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짠돌이 독서 일기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

by 김민식pd 2020. 8. 26.

장강명 작가님의 페북을 즐겨찾습니다. 작가님도 정말 많이 읽으시고요. 믿을만한 서평이 자주 올라오거든요.

'요네자와 호노부의 《진실의 10미터 앞》을 읽었다. 프리랜서 기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연작 추리 단편집. 여섯 편이 다 가볍지 않다. 특히 고독사와 이웃의 죄책감을 다룬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울림이 있었다. 일독 권유지수 ★★★(5점 만점)'

기자 출신 소설가가 추천하는 기자가 주인공인 추리집이라니 안 읽을 수가 없습니다. 바로 찾아읽었어요.

<진실의 10미터 앞> (요네자와 호노부 / 김선영 / 엘릭시르) 


여섯 편의 사건을 기록한 단편집입니다. 주인공은 신문사에 소속된 기자가 아니라 프리랜서로 일하는데요. 그러기에 자신이 관심이 있는 사건을 찾아다닐 수 있어요. 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뭔가 의혹을 느끼면 찾아가 심층 취재를 해요. 그 과정을 통해 경찰이 놓친 사건의 이면을 발견해냅니다.

<이름을 새기는 죽음>은 노인의 고독사를 다룹니다. 죽은 노인을 발견한 건 중학생인데요. 유족을 인터뷰하러 간다는 기자에게 자신도 데려가 달라고 하죠. 주인공 다치아라이는 이렇게 말해요.

"별로 기분 좋은 경험은 못 될 거야. 마음 상하지 않으려면 그만두는 게 좋을 텐데."

"마음이 상하다니, 왜요?"
"너도 꽤 시달렸잖아. 그런데 기자가 좋아?"

교스케는 대답할 수 없었다. 취재를 받고 좋았던 기억은 하나도 없다.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를 찾아가는 것도 일이야. 하지만 권하지는 않겠어. 어쩔래?"

(198쪽)

만나고 싶어 하지 않는 상대를 찾아가, 유쾌하지 않은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게 기자라는 직업의 속성인데요. 20대에 영업사원으로 일하며 비슷한 감정을 느꼈어요. 내 밥벌이를 위해 바쁘다는 사람을 억지로 쫓아다니는 일이 쉽지는 않았거든요. 10대에 아버지에게 시달린 것만으로 충분히 불행한 삶을 살지 않았나. 적어도 어른이 되어 직업만큼은 좀 더 즐거운 일을 선택해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사표를 쓰고 나왔고요. 독하게 마음 먹고 6개월간 영어 공부해서 통역사가 되었어요. 프리랜서 통역사는 적어도 일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으니까요. 기자와 소년은 고독사한 노인의 아들을 찾아가 무척 당황스러운 이야기를 듣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를 '그 인간'이라고 칭합니다.

"그 인간은 병자였어. 자기 말고는 다 쓰레기로 보이는 병에 걸려 있었지. 우리 집안은 할아버지 대부터 정원사로 일했어. 그 인간은 정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어. 정원수도 분간 못 하면서 장인들을 업신여겼지. 그러면서 나한테 그러는 거야. 너는 좀더 멀쩡한 인간이 되어라, 하고. 

안타깝게도 난 머리가 나빴어. 그래도 일은 구했지. 목수였어. 재능이 있다고 칭찬받았어. 하지만 아버지 마음에는 들지 않았어. 그런 건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고 그러는 거야. 내 친구는 부모님한테 농가를 물려받았는데 그것도 제대로 된 일이 아니라는 거야. 내 사촌형은 도리사키 시청에 들어갔어. 아버지가 뭐라고 했을 것 같아? 공무원은 세금 도둑이다. 제대로 된 직업이 아니다.

내가 일했던 목공소는 도산했어. 의뢰인이 달아나는 바람에 부도가 났거든. 불행한 일이지. 거의 사기였어. 사장님은 목을 매달았어. 좋은 사람이었는데. 그렇게 좋은 사람은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아버지한테 그런 일은 아무 상관도 없었지. 회사가 망해서 내가 직업을 잃은 것만 마음에 안 드는 거야. 만날 때마다 '백수라니 쓰레기다'라고 퍼부어댔어."

(220쪽)

네, 주위에 이런 어른 가끔 있지요.... 책에 수록된 6편이 다 좋았는데요. 저 역시 <이름을 새기는 죽음>이 오래오래 남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고민하게 되었고요.

주위 사람들에게 너무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어 상처주는 일은 삼가야겠다고 결심했어요. 타인에게 더 너그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요네자와 호노부의 다른 책도 찾아읽고 싶어졌어요. 좋은 책 추천해주신, 장강명 작가님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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