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성향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김봄 작가님은 진보 운동권입니다. 예전에 MBC 노조가 힘든 싸움을 하던 시절, MBC 사옥 앞에 아침마다 오셔서 1인 시위를 하셨던 분이거든요. 이분이 에세이를 내셨는데요.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김봄 / 걷는사람)

'보수 엄마와 진보 딸의 좌충우돌 공생기'라는 설명을 보고, '음? 우리 집 이야기인가?'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경상도에서 평생 교사로 일하신 80 노인입니다. 저는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자유로운 영혼(^^)이고요. 부자간 정치 성향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 정도 됩니다. 아버지 모시고 여행 다닐 때마다 제일 곤욕이 정치적 견해 차입니다. 책을 보니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군요.

"지금 좌파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

손 여사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무덤에 철심을 예순한 개나 심어놨어. 기를 다 끊어놓으려고. 끌어내려서 감옥에 가뒀으면 됐지. 독한 좌파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냐."

"뭔 소리야, 그게."

"배웠다는 년이 그것도 몰라. 국립묘지 관리자가 나와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

"엄마! 다 가짜뉴스라니까. 그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있어. 그거 유튜브 같은 거 계속 보고 그러니까 지금 세뇌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손 여사는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들었다 말았다.

"이 빨갱이. 너도 큰일이다."

손 여사는 개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정치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교야."

그때, 손여사 왈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24쪽)

책 표지에 고양이 두 마리가 나옵니다. 코리안 쇼트헤어 아담과 페르시안 친칠라 바라. 여느 고양이처럼 호기심 많으나 소심하고, 겁이 많아요.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딸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걸 보고, 손이 너무 많이 가니 하나는 갖다버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엄마. 이 아이들은 자식이나 다름없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더니, 어머니 말씀.

"미치려면 곱게 좀 미쳐."

김봄 작가님이 프랑스로 한 달간 떠날 일이 생겨요. 어머니에게 고양이의 돌봄을 부탁하는 장면에서 정치적 견해 차로 사달이 납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 일관성이 있어요. 좌파 딸의 고양이라서 안 돌봐주는 게 아닙니다.

 

'손 여사는 다섯 자녀들의 자식들, 그러니까 손자들을 단 한 번도 봐준 적이 없다. 하나를 봐주기 시작하면 줄줄이 봐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골병이 든다는 게 손 여사의 지론이었다. 손 여사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마땅한 논리였고, 주장이었다.'

(14쪽)

그 시대 어머니들처럼 손 여사님도 고생 많이 하셨고요. 노후에는 돌봄 노동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삶을 삽니다. 책을 읽다보니 손 여사가 귀엽게 느껴집니다. 작가님은 들으면 기겁하실 거예요. '울 엄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기도 그래요, 막상 키우는 사람은 고생하지만, 멀리서 보면 마냥 귀엽거든요. 보수 집회에서 고성을 지르는 노인도 따지고 보면, 집에서는 손주 돌보며 아이들 키우느라 평생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요, 할머니 할아버지인거죠.

그래서 작가님은 과연 고양이를 엄마에게 부탁하는데 성공했을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저는 아버지랑 밥을 먹으며, 아버지가 좋아하는 그 경상도 당이, 아들의 삶을 얼마나 핍박하는지 소상하게 일러바치지요. ^^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힘들었던 저는,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고 읽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내 삶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거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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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보리랑 2020.08.31 06: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엄마나 조카들에게 잘하는 여동생은 대놓고 몇번 찍으라고 합니다. 우리는 투표장까지 딱 모시고 가고요. 자식 말대로 하겠다 하시지만 맨날 TV 보셔서 잘 모르겠습니다.

    젊어서 무거운거 많이 들고 엄청 고생하셨는데 삼형제 애들 둘씩 다 봐주시느라 늘 아프신 엄마, 참 고맙습니다. 소설 한편이 나올 삶이었습니다.

  2. 달빛마리 2020.08.31 06:5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느 날 문득 우리 부부와 양가 어르신들의 정치적 견해가 맞아 참 다행이다 싶은 날이 있었지요. 자식의 다른 종교를 그대로 인정해 주셔서 감사한 날도 있었고요. 다른 식으로 제 마음을 아프게 하시긴 하지만 말입니다 ^^; 지금은 정치도 종교도 그 경계선이 흐릿해진 것 같아요. 부모도 나랑 안 맞는데 타인이 나랑 맞기를 바라는 것은 억지겠지요.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고 나와 다름은 곧 나쁨이라고 분별짓는 마음을 없애야 할 것 같아요. 작가는 답답하지만 지켜보는 독자는 재밌을 것 같은 책 소개 감사합니다 :)

  3. 아프리칸바이올렛 2020.08.31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게도 딱 울 엄마 이야기하는 듯
    들리네요
    거기다 끊임없이 제 생각이 잘못되었다고
    모처럼 내려간 집에서 다시 빨리 돌아각ㆍ
    싶을 정도로 듣기 괴로웠지요
    정치에 대한 관심을 나한테 좀 쏟지
    하는 생각도 들었구요
    이젠 많이 아프셔서
    그마저도 그리운 시간이 되어버렸습니다

    •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8.31 19:3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맞아요. 가끔 저도 어머니가 저에게 노발대발하실때, 더 감사하기도 해요. 아직까지 힘이 남아 있으시다는 거잖아요.

      저는 싸울 수 없는 엄마보다 저에게 화를 낼 힘이 있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 감사합니다.

  4. 꿈트리숲 2020.08.31 09:2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수 엄마는 과연 고양이들을 봐줬을까?
    이게 초미의 관심사입니다 ㅎㅎ

    저도 우리 부모님이 참 보수적이다 생각했는데요.
    몇 년 전 탄핵이라는 큰 이슈가 생기고서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지하는 태도는 거두신 것
    같아요.

    지금은 멀리 떨어져 살아서 어떤 정치성향을
    가지신지 모르겠지만 그냥 건강하시기만 바랍니다.
    진보니 보수니 왈가왈부해도 부모님 안계시면 다
    소용없는 일이기에, 그저 살아계신 것만도 감사하고
    있어요. 고양이로 보수 엄마와 진보 딸이 의기투합하는
    이야기로 결말 맺는 건 아닐까 혼자 추측해봅니다. ㅎㅎ

  5. 오달자 2020.08.31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ㅍㅎㅎㅎ
    글 읽는 내내 제 얘긴줄 알았네요.
    거의 30 년 가까이 진보 진영에서 자고 나란 딸이 서울로 이사가더니 빨갱이가 다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간간히 사회적 이슈가 있을때매다 다툼아닌 다툼을 했네요.

    정치적 성향을 떠나서 현재 처해 있는 상황의 심각성을 아무리 얘기해도 모르시더라구요.
    철없는 딸은 당분간 소식을 끊습니다.
    통화만 하면 분란이 나니 말이에요.ㅎ

    오늘 글은 제게 참~ 위로가 되는 글입니다.

  6. 슬아맘 2020.08.31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ㅋㅋㅋㅋㅋ
    저희 집만 그런게 아니였군요.
    그게 책까지 나왔다니 ~~~ 많은 위안을 받아요 ㅎ

  7. 김주이 2020.08.31 17: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이 재밌네요.
    고양이 부탁에 성공하셨을지 궁금해지네요^^

  8. 새벽부터 횡설수설 2020.08.31 19:3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적 견해든 뭐든 어머니라는 존재와 다툴 수 있는 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도 있어요.
    저는 아직도 저에게 소리를 높일 수 있는 어머니의 건강에 너무나 감사하답니다. 피디님 덕분에 가족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해볼 수 있었네요~^^

  9. 아리아리짱 2020.08.31 21:2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민식 피디님 아리아리!

    '내 삶만 힘든게 아니다' 라는 말이
    묘한 위로가 됩니다.

    '고양이를 부탁해' 가 과연 작가의 어머니께
    통했는지 무척 궁금합니다. ^^

  10. 섭섭이짱 2020.09.01 06:4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결말이 궁금해서 책 안 볼 수가 없겠는데요.
    바로 장바구니로 고고고~~~~

  11. 바람처럼 2020.09.02 13: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적 견해 뿐 아니라.. 다른 점이 많죠..^^
    저는 엄마랑 일하는 스타일이 달라..늘 서로의 취향을 탓하는데...ㅋ
    그 마저도 살아계셔주셔서 감사하다..라고 맘 먹으니
    열정 넘치는 엄마가 귀엽습니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