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 랜드>를 읽고 생긴 궁금증이 있어요. 왜 미국에는 집 때문에 힘든 사람이 이렇게 많을까? 간단한 답은 2008년의 금융위기 탓이지요. 빚을 내어 집을 산 사람들이 경제 불황으로 집값이 하락하자, 채무 불이행 상태로 내몰리고요. 집을 압류당하고 길거리에 나앉게 된 거죠. 불황은 왜 생기는 걸까요? 사람들이 빚을 너무 많이 내기 때문에 불황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책이 있어요.
<빚으로 지은 집> (아티프 미안, 아미르 수피 지음 / 박기영 옮김 / 열린책들)
부채가 늘어나면, 가계 소비가 줄어들고요. 이는 경기 침체로 이어집니다. 주택담보 대출을 이용해 집을 살 때, 자산 가격의 하락으로 인한 손실은 채무자가 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저축해서 모은 돈 2억원에 8억원의 대출을 더해 10억원짜리 집을 샀어요. 주택 소유자의 자산 순가치는 2억원이죠. 순자산이란 총자산에서 부채를 뺀 금액이니까요. 집값이 20퍼센트 하락한다면 주택 소유자는 2억원의 손실을 입습니다. 8억원에 집을 팔면 주택 소유자는 그 돈을 모두 채권자, 즉 은행에게 지불해야 합니다. 채권자는 원금을 온전히 회수함으로써 아무런 피해도 입지 않는 반면, 주택 소유자는 전 재산을 날리는 셈이지요.
2006년부터 2009년 사이 미국 전역의 집값은 평균 30퍼센트 정도 떨어졌습니다. 집값의 하락은 순자산이 적은 가계에 가장 큰 충격을 주는데요. 레버리지 승수leverage multiplier 효과 때문입니다. 레버지지 승수는 집값이 하락할 때 레버리지에 비례해서 순자산의 손실이 커지는 것입니다.
10억 짜리 집을 8억의 대출과 2억의 순자산으로 산 주택 소유자의 주택 담보 대출 비율LTV: Loan-To-Value Ratio은 80퍼센트입니다. 집값이 20퍼센트 떨어진다면 이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은 몇 퍼센트 떨어질까요? 집값 하락 전에 순자산은 2억원입니다. 그런데 집값이 8억이 되고, 갚아야 할 대출이 여전히 8억이므로 주택 소유자의 순자산은 0이 됩니다. 변화율로 따지면 순자산은 100퍼센트 감소한 거죠. 20퍼센트의 집값 하락이 100퍼센트의 순자산 변화를 가져왔으므로 레버리지 승수는 5가 됩니다. 집값 하락폭의 5배로 순자산이 크게 변하는 것이지요.
'집값 폭락과 결합한 과도한 부채는 이미 크게 벌어져 있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격차를 더욱 크게 벌려 놓았다.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원래 가난했다. 그러나 이들은 집값의 폭락으로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것조차 모두 잃어버렸다. 이들이 진 빚이 일으킨 레버리지 승수 효과가 이들의 순자산에 직접적으로 타격을 가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빚의 근본적인 특징이다. 빚은 정확히 가장 가진 것이 없는 계층에 엄청난 손실을 입힌다. 상대적으로 부유한 계층은 보유 자산의 우선 청구권으로 손실을 적게 입었고 상대적 기준으로는 오히려 상황이 개선되었다. (...) 많은 사람들이 소득과 부의 불평등 추세를 논의해 왔지만, 정작 그들은 빚의 중요한 역할에 대해서는 간과하였다. 빚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금융 시스템은 부의 불평등을 악화시킨다.'
IMF 외환위기가 터지고 한국 경제에 암운이 드리워졌다고 하지만, 어려운 사람이 더 어려워졌고요. 부자는 그 시절에 헐값에 나온 자산을 샀다가 2000년대 경제 회복기에 오히려 더 큰 부를 일구게 되었어요. 경제 위기가 한차례 지나가면 빈부격차는 더 벌어집니다.
미국에서 2000년대 초 기술주 거품이 터졌어요. 2000년부터 2002년 사이 미국 가계들의 금융 자산은 5조 달러가량 줄었는데, 주식 가격 폭락 때문이었지요. 이 수치는 대침체기 동안 집값 하락으로 인한 자산 감소 총액과 놀라울 만큼 흡사한데요. 정작 기술주 주가의 폭락에도 불구하고 가계 지출은 같은 기간에 인한 5퍼센트 증가했대요. 즉 주식 폭락과 부동산 폭락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띈다는 거죠.
'2000년 초 기술주 거품의 붕괴는 가계 소비 지출에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았던 반면, 대침체 시기 주택 시장 거품의 붕괴는 소비 지출의 엄청난 감소로 이어졌다. 왜 그럴까? 이는 한계 소비 성향의 차이로 설명할 수 있다. 기술주를 보유한 사람들은 레버리지가 거의 없는 최상위 부자들이었다. 2001년 당시 순자산 기준 상위 20퍼센트가 미국 주식의 약 90퍼센트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 계층의 레버리지 비율은 고작 6퍼센트 정도로 매우 낮았다(즉 이들은 자산 100달러당 6달러 정도의 빚을 지고 있었다). 레버리지가 적은 고소득층은 자산에 대한 한계 소비 성향이 매우 낮은 경향이 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해 보면 기술주 거품이 터졌을 때 소비가 별 타격을 받지 않은 것은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부채 증가 없이 이루어진 주식 투자와 부채 증가를 불러온 주택 투자, 경제 침체를 불러온 건 후자였어요. 기술주 거품 붕괴와 주택 시장 거품 붕괴를 비교해 봄으로써 교훈을 얻을 수 있죠. 자산이 많은 빚으로 이루어져 있을 때 자산 가격의 하락은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것. 가계뿐 아니라 국가 경제도 마찬가지예요. 높은 레버리지와 자산 가격의 급락이 결합해서 소비 지출의 급격한 축소를 가져오기 때문에 불황으로 이어지는 거죠. 주식 시장 붕괴는 전체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지만 주택 시장 하락은 장기 침체로 이어집니다. 미국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대침체기를 겪고, 많은 이들이 길 위의 삶을 시작한 게 바로 주택 시장의 하락 때문이니까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들은 새로운 모기지 대출 방식을 제안합니다.
'책임 분담 모기지shared responsibility mortgage라 이름 붙인 새로운 대출 방식은 손실과 이익을 채권자와 채무자가 공유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즉 채무 계약에 주식 성격을 가미해서 집값이 하락했을 경우 채무 부담을 줄여 주고, 집값 상승으로 이득이 발생했을 경우 이득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또한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집값의 기준은 개인의 집값이 아니라,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지표, 예를 들어 해당 지역의 평균 시세 등으로 정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채무자의 경제 사정에 아랑곳하지 않는 융통성 없는 채무 계약의 해악도 줄이고 도덕적 해이 문제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집값이 하락할 경우 손실을 일부 부담해야 하는 채권자도 더 조심스럽게 대출을 공급하기 때문에 거품도 방지하고 대출 건전성도 높일 수 있다.'
예컨대 집값이 떨어져서 압류를 당할 상황에 놓인다면, 채무자가 100% 책임을 질 게 아니라 돈을 빌려준 은행도 일정 부분 공동 책임을 져야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경제 위기때마다 빚을 진 사람들이 더 크게 손실을 보는 구조를 바꿀 수 없다고요.
한 편의 추리소설 읽는 것 같았어요. 경기침체를 가져왔다고 의심받는 용의자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그중 진범을 가려냅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불황은 늘 있어왔지요. 중산층을 파산으로 내모는 원인은 무엇인가? 그 과정을 알아야 다음 피해를 막을 수 있지 않을까요? 책을 보면 빚을 과도하게 지고 자산을 구입하는 행위가 왜 위험한지 알 수 있어요.
오늘의 질문 : 과도한 빚은 어느 정도일까?
이건 참 어려운 질문이네요. 빚을 전혀 지지 않고 산다는 건 인플레이션의 피해에 고스란히 노출된다는 뜻이니까요. 갈수록 물가는 오르는데, 집이라도 갖고 있어야 할 것 같기도 하고요. 10년이나 20년 주기로 살펴보면 주식 시장도 부동산 시장도 하락폭이 있어요. 미국의 경우, 집값이 30% 떨어진 시기가 있어요. 집값의 하락폭이 30%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빚을 80%지고 집을 사는 건 모든 자산을 날릴 수도 있는 선택인 거죠. 집값이 떨어져도 감당할 수 있는 수준에서 빚을 내고 집을 사는 것, 그게 마음 편한 결정일 것 같은데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빚을 경계하는 책만 이어 읽었으니, 다음번에는 '빚을 내는 게 그나마 유리하다'고 일러주는 책도 읽고 소개할게요. 다음에는 인플레이션에 대해 공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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