 불편할지 몰라도, 주문진항 시장이 바로 옆이라 식당이나 가게가 많아 물가는 저렴한 편이에요. 해파랑길 걸으시는 분들께 추천합니다. 모쪼록 평일 특가 상품을 득템하시길~ 

하루 경비

서울 전철 2,000원

KTX 27,000원

점심 3000원

숙박 35,000원

총경비 67,000원

(간헐적 단식을 하느라 저녁은 걸렀습니당~ 적게 먹고, 많이 걷는 것, 저의 요즘 건강관리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