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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왜 미국에선 여자 노인이 차박 생활을 할까?

by 김민식pd 2022. 2. 11.

(지난 수요일에 올린 글에서 이어집니다.)

https://free2world.tistory.com/2731

 

집이란 무엇인가?

오늘의 질문 : 집이란 무엇인가? 지난번 올린 글에서 이어지는 고민입니다. 예전에는 임금의 시대였어요. 화이트칼라냐, 블루칼라냐, 고임금인가 저임금인가, 정규직인가, 비정규직인가라는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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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랜드> 책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노매드랜드>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오가는 독특한 구성을 하는데요. 실제 노마드들이 극중 인물로 출연합니다. 집이 없어 자동차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미국 전역을 떠돌며 일자리를 찾아다닙니다. 그들이 선호하는 일 중 하나가 아마존 택배 분류 작업이에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택배 물량이 갑자기 늘고요. 아마존에서는 임시직 노동자를 구합니다. 아마존 물류 센터는 넓은 부지가 필요하므로, 대지 비용이 싼 시골 구석에 있어요. 주위에 상주 인구가 없는 곳이라 일손을 급하게 구하기 힘든데요. 노마드들이 그 수요를 채웁니다. 물류 센터 근처에 주차장을 임대해 노마드들에게 제공하는 거죠. 그들은 차를 몰고 와, 주차장에서 생활하면서 택배 분류 작업을 해요. 시즌이 끝나면 다시 전국으로 뿔뿔이 흩어지죠.

영화를 보면 여성 노인들이 의외로 많아요. 차박 생활은 평소 캠핑을 갈망하는 남자들이 쉬울 것 같잖아요?

오늘의 질문 : 왜 미국에선 차박 생활을 하는 여자 노인이 많을까요?

2015년 미국의 인구조사에 따르면, 혼자 생활하는 노인 여성 6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이하의 생활을 하는데요. 같은 연령대 노인 남성의 두 배나 됩니다. 성별 임금 격차의 결과이기도 하고요. 어린 자녀와 연로한 부모를 돌보는 무임금 노동을 하느라, 생애임금도 적고 누적 저축액도 적은 탓이지요. 모은 돈은 남성보다 적은데 수명은 더 길기 때문에 적은 돈으로 오랜 시간을 버텨야하는데요. 그 해법을 찾아 여성 노인들은 길 위의 삶을 시작합니다.


'실비앤은 차를 도둑맞고, 손목이 부러지고 (보험 없음), 뉴멕시코에 있던 집이 팔리지 않는 등 잇따른 시련 끝에 밴에서의 삶을 시작했다. "처음 시내에 차를 대고 잠을 잘 때는 끔찍한 낙오자나 홈리스가 된 듯 느껴지죠." 실비앤이 설명했다. "하지만 그게 인간의 위대한 점이에요. 우리가 어떤 것에나 익숙해진다는 거요."'

(38쪽)

무엇이든 익숙해지는 게 인간의 위대한 점이라는 말에 숙연해집니다. 차박 생활을 하던 밥 웰스가 쓴 블로그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갑자기 조회수가 늘어납니다. 일자리를 잃고, 저축은 바닥나고,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생활비 아끼는 법'이나 '자동차나 밴에서 살기' 같은 문구를 검색하면 밥의 웹사이트가 뜬 거죠. 경제적 불행이 개인 탓이 되는 문화 속에서 밥은 그들에게 홈리스라는 오명을 지우는 대신 모험가라는 이름을 붙여줍니다. 

"한때는 정해진 대로 하면 (학교에 가면, 직장을 얻으면, 그리고 열심히 일하면) 모든 게 잘될 거라는 사회적 계약이 있었죠. 오늘날 그건 더 이상 사실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하라는 대로 모든 걸 제대로 해도 결국에는 파산하고, 혼자 남고, 홈리스가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사람들이 밴이나 다른 차량들로 이주해 들어감으로써 자신들을 낙오시킨 시스템에 대한 양심적인 문제 제기자들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자유와 모험의 삶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126쪽)

세상은 왜 이렇게 변한 걸까요? 2000년대 초반 미국은 경제 부양책으로 초저금리 정책을 펼쳤죠. 주택 융자 금리 인하로 대출을 받고 주택을 구입하는 사람들이 늘어났어요. 2004년 저금리 정책을 종료하면서 부동산 버블이 꺼지기 시작하죠. 결국 2007년 금융 기관들이 대출금 회수 불능 사태에 빠지며 은행과 은행에 투자한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합니다. 그 피해는 사정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은행에 자산을 맡기고 주택 할부금을 내던 사람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옵니다.

'미국에서만 5조 달러가량의 연금, 퇴직금, 저축이 증발했다. 사태가 진정되었을 무렵에는 미국인 약 800만 명이 일자리를, 600만 명이 집을 잃은 것으로 집계되었다. <노마드랜드>에 등장하는 노마드들 대부분은 이 시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다. 전에는 대체로 중산층으로 불렸고,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직장을 얻어 열심히 일을 하면 자신의 노후와 자식들의 미래가 편안할 거라고 믿었던 그들에게 보상을 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416쪽)  

역자 후기를 꼼꼼히 잘 쓰셨네요. 책을 읽고 바로 덮지말고, 번역가 선생님이 던지는 질문을 함께 고민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자산의 시대, 부동산 격차로 심화되는 불평등을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은 다음 책 <빚으로 지은 집>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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