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짠돌이 독서 일기

부모님 세대와의 정치적 갈등

by 김민식pd 2020. 8. 31.

타인의 성향에 대해 함부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제가 아는 김봄 작가님은 진보 운동권입니다. 예전에 MBC 노조가 힘든 싸움을 하던 시절, MBC 사옥 앞에 아침마다 오셔서 1인 시위를 하셨던 분이거든요. 이분이 에세이를 내셨는데요. 

<좌파 고양이를 부탁해> (김봄 / 걷는사람)

'보수 엄마와 진보 딸의 좌충우돌 공생기'라는 설명을 보고, '음? 우리 집 이야기인가?'했어요. 저희 아버지는 경상도에서 평생 교사로 일하신 80 노인입니다. 저는 MBC 노조 부위원장으로 일한 자유로운 영혼(^^)이고요. 부자간 정치 성향의 거리는 지구와 안드로메다 사이 정도 됩니다. 아버지 모시고 여행 다닐 때마다 제일 곤욕이 정치적 견해 차입니다. 책을 보니 우리 집만 그런 건 아니군요.

"지금 좌파들이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지 알아?"

손 여사는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켜고 말을 이었다.

"박정희 대통령 무덤에 철심을 예순한 개나 심어놨어. 기를 다 끊어놓으려고. 끌어내려서 감옥에 가뒀으면 됐지. 독한 좌파들. 어떻게 그렇게까지 하냐."

"뭔 소리야, 그게."

"배웠다는 년이 그것도 몰라. 국립묘지 관리자가 나와서 인터뷰도 하고 그랬는데." (...)

"엄마! 다 가짜뉴스라니까. 그걸 진짜 믿는 사람이 있네, 있어. 그거 유튜브 같은 거 계속 보고 그러니까 지금 세뇌돼서 그러는 거 아냐!"

내 목소리가 커지자, 손 여사는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듯이 주먹을 들었다 말았다.

"이 빨갱이. 너도 큰일이다."

손 여사는 개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건강을 위해서 정치 이야기는 안 하는 게 좋겠어! 이제부터 엄마랑은 절교야."

그때, 손여사 왈

"빨갱이 좌파 고양이는 안 봐줘."

(24쪽)

책 표지에 고양이 두 마리가 나옵니다. 코리안 쇼트헤어 아담과 페르시안 친칠라 바라. 여느 고양이처럼 호기심 많으나 소심하고, 겁이 많아요. 환경이 바뀌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습니다. 딸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는 걸 보고, 손이 너무 많이 가니 하나는 갖다버리라는 말도 서슴지 않는 엄마. 이 아이들은 자식이나 다름없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더니, 어머니 말씀.

"미치려면 곱게 좀 미쳐."

김봄 작가님이 프랑스로 한 달간 떠날 일이 생겨요. 어머니에게 고양이의 돌봄을 부탁하는 장면에서 정치적 견해 차로 사달이 납니다. 그런데 이 어머니, 일관성이 있어요. 좌파 딸의 고양이라서 안 돌봐주는 게 아닙니다.

 

'손 여사는 다섯 자녀들의 자식들, 그러니까 손자들을 단 한 번도 봐준 적이 없다. 하나를 봐주기 시작하면 줄줄이 봐줘야 하고, 그렇게 되면 골병이 든다는 게 손 여사의 지론이었다. 손 여사의 입장에서 보면 지극히 마땅한 논리였고, 주장이었다.'

(14쪽)

그 시대 어머니들처럼 손 여사님도 고생 많이 하셨고요. 노후에는 돌봄 노동 은퇴를 선언하고, 자신의 삶을 삽니다. 책을 읽다보니 손 여사가 귀엽게 느껴집니다. 작가님은 들으면 기겁하실 거예요. '울 엄마 때문에 내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아기도 그래요, 막상 키우는 사람은 고생하지만, 멀리서 보면 마냥 귀엽거든요. 보수 집회에서 고성을 지르는 노인도 따지고 보면, 집에서는 손주 돌보며 아이들 키우느라 평생 헌신하신 분들입니다. 누군가의 엄마 아빠요, 할머니 할아버지인거죠.

그래서 작가님은 과연 고양이를 엄마에게 부탁하는데 성공했을까요?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말을 저는 믿습니다. 선거철이 되면, 저는 아버지랑 밥을 먹으며, 아버지가 좋아하는 그 경상도 당이, 아들의 삶을 얼마나 핍박하는지 소상하게 일러바치지요. ^^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힘들었던 저는, 책을 읽으며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우리집만 그런 게 아니구나. 우리 아버지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

이것이 우리가 글을 쓰고 읽는 이유라고 믿습니다. 내 삶만 힘든 게 아니라는 거죠. ^^ 

반응형

'짠돌이 독서 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로 돈을 벌 수 있을까?  (21) 2020.09.07
작은 집을 꿈꾸는 삶  (17) 2020.09.04
불행을 만났을 때  (14) 2020.08.28
타인에게 너그러운 사람  (16) 2020.08.26
왜 고전을 읽는가?  (10) 2020.08.24