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빚을 지는 걸 끔찍이 싫어합니다. 그 때문에 아내와 갈등도 많았습니다. 빚을 내어 집을 사자고 하는 걸 반대했다가, 그후 집값이 많이 올라... ㅠㅠ
1992년에 입사한 첫 직장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습니다. 치과를 찾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외판 업무를 했죠. 당시 회사에서는 외판사원에게 영업용 개인 차량 구매를 권했습니다. 차가 있으면 이동 효율이 높아져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고객을 만날 수 있습니다. 차를 산 영업사원에게는 차량 보조금도 지급했고요. 무거운 샘플과 팜플렛을 들고 다니는 처지라 대부분의 외판 사원이 할부로 차를 샀습니다. 저도 그랬어요. 기아에서 나온 세피아가 제 첫 차였어요.
상사가 제게 붙여준 별명이 있어요. '아메리칸 스타일'. 1990년대 저는 칼퇴근을 했거든요. 일이 없는데도 퇴근 후에 상사 눈치보며 사무실에서 버티지는 않았어요. 저녁 6시에 여의도에서 퇴근해서 저녁 7시 종로 외국어 학원 통대 입시반에 다녔죠. 회식도 빠지고 술도 안 먹고 그랬더니 상사가 엄청 구박을 하더군요. 아버지가 저를 그렇게 괴롭혀서 힘들게 도망나왔는데, 회사에 오니 그런 사람이 또 있더군요. 세상 참... 아버지는 아무리 싫어도 평생 보고 살아야하지만, 직장 상사는 사표를 쓰면 두 번 다시 안 볼 사람인데, 괴로움을 견디며 살 필요가 있나? 다음날 사직서를 냈습니다. 상사가 놀랐어요. 나름 근무 조건이 좋은 외국계 기업이라 아무리 갈궈도 제가 사표를 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나 봐요.
"김민식 씨, 차 할부금 남은 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저, 차 일시불로 샀습니다."
아, 그 순간, 진짜 통쾌했어요. '회사 그만두면, 빚은 어떻게 갚을래?' 하고 겁을 줬지만, 그게 먹히지 않은 거죠. 저는 입사 후 월급의 절반을 꼬박꼬박 저축했고요. 1년쯤 다녔을 때, 차를 샀는데요. 자동차 할부 이자와 은행 예금 이자를 비교해보니, 할부 이자가 더 비싸더군요. 금융의 생리죠. 돈을 빌릴 땐 이자가 높고, 맡길 땐 낮습니다. 그 차액으로 금융은 수익을 창출하죠. 적금을 깨고 일시불로 차를 사는 게 이득이었어요. 할부가 없으니 퇴사하고 팔기도 쉬웠고요.
오늘의 질문 : 빚이란 무엇인가?
빚은 세상과 맺는 노예계약입니다.
20대에 깨달았어요. 회사에서 영업사원에게 차량 구입 보조금을 주는 건, 빚으로 직원을 묶어두기 위해서예요. 외판일은 힘들어요. 하지만 갚아야 할 빚이 있다면 참고 다닙니다. 2017년에 아내가 집을 사자고 했을 때, 저는 회사 경영진의 핍박을 받고 있었는데요. 그런 상태에서 빚을 지면, 괴로워도 회사의 눈치를 살펴야해요. 난 그게 싫었어요. 나이 50에 집은 없었지만, 빚도 없었고요. 그렇기에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경영진 눈치보지 않고 다 했어요. 그 때문에 미움을 사기도 했지만, 괜찮아요. 공자님이 그러셨어요. 군자란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다. 좋은 사람은 좋아하고, 나쁜 놈들은 미워하는 사람이 군자다. (책 덕분에 이런 정신승리를 거둡니다. ^^)
자산을 만들기 위해 빚을 내는 건 괜찮아요. 그건 빚이 아니라 투자거든요. 빚이 있어도, 빚보다 더 큰 가치를 지닌 자산이 있다면 든든하지요. 그걸 깨닫지 못해, 아내에게 괴로움을 안겨줬어요. 그 점은 정말 미안하게 생각해요. 소비를 위해, 이를테면 차를 사기 위해 빚을 내야 한다면, 스스로에게 물어보세요. 나의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1시간에 3만원을 버는 사람이 6천만원짜리 차를 사고 싶다면, 자기 인생의 가장 소중한 2,000시간을 그 차와 맞바꾸는 셈입니다.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는 사람이라면 그 차를 사기 위해 50주, 즉 거의 1년 내내 일을 해야 하는 거죠. 그 차가 인생의 1년을 바쳐도 될 만큼 가치 있는 차라면 그것도 괜찮겠지요. 다만 오늘 내가 쓴 돈은 내일 내가 갚아야할 시간입니다.
<파이낸셜 프리덤>을 보면, 재정적 자유를 얻는 데 있어 중요한 공식 하나가 나옵니다. 바로 72의 법칙이지요.
'72의 법칙을 이용해 돈을 두 배로 늘리자
복리 7퍼센트를 적용했을 때 어떤 물건이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는지 추정하는 간단한 방법은 72를 예상 복리(7퍼센트)로 나누는 ‘72의 법칙’을 사용해서 돈이 두 배가 되려면 몇 년이 걸리는지 알아보는 것이다. 7퍼센트의 복리로 따지면 72÷7퍼센트=10.2년이므로, 그 복리를 적용하면 돈이 10년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셈이다. 따라서 새 차를 사는 대신 6천 만원을 투자한다면, 10년 후에는 1억2천만원, 20년 후에는 2억4천만원, 30년 후에는 4억 8천만원으로 늘어날 것이다. 그러니 (차를 사는 행위는) 실제로는 자기 인생의 2,000시간과 4억 원 이상의 성장 잠재력을 거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선택은 당신에게 달려 있다.'
첫 직장을 다니면서 보니, 출근을 괴로워하는 선배일수록, 지출이 크더군요. 외판 다니며 고객 응대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은 이직을 고려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런 사람일수록 퇴근 후 술을 마시며 유흥비를 많이 쓰더라고요. 제가 월급의 절반을 저축하는 걸 보고 어떤 선배가 입이 딱 벌어졌어요. "어떻게 그게 가능해? 월급은 카드 결제하는 데 쓰는 거 아냐?"
그 시절에 깨달았어요. 인생이 행복한 사람은 돈을 많이 써서 행복한 게 아니라, 돈을 쓸 필요가 없기에 행복한 거구나. 그렇다면 돈을 더 벌려고 노력할 게 아니라, 그냥 더 행복해지기 위해 노력하자. 그런 생각에 스물 여섯 살 어린 나이에 사표를 던졌고요. 평생 빚을 지지 않는 대신,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도전했어요. 돈을 벌면 우선 절반을 저축하는 습관은 평생 이어갔고요. 모인 돈이 많아지니, 오히려 돈을 더 적게 써요. 뭔가를 사는 것보다,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든 건, 내게 뭔가를 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거든요.
행복한 사람은 돈을 써서 행복한 게 아니라, 돈을 쓸 필요가 없기에 행복한 겁니다.
짠돌이 경제 수업, 다음 시간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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